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여자’로 사는 것: 제소라


   작년에 여러 예술 활동을 하면서 한 단체의 달력 작업을 했다. 7,80년대 국가폭력 피해자분들을 지원하는 단체였는데 그곳에서 70년대 노동 운동을 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 분들과 함께 예술 워크숍을 하고 그 과정을 그림으로 그려 달력으로 제작했다. 

    장년의 여성노동자분들을 그리면서 인물 주위로 꽃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꽃이 여성을 비하하는 진부한 클리세임을 모르지 않는 내가 꽃을 그리다니! 놀라웠다. 그러다가 알아차렸다. 이제야 나는 나의 과거와 조금씩 화해하고 있다는 걸.

    내게 꽃은 더 이상 여성을 비하하는 상징이 아니었다. 십대의 여성노동자에서 장년의 여성노동자로 살아온 시간의 상징이었고 꽃을 피워내듯 삶을 피운 그분들을 정성을 다해 그리고 싶은 내 마음의 소박한 표현이었다.

꽃에 대한 나의 복잡한 심사는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오늘은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성임을 부정하는 세계로의 진입 


    단 하루도 학생으로 살기 싫었던 시절, 막연하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롤 모델에 ‘여성’은 없었다. 열여덟의 나는 결혼하지 않고 진지하고 우울한 얼굴로 위스키를 마시며 동료작가들과 격렬한 토론을 나누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사는 걸 작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작은 여자대학을 나왔다. 입학 시험을 치루기 전부터 종종 여대를 권유받았다. 섬세하고 정적인 분위기의 내 그림은 ‘여자그림’ 같다는 소릴 들었다. 기껏해야 석고 데생일 뿐이지만 그림 스타일로 여자, 남자를 나누었다. ‘여자그림’이란 말은 열등하다는 의미를 내포할 때가 많았다. 아니, 적어도 열여덟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렬하고 스케일 있는 그림, 즉 ‘남자그림’이 진짜 예술이었다. 소소하고 결이 고운 그림은 여자들이나 그리는 것이어서 거칠고 강하게 미술연필을 종이 위에 북북 그어댔다. 

    화실의 남선생들은 여자는 여자대학이 유리하다고 했다. 여자는 남자와의 경쟁에서 불리하니 여자‘끼리’ 경쟁하라는 뜻이었다. 이 말은 나에게 더욱 여대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미대로 유명한 학교를 지원했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지고 정말 가기 싫었던 ‘여자’대학에 입학했다. 의기소침한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여자대학 미대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중산층의 곱게 자란 딸들이 모여 앉아 막 멋내기를 시작하는 풍경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대학 사년동안 실기실보다 민주마당이라 부르던 학교 잔디밭과 종로 거리에서 데모를 하는 날이 더 많았다. 과동기의 표현을 빌자면 “무릎 나온 청바지에 매일 운동화를 신고 오는 운동권 여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민중미술을 좋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르는 이야길 할 수 없어서, 노동자나 농민, 투쟁하는 사람들을 그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시 동양화과 실기실에서 흔히 보던 달동네를 수묵으로 그리거나 발가벗고 꽃밭에 누운 여자를 채색화로 그릴 수도 없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릴 수 없는 이유만 넘쳐났다. 유식한 아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다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그래서 뭐? 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나는 내 작업에, 예술에 너무 가난하고 무지했다.



성장하는 여성, ‘나’의 그림을 찾아서 


    서른을 눈앞에 두고 그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작업을 시작했다. 내 얼굴을 맨 처음 그렸다. 이제 막 이십대를 벗어나는 여자아이가 뚱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그 자화상은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내 이십대와 작별하고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는 사이, 그림책 작가라는 호칭도 얻었지만 아무도 날 눈여겨보지 않았다. 어린이는 재밌는 역동적인 그림을 좋아하지, 정적이고 진지한 내 그림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귀가 닳도록 들었다. 작가정신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작가정신이란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으나 나를 부정당하는 그 시간들은 좀 괴로웠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화창하지 않았다. 막막한 마음에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었던 여성들을 찾기 시작했다. 선배, 롤 모델 여성을 찾는 순간 깨달았다. 이 세계가 알려준 건 끊임없이 ‘여성’을 부정하는 거였음을. 여자작가로서 질문을 던질 수 없게 설계된 아카데미 예술 교육은 ‘여성’을 고민하지 못하게 했다. 

    이미 세계는 남성들로 이루어졌고 남성들에 의해 굴러갔으며 남성들의 언어로 축조되어 있었다. 그 세계의 멤버쉽을 얻으려는 ‘나’와 그 세계를 의심하는 ‘나’는 늘 분열을 일으켰고 자주 걸려 넘어졌다. 여성에게, 여성작가에게 직선의 거리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고 곡선의 거리를 돌아 비로소 ‘나’와 대면했을 때 나의 ‘여성’과 만났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였을 때, 누구의 그림도 아닌 내 그림 앞에서만 할 수 있는 질문들이 터져 나올 때 비로소 나의 ‘여성’과 만났다. 여자대학 미대에 갇혀 있던 나의 여성혐오는 그때부터 한 꺼풀씩 벗겨졌다. 


    나에게 누적된 시간과 경험만큼 여성혐오의 벽은 단단하고 지금도 나는 그 벽을 수시로 마주한다. “그림 그리는 여자”라는 이 연재의 제목은 견고한 벽들에 대한 성찰이자, 나는 과정의 인간이며 여전히 성장하는 여성임을 잊지 않기 위한 명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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