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동거’하면 경제적인 책임은 누가 지나요?

 

 

 

    답은 각자, 그리고 같이고 생각한다.

    꼭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엉망진창 동거 일기>라는 연재 메일링을 진행한 적이 있다. 메일링을 진행하기 전, 동거에 관해서 당신이 궁금한 점은? 혹은 질문하고 싶은 점은? 하고 질문을 했다. 이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주거 공간 마련의 비용’, ‘생활비의 분담에 관련된 질문이었다. 내가 꼽아둔 예상 질문을 빗나가는 질문이라서 좀 당황했다.

    내가 생각한 질문은 애인과 같이 살면 좋은가요?’ 혹은 애인과 헤어지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와 같은 질문이었다. 실제로 친구들이 많이 물어본 질문이라서,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경제적인 질문이 많은 이유는 아마 아무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애인인 알파카의 도움으로 주거 문제와 생활비 문제를 60% 이상 해결했다. 알파카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 광주로 오면서 구한 자취방에 들어가 살았기 때문이다. 이때는 동거를 하겠다고 부모님들께 알리기 전이었다. 그땐 월세와 공과금 같은 것은 알파카의 부모님이 모두 내주셨다. 함께 사는 줄 모르니까. 돌이켜보면 그때가 좋았다. 물론 그때도 나는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을 하면서 지냈지만.

 

    지금은 동거를 본격적으로 선언하고 함께 살고 있다. 경제적인 부분은 그냥 살다 보니 네 돈과 내 돈의 구분이 뚜렷하게 없다. 다만 누군가가 장을 보는데 돈을 쓰고, 누군가가 취미생활이나 데이트를 하는데 돈을 쓰고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꼭 해당 분야에서만 쓰는 건 또 아니라서. 애매하다. 쓰고 싶은 사람이 쓴, 하면 대답이 될까. 하긴. 요즘에는 둘 다 백수라서 따질 돈도 없다.

 

    알파카는 산재처리 때문에, 나는 부당 해고 때문에 직장이 없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돈이 끊기니까 정말 죽을 맛이다. 매달 나가는 집 이자를 안 낼 수도 없고, 신용카드 비용을 어떻게 안 낼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있는 현금을 모두 모아서 일단 급하게 나가야 하는 비용을 해결하는 데 썼다. 20212월은 우선 현금 없이 보내야 한다. 퇴직금과 해고예고수당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내 가족의 주거 실태를 이야기해보자면, 주거비용은 알파카의 부모님이 해결해주셨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알파카의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이전 집의 전세금으로 보증금을 마련했다. 우리의 경우, 아니 알파카의 경우, 원가족과의 분리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서 처음에는 불만족스러웠다. 집에서 용돈도 받고 뭣도 받고 하는 게 좀 부럽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은 동거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선언하기 전부터 이미 같이 살고 있었지만), 정말로 돈 한 푼도 보태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능력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애써 생각하기로 했으나 매 순간 무너졌다. 마음 , 하고서 무너졌다. 세탁기를 사주신 알파카네 부모님 때문에, 냉장고를 사주신 알파카네 부모님 때문에. 아니, 아무것도 보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우리 부모님 때문에. 미안해서. 그냥 너무 미안해서.

 

    이런 경제적인 차이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좌절했다. 내가 아무리 능력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제 하나 해결 못한다는 점에서 자존심도 좀 상했다. 그때 알파카는 나를 잘 위로해줬. 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 그냥 꼭 끌어안아줬다. 무슨 말을 하든지 나에게 상처가 될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이제는 ‘고양이들만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에 집을 마련할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세 보증금만으로는 이사하기 어려워, 안심 전세자금이라는 상품을 통해서 이사했다. 광주에서 서울을 오가며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고 답할 것 같다. 지인의 덕으로 좋은 중개사분을 만나 집을 보기 시작한 지 삼 일 만에 지금의 집을 구했다.

 

    지금 집은 서향이라 빛이 과하게 들지 않아 눈이 부시지 않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고양이 두 마리가 느긋하게 적응할 수 있는 규모의 집이라서 마음에 꼭 든다. , 지금 이 집의 명의는 내 명의로 돼 있어 은행 이자는 내가 내고 있다. 공과금은 알파카가 내고 있다. , 매달 만 원의 관리비도 내가 내고 있다.

 

 


 

    여기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동거를 준비하고 있다면 1+12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나와 알파카를 더하면 2명의 삶에 대한 책임만이 필요한 게 아니다. 둘의 삶에 대한 책임감에 플러스알파(α)’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가령 우리의 경우에는 우리 둘의 삶을 더했을 때 3명의 삶에 대한 책임이 필요했다. 연인이자 친구, 가족으로서의 책임과 관계가 동시에 요구됐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것은 그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가족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첫째 서로의 노력, 둘째 나의 노력, 셋째 알파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무엇이든 두 가지가 아니라 최소한 세 가지가 필요하다.

동거는 필요에 의한 동맹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필요든 간에 지금이곳에서의 동맹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잠시라도 가족이다. 우리가 원하는 한 가족이다. 지금이곳에서 같이 살고 싶은 사람과 사는 삶. 그 사람과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까 하는 고민을 연속적으로 하는 무수한 노력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된다.

 

    연애 10년째, 동거 5년차. 이런 나지만 그럼에도 매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알파카가 하지 않은 설거지를 보면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마음의 목탁을 툭툭 치며 언젠가 하겠지 하고 넘기는 마음이나. 빈 통장을 보면서 어떻게든 돈이 모이겠지 하고 목탁을 다시 툭툭 치는 마음 같은 것들. 요즘은 좀 마음이 약해져서 경제적으로 든든한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에 매일 울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가족이* 좋다.

 

    그래서 오늘의 아침 인사는 나와 가족이 돼 줘서 고마워.”

라고 고양이들에게 말했다. 알파카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알파카는 아침밥을 먹은 뒤에 침대에 눕더니 다시 쿨쿨 잔다. 오늘은 알파카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 날인데, 툭툭, 저 알파카가 정말로 하하, 귀엽네. 정말. 아무튼 고맙다. 나랑 가족이라서.

 

 

* 나는 가족이라는 표현을 원가족내 가족으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원가족은 부모님과 이루고 있는 가족, ‘내 가족은 고양이들과 알파카로 이루어진 가족을 지칭한다. 나는 내 가족이라는 말이 나는 참 좋다. ‘내 가족이란 표현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 내가 보듬고 돌봐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느껴져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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