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여성 예술가, 세라핀루이 (1864 – 1942 )

Les Grappes de raisins - 포도송이 1930년 




L'arbre de vie – 생명나무 1928년 


성경에 나오는 <생명나무>를 제목으로 하는 그림




자신의 그림 앞에서 세라핀 루이



    세라핀 루이, 그를 나는 영화로 알게 되었다. 시골마을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여자가 신의 계시로 그림을 그리다가 정신병원에서 죽었다는 간략한 이야기의 영화였다. 마음이 갔지만 보지는 않았다. 차마 대면하기가 두려웠다. 

    그 무렵 나는 마흔이었고 경력은 미천하고 미래는 막막했다. 홀로 하는 작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림 그리는 것은 당연히 돈이 되지 않았다. 밤마다 구직 사이트의 청소나 서빙 알바를 체크하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상상하곤 했다. 몇 차례 그림책 기획이 엎어지면서 나는 자주 불안했고 밥이 되지 못하는 그림을 붙들고 있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은 예술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언론의 기사는 가족만 없다면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세라핀은 곧 닥칠 내 미래 같았다, 외로이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영화 <세라핀>을 보았다. 

    프랑스 북동쪽, 상리스에 살면서 마을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세라핀은 월세가 밀린 지붕 밑 방에 혼자 산다. 이 집 저 집 수레를 끌고 다니며 세탁물을 받아오고, 청소를 하고, 푸줏간에서도 일한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보던 미친 여자의 모양새를 한 세라핀은 비가 오지 않는데도 늘 우산을 옆구리에 끼고 수레를 끌고 다니며 푼돈을 번다. 

    그 푼돈으론 비싼 유화 물감과 캔버스는 엄두도 낼 수 없다. 푸줏간에서 돼지 간을 손질하다 주인 몰래 돼지피를 작은 병에 담아오고 시냇가에서 젖은 흙을 퍼 온다. 사람 없는 성당에 들어가 제단의 촛불에서 파라핀을 구해 오고 들판의 풀들과 열매를 뜯어온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수레에 싣고 집으로 돌아와서 밤마다 그림을 그린다. 동물의 피가, 시냇가의 흙이, 성당의 촛농이, 들판과 숲의 자연이 물감이 되어 주었다. 


세라핀, 그림으로 말하는 여자


    세라핀에게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신은 그에게 도대체 왜 그림 따윌 그리라고 했나... 1차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파리를 떠나 상리스로 피신한 독일 출신의 화상이자 평론가인 빌헬름 우데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마을에서 세라핀은 있어도 없는 존재였다.

    파리에서 온 독일인, 빌헬름 우데만이 세라핀을 알아보았다. 그 알아봄은 세라핀에게 독이었을까? 아니면 격려였을까? 프랑스와 독일의 대치 상황에서 황망히 상리스를 떠났던 빌헬름과 세라핀이 다시 만나기까지 13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세라핀은 계속해서 그리고 또 그렸다. 그를 지탱하는 건 그리는 것 외엔 없었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수레를 끌며 노동을 했다.

    다시 만나 빌헬름 우데의 첫마디는 “당신의 그림은 놀라워요. 눈부시게 발전했군요.” 였고 그 말에 비로소 세라핀은 처음으로 웃는다. 


    세라핀의 그림은 처음에는 나무판에 자연에서 구한 재료들로 그려졌으나 점차 풍요롭게 피어났다. 신이 만든 세상의 자연을 세라핀은 자신의 감각으로 그려냈다. 중앙으로 모여드는 꿈틀거리는 작고 둥근 형태들은 제각기 살아 움직이듯이 다시 하나의 커다란 형태를 이룬다. 자연의 이 낯선 재현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오직 세라핀만이 그릴 수 있는 풀과 꽃과 열매와 잎사귀들, 세라핀의 그림들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 낯섦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혹은 감동케 한다.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제도 밖의 화가와 그 그림들을 ‘나이브 아트(naive art)’ 라고 부른다. 앙리 루소 정도를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세라핀 루이를 들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세라핀 루이의 개인전은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이후 빌헬름 우데에 의해 열렸고 전시를 개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역시 사망했다.


세속의 규범 너머의 여성 예술가, 마녀‘들’


    우리가 아는 여성 예술가들은 대부분 화려한 연애 이력을 자랑하거나 부유한 집안의 영애이거나 잘나가는 남자의 아내, 혹은 애인이었다. 또는 탁월한 재능으로 남성중심 사회의 중앙에 있었다. 초라하고 가난한 늙은 여성이 예술가라는 걸 사람들은 상상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번드르르한 허울,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가 여성 작업자에겐 늘 덧씌워져 있다. 


    가난하고 나이까지 많은 여성 예술가는 사회에서도 예술계에서도 가시권 밖에 존재한다. 그들의 무명의 시간, 삶의 경험들이 자기 언어로 터져 나올 때,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된다.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미미한, 그럴듯한 배경을 갖추지 못한 중년 여성이 자기 언어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다. 이는 역으로 젊은 여성에게도 해당되는 편견이다. 세라핀의 그림 앞에서 내내 출렁거리던 내 마음은 결국 흘러 넘쳤다.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의 여성 작업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난하며 나이 든 여성 예술가는 ‘당연히’ 많다. 역량을 인정받지 못할 뿐, 그들은 존재한다. 


    여성은 그가 지닌 개성과 능력이 아닌, 많고 많은 편견 속에서 재단되고 판단당한다. 특히 이 여성들이 세속의 가치와 규범에 영향 받지 않을 때 그 편견과 배척은 두드러진다.

    세속의 가치와 규범은 남성의 언어로 이루어졌으니. 고립되거나 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용기여야 한다. 나의 지인은 자유로운 이 여성들을 ‘마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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