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무리 좋아해도 공간 분리가 필요하다.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분리가 안 된 공간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의 분리가 필요하다. 처음에 이런 걸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몰랐다. 처음 같이 살 때는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일이 너무나도 좋아서 공간의 분리 같은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못했다.

    ‘함께 살고 싶어서 사는데 공간을 분리할 일이 뭐가 있겠어?’하고, ‘내가 선택한 가족인데!’하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엄청난 오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나라는 사람은 공간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 고요한 침묵을 유유자적하게 즐겨야 하는 사람이 나였다.

 

    이런 것을 알게 것은 애인인 알파카와의 싸움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그리고 별것 아닌 일로 싸웠다. 한 번은 딸기를 씻는데 퐁퐁을 물에 희석시켜서 씻었다고, 그건 먹을 수 없다며 화를 냈다. 퐁퐁으로 딸기를 씻은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희석도 했는데? 먹고 싶은 사람이 씻던가, 이러고 우리는 진짜 심각하게 다퉜다. 알파카와 말도 섞고 싶지 않았지만 떨어져 있을 공간이 부족했다.

또 한 번은 알파카에게 싫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알파카가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하는 것 때문에 싸웠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작업을 하지 못한다. 그걸 몇 번이나 알파카에게 말했음에도, 알파카는 자꾸만 작업하는 나를 쳐다봤다. 두 사람 모두의 책상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됐다. 함께 살면 함께 살수록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있는 일이 곤혹스러웠다.

 

    알파카와 같이 살고 싶어서 시작한 동거였지만, 막상 같이 사니까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시에 함께 살던 집은 주방분리형 투룸이었다. 공간의 특성상 거실이 없고 방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투룸의 공간을 침실 겸 옷방공부방으로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알파카랑 싸운 뒤에는 집에 있을 곳이 책상 말고는 없었다. (싸우지 않아도 책상 앞밖에 갈 곳이 없긴 했다.) 잘못은 알파카가 했는데 내가, 마치 쫓겨나듯이 침실로 가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책상에 붙어있고 싶어서 책상의 배열을 바꿔가면서 공간의 분리를 시도했다. 끝내는 알파카의 책상이 침실로 넘어가고 옷장이 공부방으로 오면서 사단이 막을 내렸지만. 서로의 개별 공간을 만드는 일이 함께 살면서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원가족처럼 내 선택 없이 생겨난 가족이 아니라, 내 선택으로 인해서 생겨난 가족이기 때문에 싸울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건 엄청난 오해였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거실과 침실, 그리고 공부방으로 구성돼 있다. 거실에는 큰 식탁을 놔서 손님을 초대할 때 사용한다. 손님이 없을 때는 내 작업 공간이다. 공부방에서 알파카와 같이 있으면 집중도 안 되고 자꾸 게임이 하고 싶어져서. 덕분에 나는 공부방에 있는 시간보다 거실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길다. 공부방에 있는 데스크톱으로는 인쇄나 간단한 작업, 업무 등을 처리한다. 그래서인지 알파카는 종종 공부방을 내 방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 집에 개인 공간이 어디에 있어?”

    그 때마다 나는 장난처럼 말하곤 하지만 함께 살면서 자신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공간이 한 가지 즈음은 있어야 한다는 걸 이미 충분히 알고 있기에, 굳이 공부방이 알파카의 영역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공부방은 알파카의 영역, 그리고 거실은 나의 영역이다. 우리는 마치 고양이처럼 각자의 영역 속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종종 공용 공간인 세탁실에 가서 담배를 피곤 한다.

 

[사진] 사실 모든 공간의 주인은 고양이라는 걸 가끔 잊는다

 


 

    뭐, 지금이라고 싸우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의 모토는 싸우지 말자가 아니다. ‘잘 싸우고 잘 화해하자라서 이 집에서 싸움이 멎거나 없는 날은 없을 것이다. 싸움을 잘 하면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또, 사이가 돈독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이 아니라 애인인 알파카 역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싸움이 마를 날을 없을 것 같다.

 

    잘 싸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간의 분리라고 생각한다. 가령 책상은 나만의 공간, 이 자리는 나의 자와 같은 것이 규정돼 있어야 한다. 싸운 뒤에 서로 떨어져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돌아보면서 보다 더 잘 싸울 수 있다.

 

    특히 나처럼 내 물건이나 공간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라면 더욱 더, 집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정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내 공간과 시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래서 싸운 뒤로는 내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그 뒤에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왜 싸웠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화해할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파카와 대화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우리는 이제 그 시점을 육감적으로 인지한다.

 

    “알파카 이야기 좀 할까.” 혹은 계피야, 이야기 좀 할까.” 로 서문을 연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 자신의 생각,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 같은 것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동시에 이런 행동이 네게 상처를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며,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절대로 상처를 받았다면이라는 워딩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상처 받았기 때문에 싸웠고, 서로의 행동이 ~라면이라는 가정의 어법이 어울리지 않는,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딸기로 시작한 싸움이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파트너이기 위해서, 서로의 인생에 짝꿍이기 위한 방법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계속해서 친구이자 애인이며, 서로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요즘은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경제적인 책임, 사회적인 책임, 정서적인 책임 같은 것들을 어떻게 나눠야 좋을까. 우리가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때 발생하는 책임을 어떻게 분담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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