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건강한 삶

   요즘 하는 생각 


   요즘에는 몸을 ‘지니고’ 산다는 생각을 많이 생각해요. 처음에는 몸을 ‘데리고’ 혹은 몸에 ‘이끌려’ 산다고 생각했어요. 의지와 상관없이 새벽에 출근해야 할 때,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면 특히 이런 생각이 짙어졌죠. 내가 힘들지 않아야 몸을 건강히 살필 수 있는 것인지, 몸이 건강해야 나도 힘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전자가 몸을 ‘데리고’ 사는 것일 테고, 후자가 몸에 ‘이끌려’ 사는 것일 텐데… 그러다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몸인가 정신인가, 무엇이 우선인가, 우선을 논할 수 없는 것인가? 둘 다인가? 이러한 논의에 관련된 여러 도서를 읽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아쉽게도 도서관이 휴관 중이네요. 허허, 너무 좋은 핑계죠. 사실 이런 질문에 마땅한 책을 찾아낼 자신도 없고, 그 책을 다 읽고 이해할 자신도 없어요. 맞아요, 게으름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답 없는 질문들을 덮어두고 싶던 참에 몸을 ‘지니고’ 산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몸을 데리고 사는 것인지, 몸에 이끌려 사는 것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질문이라 느껴졌어요. 이 둘의 우선순위를 매기기보다 이 현상 자체를 당면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나니,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건설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손님이 없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며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산다는 게 무엇일까요, 아마 산다는 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 의미를 덧대기 시작하면 점점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되죠. 많은 의미 중 제게 단연코 가장 우위에 있는 의미는 ‘건강’이예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을 규칙적으로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잠을 자는 습관이 중요하죠. 너무 부끄럽고 안타깝네요. 건강한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면서 그러한 실천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그럴만한 상황이 못 되는 순간들이 안타깝기도 해요. 어쨌거나 이번에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당연한 얘기지만 몸은 입을 통해 들어가는 음식으로 이뤄지잖아요.

   편의점에서 끼니 해결하기


   평소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식품을 좋아하지 않아요. 배가 고프면 빵집에 가기는 해도 편의점은 가지 않아요. 가봤자 우유나 두유를 사지,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을 사 먹진 않아요. 우리 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야간에 공장에 다니고 계시는데, 그 공장은 편의점에 납품되는 삼각김밥이나 도시락, 샌드위치 등을 만드는 식품 제조 공장이에요. 한 번은 엄마를 따라 그 공장에 가서 밤새워 일해본 적도 있어요. 저는 늘 엄마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궁금했거든요. 엄마 작업복에서 풍기던 특유의 냄새, 양념 냄새와 계란 냄새, 밥 냄새와 김 냄새가 약품 냄새에 짓눌린 특유의 냄새가 공장 입구에서부터 건물 전체에 진이 베어져 있었어요. 왜인지 그날 이후로는 엄마의 작업복 냄새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지금처럼 체계가 엄격하지 않던 시절이라 엄마는 가끔 삼각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챙겨오셨어요. 그때는 삼각 김밥이 처음 판매되던 때인데, 이제는 사라진 사각 김밥도 있었어요. 전주 비빔, 소고기 고추장, 참치마요는 그때도 인기 있던 메뉴인데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 메뉴가 꾸준히 인기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네요. 맞아요, 저는 그때 삼각김밥을 하도 먹어서인지, 입맛이 예민해서인지 지금은 못 먹겠어요. 집에서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이 좋지, 공장에서 대량으로 큰 솥에 찐 밥은 싫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편의점의 사장은 ‘너희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느냐?’ 하며 식대를 따로 제하지 않고 편의점에 있는 것들로 알아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줬어요. 허세 가득한 그에게서 유일하게 덕을 본 경험이죠. 덕분에 편의점에 있는 새로운 음식들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해봤어요. 훈제 닭 다리도 먹어봤고, 고메 미트볼, 양반 죽도 먹어봤어요. 밥 다운 밥을 먹고 싶을 때는 오뚜기 황태해장국도 먹어봤고요, 오뚜기 컵밥이랑 햇반 컵밥, 햇반 냉동 볶음밥, 도시락도 먹어봤는데 한결같이 늘 실망스러웠어요. 그저 즉석식품인데 너무 다채로운 맛을 기대한 제가 어리석었던 걸까요. 그나마 두 번 이상 먹은 건 햇반 미역국밥이랑 오뚜기 김치 알밥이에요. 어느 날엔 까다로운 제 입맛을 한탄하기도 했어요.

    요리를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조미료에 길들지 않은 예민한 미각을 갖고 있다는 건 매우 좋은 것으로 생각해요.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요즘에는 꽤 부지런해졌어요. 도서관뿐만 아니라 수영장과 헬스장도 코로나19로 문을 닫으니 정말 갈 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어떤 레시피와 재료로 요리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유튜브나 블로그를 열심히 보며 요리에 집중하고, 가끔 인스타에도 올리고, 무엇보다 만든 요리를 맛있게 만끽하며 지내요.


    사실 처음에는 제 요리가 맘에 들지 않았어요. 레시피대로 했는데 기대와 다른 맛이 나오니까 실망스럽더라고요. 그냥 사 먹을까 했는데 시골이라 원하는 메뉴를 사 먹는 것도 쉽지 않았고, 요리를 즐기는 삶을 지향하는지라 다시 용기를 냈어요. 무엇보다 평생 내 한 몸 잘 챙겨줄 수 있는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잖아요. 친구를 만나서 음식이나 커피를 사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내 한 몸을 위한 요리 재료를 사는 데에는 주춤하는 자신을 변화시키려 애썼어요. 장 볼 때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려고 애썼어요. 냉장고가 풍성해지니 요리의 폭도 넓어지고 맛도 풍성해지고 기분도 좋더라고요. 약속이 거의 없는 요즘은 운동보다 요리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어요.


    그러면서 새삼 그동안 요리를 베풀어준 사람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얼마나 감사하던지. 이렇게 많은 정성과 애정의 과정이 필요한데. 요리를 제대로 안 해 봤으니 그런 과정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그저 차려진 음식의 모양과 맛에만 감사했구나, 하는 반성이 일더라고요. 그동안 맛난 음식을 선사해준 언니들을 조만간 찾아뵙고 인사드려야겠어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해야겠지마는 건강만을 위한 삶은 원하지 않아요.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다면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만, 삶의 목적이 건강뿐이라면 그건 어딘가 모르게 서글프게 느껴지거든요. 다만 거북목과 어깨 결림을 덜어내기 위해서, 불필요한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원해요. 제 지향점은 여기에 있어요.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속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아직 앞으로 나아갈 길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조만간 삶의 자리가 바뀔 것 같아요. 사실 이제 이 아르바이트… 재미도, 의미도 못 느끼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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