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프롤로그

 

 

 

     동거를 하고 있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다.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가 결혼 어쩌고 하는 상품에 가입해서 애인인 알파카와 결혼할 날을 대비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결혼이라….
    지금으로서는 까마득하게 먼 이야기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속한 사회는 이미 나와 애인을 사실혼 관계로 묶어버렸다(며칠 전의 일이다). 좀 어처구니없다. 내 허락도 없이, 자기들끼리 왜? 결혼을 안 하면 가족일 수 없는 걸까? 도대체 결혼과 가족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으며, 왜 가족이 되는데 필수적인 절차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 사진 ]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가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구 비중은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1인가구는 614만 8천 가구다. 전체적인 비중으로 봤을 때 “1인가구(30.2%)가 가장 많고 2인가구(27.8%), 3인가구(20.7%), 4인가구(16.2%), 5인 이상 가구(5.0%) 순”이다.⑴ 결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1인가구, 2인가구 등이 우리 주변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통계다. 나와 애인은 아마도 1인가구에 속하지 않을까? 아니면 최근에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았으니 2인가구인 걸까?

    사실혼 관계라니. 우리는 같이 산 것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성애-가부장제 중심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동거는 곧 결혼의 전단계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지금 사회가 인지하는 삶의 유형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도 소외되는 인구가 발생된다는 점이다. 바로 ‘퀴어’가구의 등장이다. 이성애-가부장제 중심의 사회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이성애-가부장제의 원리를 강화시키고 있다. 이를 전복적으로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결혼을 안 하면 되는 일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부장제-이성애 중심의 문화와 질서가 깨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지금-여기에서 같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외되고 있는 현상이다. 법안 혹은 사회적으로 ‘가족’ 범주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 필요하다. 마침 이 에세이를 쓰고 며칠 뒤에 비혼 동거도 가족으로 인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2021년 1월 25일 월요일, 여성가족부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수립에 가족의 범주 다양성을 확장시킬 필요를 언급했다. 언론에 의하면 “비혼 동거인이나, 사실혼 관계, 서로 돌보며 사는 친구나 노인, 공동주택에서 가족처럼 함께 사는 경우에도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⑵

    여성가족부가 밝힌 바에 의하면 제4차 기본계획(안)을 통해서 ‘모든 가족, 모든 구성원을 존중하는 사회’라는 비전 아래, ‘가족 다양성 인정, 평등하게 돌보는 사회’를 목표로 4개의 영역별 정책의 다양한 가족변화에 대응하는 가족 정책의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가족의 본질적인 개념이 확장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가족 범주 개념 확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거의 문제가 비단 가부장제-이성애의 문제로만 다뤄지는 걸 거부한다. 퀴어와 모든 젠더에 대한 확장의 맥락에서 ‘가족’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본질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거하는 사람들이 동거를 선택하는 이유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가령 퀴어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못한다. 결혼이 정말로 이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라면, 그리고 사회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라면 누구든지, 법적으로 제한 없이 결혼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왜 굳이 결혼을 이성애-가부장제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한 걸까.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결혼을 기대하는 건 우리 부모님만은 아니다. 애인의 부모님도 은근슬쩍 나를 며느리라고 부르고 계신다. 며느리라는 말이 나는 너무 싫지만 뭐, 그냥 애칭이라고 생각하면서 넘기고 있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참고 있을 뿐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며느리’로 불리는 것이 너무 끔찍한데, 뭐 어쩌겠는가. 기성세대의 생각을 내가 지금 당장 뜯어고칠 수 없으니 천천히 고쳐나갈 수밖에.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과 애인네 부모님께 “저희는 지금 함께 살고 싶어요. 내일 말고 오늘이요. 오늘만 살아도 괜찮지 않나요?” 하고 말하고 싶다. 오늘만 사는 일이 왜 철없는 일인지 모르겠다. 내일을 걱정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내일은 오지 않는다. 영원한 오늘의 반복이 이어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동거를 처음 고민했을 때 나는 ‘괜찮아, 어차피 인생의 끝은 다 죽음이야.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살다가 죽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이 에세이를 통해 동거가 이상하고 낯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사회가 정상으로 규정하는 그 ‘정상’이 너무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삶을 중심으로 이 사회의 정상성에 의문을 던지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미 우리 주변에는 동거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서로를 가족으로 부르고 가족으로 사랑하고 친구로, 그리고 지금 이순간의 파트너로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면 당신들은 이미 가족이다. 법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른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가족이다.

 


⑴인구주택총조사,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통계청 보도자료, 2020. P.3
⑵조희형 기자, ‘가족’이 다양해진다...‘비혼 동거’도 법적 인정, MBC뉴스데스크, 2020.01.25.

*참고자료
-인구주택총조사,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통계청 보도자료, 2020.
-사회통계국. 2020 통계로 보는 1인가구. 통계청, 2020.
-박세준 기자, ,여가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2025 세상 모든 가족 함께’공청회 개최, NEWSCPAPE, 2021.01.25.
-조희형 기자, ‘가족’이 다양해진다...‘비혼 동거’도 법적 인정, MBC뉴스데스크, 2020.01.25.

댓글(2)

  • ㅁㅇ
    2021.02.02 12:46

    그럼요. 누가 뭐래도 가족이에요. 사람들이, 사회가 얘기하는 정상성은 참 이상해요. 이상한 걸 이상하다 생각지 않아요. 이 에세이가 그런 의문에 물꼬를 틔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 2021.02.12 12:10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가족으로 호명하는 모든 가족이 행복하고 따뜻한 연휴를 보내시기를 바라며, ㅁㅇ님도 따뜻한 설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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