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 by 상상

3초의 선율에 핀 모과 향기



    그 아이는 엄마의 먼 친척 조카였다. 어느 날 그 친척 식구들이 자가용을 타고 우리 집에 왔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자동차를 자가용이라고 불렀고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부자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서울 변두리 동네 골목길에 세워진 자가용을 동네 아이들이 둘러쌌다.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며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함께 땅바닥에서 소꿉놀이나 사방치기를 하던 아이들의 꾀죄죄한 얼굴들이 부끄러웠고 부자 친척을 둔 내가 동네 아이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아 화가 났다. 그 아이는 나를 가끔 힐끗거리며 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가용이 있는 골목을 등지고 집으로 서둘러 들어가 버렸다. 


    그 아이는 나와 동갑이었다. 사립학교 교복 디자인의 반바지와 흰 양말이 곧게 뻗은 다리를 돋보이게 했고 이목구비가 선명한 얼굴은 희고 맑았다.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은 엄마와 두 동생과 함께 그 아이의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나는 그 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상의 고귀한 것들은 그 집에 모두 있다고 생각했었다. 


    집은 지하까지 3층이었고 피아노가 두 대나 있었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클래식 음악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고 식탁과 테이블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식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경쾌하지만 우아한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그릇과 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무엇인가 홀린 듯이 거실 구석에 놓여 있는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피아노 뚜껑을 열자 나무 향과 매캐하게 코를 자극하는 니스 냄새가 섞여 났다. 피아노를 덮은 파란 융단 위에 은색으로 피아노 브랜드 이름이 영어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융단을 벗겨냈다. 그리고 살며시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았다. 밤새 쌓인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내는 것처럼 손이 건반과 건반 사이에 빠지고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나는 가장 자신 있는 곡을 떠올렸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학원에 다녔으니까 2년 가까이 되는 동안 꽤 많은 곡을 연습했고 악보를 보지 않고도 칠 수 있는 곡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소나티네 곡의 첫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거 함부로 만지면 안 돼.


    그 아이가 다가와 다급하게 말했다. 단호하고 비장한 음성이었다. 나는 피아노에서 손을 뗐다.


    우리 엄마가 피아노 함부로 만지면 소리가 이상해진다고 했어.


    너도 피아노 치니?


    아니, 나는 바이올린 켜. 피아노는 안 쳐. 피아노는 누나들만 해.


    순간 나는 아이가 피아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피아노는 만진다고 소리가 이상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연주를 잘하면 피아노는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누나들은 피아노 잘 쳐?


    맨날 혼나.


    아이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도 아이를 따라 웃었다. 웃을 때 벌어지는 입과 저절로 구부러지는 등을 서로 바라보며 다시 까르르 소리를 냈다. 우리의 웃음소리는 고장 난 피아노 같은 소리를 냈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그 아이와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아이는 그 사이 팔다리가 조금 길쭉해져 있었다. 어른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원피스 자락을 손가락으로 계속 만지작거렸다.


    어른들은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하고 두 동생들과 나, 그리고 그 아이는 방에 들어가 함께 놀았다. 동생들은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모두 꺼내놓았다. 모형 자동차와 딱지, 조잡한 플라스틱 권총과 구슬들. 한참을 놀다가 동생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심드렁하게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던 그 아이는 슬그머니 방을 나갔다. 나도 그 아이를 따라 나갔다.


    우리 차에 가서 놀래?


    나는 그 아이를 따라갔다. 어쩐지 그 얘가 나와 단 둘이 있게 되길 바란 것 같아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능숙하게 대문을 열었고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섰다. 골목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에 다가간 그 얘는 뒷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를 보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쭈뼛거리다 못이기는 척 안으로 들어갔다. 새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 온 몸을 감쌌다. 움직일 때마다 시트의 가죽 냄새가 났고 부드러운 쿠션이 몸에 닿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는 좌석에 무릎을 대고 일어나 뒤를 바라보고 섰다. 그리고 보드에 놓여 있는 바구니를 가리켰다.


    모과, 너 이거 알지?


    물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가을이 되면 그것을 설탕을 넣고 병에 담아두거나 집 안 곳곳에 놓아두었다. 하지만 그것의 이름이 모과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이름은 몰랐지만 어쨌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부터 내가 정말 신기한 거 보여줄게.

  

    아이는 바구니에 바짝 다가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모과에 갖다 대고는 코 밑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아이의 표정은 마치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처럼 진지했다. 내가 어리둥절해 있자 아이는 차근차근 말했다.


    여기에 손가락을 대고 3초를 맘속으로 세었다 떼는 거야. 그러면 손에서 엄청나게 좋은 냄새가 나. 3초만, 그냥 딱 3초만 대고 있는데도 말이야. 안 믿기지? 한 번 해볼래?


    그리고는 나에게 검지를 들어 보였다. 따라 하라는 아이의 눈짓에 나도 얼떨결에 검지를 들었다.

이제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시작하는 거다.


    자, 하나, 둘, 셋!


    나는 아이와 동시에 모과에 검지를 갖다 댔다. 하지만 그 아이가 말한 3초가 얼마만큼인지 알 수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겨우 한글을 뗐을 뿐 시, 분, 초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날이 밝으면 일어나 학교에 갔고 수업의 시작과 끝은 종소리가 알려주었다. 집에 와서는 배고플 때까지 놀다가 밥을 먹고 잤다.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이 없을뿐더러 시간에 맞춰 지낼 필요가 없던 때였다.


   누구도 나에게 초가 얼마만큼의 시간인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 떼는 것을 그리 걱정하지 않았던 엄마로서는 시계 보는 것도 학교에서 잘 배우리라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부잣집에서는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 엄마가 가르쳐주기 않아 나만 가난뱅이가 된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언제 손가락을 떼야 하는지 몰라 머리가 아득하고 긴장된 몸은 그대로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하고 그대로 뛰쳐나가 도망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3초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애에게 들키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부릅떴다. 그 애가 손가락을 떼는 순간을 잘 포착해 바로 따라 할 수 있다면 그 아이에게 나의 무지를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이의 손가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무 집중해서 쳐다보자 눈이 시리기 시작했다. 숨을 죽이고 있느라 가슴은 답답했다. 긴장한 손가락은 떨리고 손끝은 쥐가 난 것처럼 저릿했다.


    드디어 아이가 손가락을 뗐다. 나는 100m 달리기 할 때 출발 총성을 들은 것처럼 재빨리 모과에서 검지를 떼 몸 쪽으로 가져왔다.


    자, 이제 손가락 냄새를 맡아봐.


    아이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무지가 들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이를 따라 손가락을 코에 가까이 가져갔다.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향기로운 냄새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도화지만 한 솜사탕이 뜨거운 여름 햇살에 녹을 때 풍기던 달짝지근한 냄새, 비 온 뒤 숲에서 피어나는 싱그러운 풀 내가 동시에 배어 있었다. 모과 향이 그토록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인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서로의 미소를 주고받자 긴장이 풀리면서 안도감과 성취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정말 좋지.


    응. 정말 좋아.


    아이는 자신의 마법이 통한 것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나 역시 좋았다. 마법에는 은밀한 비밀과 알 수 없는 비법들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우리는 마법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부렸던 마법을 그 아이는 알지 못한 채였다. 나는 순간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그 이후에는 그 아이를 만난 기억이 없다. 엄마를 통해서 그 얘가 명문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아이가 왜 나만 데리고 자동차 안에 들어갔는지, 모과 향을 왜 내게 알려주고 싶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모과를 볼 때마다 그 아이를 떠올리게 되었고 3초를 하나의 음으로 몸에 각인하게 되었다. 한동안 나는 1초가 모여 3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그 음의 파장이 그칠 때까지의 시간을 3초로 짐작했던 것 같다. 자라는 동안 내내 그 아이를 통해 배웠던 3초의 시간을 피아노 소리로 다시 되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망가질까봐 염려하던 그 아이에게 나는 그것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가르쳐줄, 한 음이 지속되는 그 3초의 감각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까? 확신할 수가 없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시계를 봐왔고 시계 안의 숫자들을 통해 너무 많은 계획과 약속, 규칙과 질서들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내게 그 아이와 함께했던 3초는 너무도 길고 가혹했다. 나는 날카로운 그 3초의 칼날에 언젠가 베어 쓰러질 테지만 그 순간까지 무언가를 기억하거나 잊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아마도 나는 다시 그 모과 향을 맡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무지와 이해, 관계와 단절, 질서와 야만이 공존했던 그 순간에 살아 있던 그 향기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나를 조금은 위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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