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블루베리 아저씨

 

    산다는 게 참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끼니를 제때 잘 챙겨 먹고, 잠을 제때 잘 자고, 화장실을 제때 잘 가기만 해도 심신이 평안하니 말이다.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는 것. 너무나도 간단하고 단순해 보잘것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로 지켜내기 어렵고, 또 보다 나은 의식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본적인 생활양식을 잃고야 만다는 것이 나만의 경험은 아니리라. 여성, 청년, 파트타이머의 정체성으로 하루 일곱 시간 이곳에서 노동을 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안간힘을 써도 이 기본을 지켜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침에 눈 떠 세수랑 양치만 간단히 하고 옷을 갈아입고 5분 정도 운전을 해서 출근하는데, 따뜻한 물 좀 마시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면 장운동이 활발해지곤 한다. 혼자 일하다 보니 화장실을 가는 것도 굉장한 눈치싸움이었다. 화장실이 엄청 급하지 않다면 꽤 참았다가 손님이 뜸한 시간에 가야 했다. 볼일을 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지면 개운하지 못하게 마무리를 하고 나온 적이 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화장실을 안 가는 쪽을 선택했고 마음이 편한 대가로 약간의 변비를 얻었다. 

    매장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두운 회색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평소 취향 때문이기도 하고, 옷을 아끼는 마음에서 기도 한데 출근할 때는 대부분 어두운 무채색을 입는다. 무엇보다 커피를 제조할 때 옷에 좀 튀어도, 물품을 정리할 때 뭐가 좀 묻어도 쉽게 세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유니폼을 맞추자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매장의 통일성을 위해 나의 개성이 사라진다는 느낌에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자아를 실현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앞으로 옷 걱정 없겠다는 생각으로 유니폼을 기꺼이 입어드리리라 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유니폼 색깔을 쨍한 핑크색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던가? “유니폼이 핑크색이 된다면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결국 검은색 유니폼으로 해결을 봤지만 “핑크색 좋잖아, 얼마나 예뻐?”하는 사장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이곳의 인테리어는 모두 세련된 블랙 계열로 했으면서, 모두 20대 여성인 아르바이트생에게 갑자기 핫핑크 티셔츠를 입히려는 저 심보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웩, 알고 싶지 않아!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점심시간은 손님들이 붐빌 시간이라 그전에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재고 파악이나 물건 정리, 끊이지 않는 손님, 혹은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서둘러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날에는 식사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이른 저녁 같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이 매장의 가장 큰 장점은 재고 파악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시에 알바생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게 해준다는 거다. “너희들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니.” 하는 사장의 넓은 아량이랄까. 워낙에 편의점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는 그 아량이 별 메리트가 없다. 건강하게 먹으려고 기를 쓰느라 미숫가루, 우유, 두유, 하루야채, 샐러드, 계란, 미역 국밥, 누룽지, 챙겨온 과일 정도가 나의 주식이다. 이것도 한두 번이지, 가뜩이나 입맛이 없는 여름에는 우유나 두유 한 잔만 먹으며 버티기 일쑤였다.

    그러던 와중에 어미새같이 나의 끼니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바로 아래편에서 파이프를 매매하는 일을 하는데, 그 자신은 ‘파이프 사장님’으로 불리기 원했지만 나는 동료들에게 ‘블루베리 아저씨’로 호명한다.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아쉬울 때는 사장이라고 치켜드리긴 하지만, 그를 처음 본 날이었는데 그는 다짜고짜 블루베리 나무 어쩌고 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의 콧대와 볼살과 얼굴형이 묘하게 우리 아빠와 닮아 처음부터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웃을 때 고개를 한 쪽으로 젖힌 채 두 눈을 찡그리고 입을 쫙 찢는 순수해 보이려는 웃음새와 일복으로 즐겨 입는 고무줄 다 늘어난 어느 찜질방 바지가 그를 향한 묘한 애정을 부추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 야, 너 2시까지냐?
  - 네, 왜요?
  - 아니, 너 밥 갖다 주려고 그러지~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면 마트에서 본 회색 바구니에 반찬 몇 가지와 밥, 그리고 후식까지 대령하곤 했다.
  - 야, 밥 먹어라.
  - 와, 감동! 이거 저 주시려고 가져오신 거예요?
  - 그래, 야 먹어, 먹고 해. 다 먹자고 하는 건데.

    그는 본인의 끼니를 위해 요리를 곧잘 했는데 양을 많이 해서 우리 가게까지 음식을 날랐다. 적어도 그의 말과 가끔 가져오는 몇 가지 요리에 의하면 60대라는 나이대에 보기 드물게 가사노동을 함께하는 남편이었다. 과자와 간편식에 지쳐갈 때쯤 블루베리 아저씨 덕에 소소한 재미가 생겨났다. 이제 그를 요리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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