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어려우나 그나마 쉬운, 수영

    감사인


     성탄의 아침부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더니 감기몸살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일 년 만에 찾아온 몸살로 인해, 연말과 연초에는 모든 에너지를 건강 회복에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처음으로 웹진 쪽의 연재 날을 어기고야 말았습니다. 원고를 보내는 순간까지도 만족보다는 늘 아쉬움과 후회를 달고 삽니다. 그나마 마감일을 잘 지켜냈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마감일을 지키지 못해 어디에라도 마음을 기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위로받을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감일을 지키지 못한 것을 두고 그 누구도 저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마감일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그 어느 때보다 충실히 이 지면을 위해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일상을 돌이켜보게 해 준 몸살에게 감사해야 할까요.

    몇 날 며칠을 누워지내며 든 생각은 감사 인사는 감기몸살의 몫이 아닌 독자님들의 몫이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뤄 왔던 ‘감사 인사’를 이제서야 드립니다. <리얼 포레스트>부터 <예민한 알바생>까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특히 온/오프라인으로 피드백을 들려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시간 내어 읽어주시고 관심을 기울여 의견을 들려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주신 힘 덕분에 좀 더 성실히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알바 이야기를 잠시 쉬어가고 일상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이 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님들께 제가 미처 예상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 가닿아 모쪼록 여러분의 삶을 지속하는 약간의 자극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오픈 시간에서 마감 시간으로 변경한 가장 큰 이유는 ‘수면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다. 오픈 시간에 늦기라도 할까 봐 밤새 긴장한 탓에 한두 시간마다 잠에서 깼는데, 수면 패턴이 깨지니 일상이 곤욕이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아르바이트인데, 그 아르바이트 때문에 일상을 잃고 있었다. 결국 시간의 효율성을 포기하고 건강을 택하기로 했다. 

    12월부터 건강을 위해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160cm이 넘는 큰 키 덕에 달리기나 제자리멀리뛰기 같은 육상 종목을 꽤 잘 했고, 시골에서 늘 뛰어놀았으니까 몸이 가뿐했는데 이제 그런 느낌은 꿈인 듯 아련할 뿐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목은 어느샌가 앞으로 나와있는 거북목 초기 증상이고, 척추 기립근이 너무 약해 제 기능을 잘 못하고, 엉덩이와 뒷 허벅지 근육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다. 또 대부분 그러하듯 잘못된 걸음걸이로 기능성 평발이 되었고, 오른쪽 골반과 왼쪽 어깨가 그 반대보다 올라가 있으며, 사무직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을 얻었다. 가장 약하고 자신 없는 코어 근육 강화를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집에서 30분 떨어진 문화센터가 가장 가까운 수영장인데, 야속하게도 초보자를 위한 수영 강습은 단 한 강좌뿐이고 아침 7시-8시 강좌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의 여지없이 월수금 아침 6시마다 집을 나서게 되었다. 허리에 좋다는 수영, 그 수영을 위해 강의 시간 보다 한 시간 일찍 움직여 주차하고, 샤워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신기하게도 6시 기상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아르바이트할 때와 달리 새벽 내내 잠에서 깨거나 늦을까 봐 허둥지둥 대지도 않는다.


    그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자율성’ 때문이 아닐까. 월수금 아침 7시-8시라는 강의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시간에 약간 늦거나 빠진다고 해서 내게 주어지는 실질적인 불이익은 없다. 있다면 수영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과 빠진 강의에 대한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정도다. 반면 아르바이트의 근무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다. 나와 사장은 고용된 자와 고용한 사람의 관계로서 강제성을 띤 ‘계약’을 한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근무시간에 늦는다면 시급이 깎이고,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불필요하고도 불편한 상황이 연출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할 일을 다 하지 못해 여러 불이익을 받기 싫었던 마음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밤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던 것, 일상을 무너뜨린 그 피로함이 모두 그 마음, ‘불이익을 받기 싫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수영이 즐겁다’는 것이다. 사실 황당하게도(?) 나는 수영을 잘 못했다. 처음이니까 잘 못하는 것이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어느 정도’라는 선이 한참 뒤쪽에 있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육상 종목을 잘 했던 이유는 타고난 운동신경 때문이라기 보다 타고난 신체조건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이제 와 인정하게 되었다. 수영은 25명 정도의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남성이 20명, 여성이 5명 정도다. 나는 25명 중에서 24번째, 23번째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수영 강습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참담했다. 수영을 배우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동안 무언가를 배울 때 평균 혹은 그 이상으로 잘 따라가는 편이었는데 이것은 단지 운이 좋게 그 종목을 만난 것이거나 혹은 은연중에 그러한 것들만을 선택해 배워왔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수영에 대한 ‘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자유형에서 한쪽 팔을 저으면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이때 몸통과 반대 팔을 앞으로 지그시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남들보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또 의외로 알게 된 것은, 물을 무서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여겨왔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강습 초기에 하도 못 따라가는 내게 선생님이 “물이 무서우세요?”라고 물었는데 ‘당연한 걸 묻는다’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물이 안/덜 무서운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럼에도 수영을 위해 물속에 들어가면 그저 즐거웠다. 따뜻한 이불을 뒤로하고 강습에 참여했다는 것에 뿌듯했고, 몇 주 전보다 나아진 실력에 보람찼다.


    내 선택이 아닌 그저 주어진 몸, 이 몸의 타고난 성향을 파악하고 되도록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온전히 내게 주어진 책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기에 영양소를 생각하며 음식을 먹고, 부족한 근육을 발달시키는 운동을 한다. 또 몸이 건강하면 덩달아 정신도 건강해지고, 정신이 건강하면 더 창의적인 일을 해내게 되고, 이 모든 것들을 운영해가며 노동을 하고, 노동을 하다가 지쳐 휴식을 취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을 마주하고, 그러다 힘을 내 바깥공기를 쐬고, 차 한 잔 마시고, 다시 힘을 내 사회 활동을 하고, 또 몸을 챙기고, 청소를 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노동을 하고. 삶을 지속하는 것들이 복합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잘 견지해나간다는 게 너무나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어렵지만 그나마 수영이 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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