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인상

  - 안녕하세요, 알바몬에서 보고 연락드립니다. 조이 / 27세 / 여성 / 차로 5분 거리에 거주, 자차 있음 / 카페와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 있습니다. 커피와 음료 제조 가능, 선입선출과 청소, 포스 사용 잘 합니다.


    문자를 작성하는데 내심 ‘나를 뽑을 수밖에 없지’ 하는 자신이 든다. 생존에 쫓겨 해왔던 편의점, 카페, 식당, 주유소 등의 많은 아르바이트 경험과 1년 좀 넘게 근무한 회사 생활 이력은 대기업 취업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되겠지만 중소기업이나 아르바이트 자리에 갈 때는 큰 자산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인력이 드문 노동시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텐데 이 동네가 딱 그런 상황이다. 


    문자를 발송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 안녕하세요, 문자 보고 연락드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찾던 사람이에요! 근무는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예상이 적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진 않지만 그럼에도 늘 계획을 한다. 운 좋게도. 이번 계획은 이뤄질 것만 같다.

 

   사람이 딛고 있는 땅이 마냥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발이 공중에 있을 때보다는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내게 계획이란 공중에 떠 있는 발을 땅에 묶어 두는 느낌에 가깝다. 땅에서 이것저것에 치이고 밟히고 가끔 지진이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공중에 있는 건 아직 낯설고 어렵다. 계획을 해도 실행 단계에서부터 어긋나기도 하고 예상과 다른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계획을 안 한 상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효율성에 쫓겨 사는 삶이 익숙해져서 끊임없이 앞 일을 계획하는 것이다. 내 상태가 이런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불행한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건 내 삶이 놓인 정황이지, 그 순간마다 최선으로 살아온 삶에 임하는 나의 태도는 스스로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두터운 겨울 외투를 정리한 지 한참인 3월의 마지막 토요일, 가벼운 베이지 데님 자켓을 걸치고 면접을 보러 갔다.

 

  - 나는 처음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약속 시간이 늦어서 안 보려고 했는데 실장이 꼭 봐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해서 보는 거예요.

 

    불편하다. 물어보지도 않은 본인과 직원들의 혼인상태와 나이를 공개한 데 이어 존댓말인 듯 존대 없는 말투라니. 차라리 대놓고 반말을 하면 내 쪽에서도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저렇게 선을 지키는 ‘척’하면 더 괴롭다. 대놓고 반말하는 사람과 달리 본인은 굉장히 세련된 사람이라 자처하겠지만 말이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 그리기와 어쭙잖은 스케치가 있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랄까.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백지가 낫다. 나야말로 당신의 첫인상이 참 별로다, 당신의 말투에서 이런 지점이 불쾌하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하고 싶은 말 대신, 해야 할 말을 하기로 했다.

 

  - 아, 시간이요? 실장님이랑 연락할 때 10시에서 11시 경이라고만 하고 구체적으로 시간을 안 정했어요. 10시 전부터 연락 오려나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으셔서… 10시 반에 연락이 와서 바로 나온 건데.

  - 그래요? 몰랐네.

 
    미안하다는 말도 없네. 역시, 재수 없어.

 

    두 곳의 편의점에 지원했는데 그중 한 곳은 거절하고 좀더 가까운 이곳만 면접을 봤다. 이곳을 택한 것은 거리가 가까울 뿐만 아니라 연락을 했던 분이 사려 깊은 말솜씨를 지닌 여성분이셨는데 그분이 사장님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면접 날에서야 알았다. 그분은 실장이었고 사장은 무례한 이 사람이었다. 상대를 존대하는 듯하나 하대하는 이 사람 말이다.

 

  - 그럼 월요일부터 출근해요. 인상이 참 좋네.


    숨만 쉬어도 매달 100만 원 정도가 지출된다. 학자금 상환과 주유비를 비롯한 자동차 유지비, 보험과 핸드폰 요금만 해도 100만 원 가까이 된다. 주말에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일의 수입으로는 생계유지가 벅찰 뿐더러 미래를 위한 준비가 불가능하다. 당연한 소리지만 결국 나 자신을 위해 선택의 여지없이 노동시장에 나가야 했다. 회사에 들어갈까, 아르바이트를 할까 고민하다 급여는 적지만 업무의 강도가 약하고 회사보다 시간 조율이 용이한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하루 일곱 시간의 노동, 이렇게 나의 시급 노동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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