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몽골 언니 이야기

레모네이드 손님


   무덥던 여름날, 가게에 젊은 여성이 들어와 길을 물었다. 어눌한 한국말이지만 발음만큼은 정확하다. 특히 ‘~요’라는 어미를 분명하게 발음해냈다. 그녀가 물어본 상호는 근처에 있는 닭 가공 공장의 이름이었다. 생긋 웃어 보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그녀는 또다시 뙤약볕 속으로 사라졌다. 삼십 분이나 지났을까. 그녀가 또다시 매장을 찾았다. 내내 무례한 태도로 담배를 달라는 아저씨들만 보다가 생긋 웃으며 레모네이드를 주문하는 그녀를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몽골 사람이다.

   네팔, 중국 상하이, 미국 동부와 남부 그리고 몽골. 내가 밟아 본 이국 땅인데, 이 모든 일정을 ‘여행’이라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싶다. 모름지기 여행이라면 원하는 사람과 함께, 계획이든 즉흥이든 주체적인 선택으로 움직여 짧은 시간이나마 그 나라를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여행다운 여행을 한 나라는 몽골뿐이다. 


   이 역시 처음에는 출장으로 가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드넓은 초원에 반해서, 이어 미니멀하고 소박한 생활 양식으로 유목 생활을 하는 몽골인의 가치관에 반해서 친한 친구들을 꾀어내어 세 번이나 몽골을 다녀왔다. 이제 몽골 말은 ‘센벤노’, ‘바이를라’ 정도의 인사말 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버스나 시장 같은 데서 외국인들이 여러 외국어를 한다면 단박에 몽골 말을 알아챌 수는 있다. 그럴 때마다 또다시 몽골 여행을 가고 싶고(특별히 초원보다 고비 사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 그들과 몽골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아온 나로서는 이렇게 만난 몽골 손님이 반가울 수밖에.  


   “저 몽골 세 번 가봤어요. 여름이랑 겨울, 그리고 가을에요. 처음에 여름에 갔을 때 초원이 정말 멋지더라고요. 그런데 몽골은 겨울이 엄청 춥잖아요? 그 겨울을 느껴보고 싶어서 겨울에도 갔는데 와! 진짜 장난 아니더라고요. 속눈썹에 얼음이 맺히고 코털도 다 얼었어요. 그런데 또 몽골은 가을이 진짜 멋지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을도 갔어요. 언니, 훕스굴 가보셨어요? 저 작년 가을에 훕스굴 호수에 갔었어요.”
   “아니, 못 가봤어요.”
   “멀잖아요. 저도 이틀 내내 차 타고 이동했어요. 언니는 한국에 혼자 왔어요?”
   “남편이랑 아기 있어요. 아기 생일 아직 안 됐어요. 근데 아기 유치원 비싸요, 돈 벌고 싶어요.”
   “그래요? 언니 무슨 비자예요?”
   “저는 D2 학생비자, 남편은 F4 비자예요.”
   “그럼 남편은 일해요?”
   “네, 일 다녀요. 그런데 지금은 집에 있어요. 일이 없어요. 그래서 저 돈 벌어야 해요.”
   “근데 언니 학생 비자면 취업 어렵잖아요.”
   “네… 그래서 저기도 안 된대요.”


   가까운 친구가 이주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 문의 했는데 비자 때문에 어려웠다. 몽골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그 언니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은 없었다. 그저 레모네이드를 리필해 줄 뿐.


몽골에서 나눈 대화


   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을 뜻하는 4B. 한국에서 이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운동의 지향성을 알고 있고 동의하고 지지한다. 동시에 다른 여성들의 삶을 이 잣대로 도려내는 언행은 손쉽고 폭력적인 방법이라 생각하여 경계한다. 비판의 대상은 성별만을 이유로 여성을 억압, 착취, 차별하는 사회구조이지, 여성 개개인의 삶이 아니다. 누군가는 지긋지긋한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으로 새로운 울타리를 만드는 선택을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친구나 이웃과 새로운 형태의 가족 관계를 지향하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가부장제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 선택을 할 수 있다.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을 때 찾아온 생명을 기쁨으로 책임지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생명을 책임지기에 준비가 안 되었다고 판단해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다. 각자가 처한 삶의 상황에 따라, 그 사람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우리 모두 타인의 삶을 살아보지도 못했으니 타인의 삶을 두고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도 몽골 언니를 마주하며 몽골에서 있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몽골에 세 번이나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비행 티켓만 마련하면 현지 여행에서 큰 지출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안내해주시는 울란바토르 대학의 남교수님을 알게 되어서다. 어느 날은 몽골 시내의 가장 큰 백화점을 구경 나갔는데 갑자기 교수님이 사라지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교수님은 안내 데스크에 계셨다. 무언가를 문의하시나 보다 했는데, 손짓으로 부르시며 안내 데스크의 젊은 여성과 사진 좀 찍어달라는 것 아닌가? 수 년만에 만난 제자라는 것이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에 교수님이 안타까워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한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결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일단 대학 졸업하고 사귀어라. 제발 대학 졸업은 해라, 그런 말을 해요. 그런데 특히 여학생들은 그러지를 못해요. 갑자기 배불러서 학교 그만두고. 저 친구도 공부 잘하던 친구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안 보이더라고요?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한국 남자 만나서 한국 갔다고. 근데 몇 년 만에 여기서 만나네…”


선택도 책임도 나의 몫


   나는 카페 손님으로 찾아온 이 언니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하여도 그 삶을 두고 뭐가 말할 수도,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몽골에서 들은 교수님의 이야기가 생각나, ‘대학 잘 졸업하고 하고 싶은 일 하지 뭐가 저렇게 급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고야 만다. 그녀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더위에 쩔쩔매며 구직을 하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돈이 필요한 이유가 ‘아이 유치원비’라는 것에 평정심을 잃었다.


   우리는 우리를 어디로 휩쓸어 갈지 모르는 인생의 파도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그 파도에 휩쓸려 시골에 내려왔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맞지 않는 얘기다. 시골에 내려올 만한 상황이 생긴 건 맞지만, 내려온다는 결심은 내가 한 것이니.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지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출근을 하는 것은 내 선택이었다. 그녀가 이 나라에 온 것도 나와 썩 다르지 않겠지 싶다. 만약 우리가 지금과 다른 성별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랬어도 우리는 같은 선택을 했을까? 나는 딸이 아닌 아들일 테고, 몽골 언니도 엄마가 아닌 아빠라면 아마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나는 엄마를 조금 덜 이해했을 테고, 몽골 언니도 대학을 졸업하고 F4 비자로 한국에 왔겠지. 삶을 견뎌내기 버거우니 자꾸만 대타자를 만들어 그 뒤에 숨고만 싶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도 책임도 스스로 지고, 약자일수록 불필요하고 무거운 짐을 많이 지운 이 사회를 직시하며 이 사회에 균열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그렇게 살아가자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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