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무슨 관계세요?”



    “
무슨 관계세요?”

 

    이 질문은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 중 하나다. 무슨 관계냐고 묻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딱 봐도 결혼한 것 같지는 않은데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라는 전제를 갖고 질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애가부장제 사회는 나와 알파카의 관계를 연인혹은 예비 부부 호명하기를 고집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때 예비 부부라는 호명은 굉장히 폭력적이다. 나와 알파카는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는 행위가 이 사회, 그러니까 이성애가부장제에서 보편적으로 제시하는 가족상에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예비 부부라는 호명은 이성애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부부로서 기능할 것을 기대하도록 하는 효과를 갖는다.

    덕분에(?) ‘예비 부부라는 표현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다. ‘예비라는 것은 무엇인가가 되기 전, 도달하기 전의 단계를 의미한다. 즉 온전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 나와 애인은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라고 이미 장담하고 있는데, 이 사회는 우리의 존재와 가치를 예비적인 것으로 국한시킨다.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든다. 동사무소나 구청, 시청에서는 나와 알파카를 예신(예비 신혼부부)’로 부른다. ‘아니, 결혼 안 한다고요.’ 혹은 아니, 저희 예비가 아니라 가족이라고요.’라고 말해도 제도는 우리를  여전히 예비로 수식한다. 그렇게 안 하면 안 되는 큰 병에 걸리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심지어 내 친구들도 나를 곧 결혼할 사람으로 대하곤 한다. 알파카랑 연인사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같이 산 기간이 기니, 너희는 결혼하고 말 것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말한다. “너랑 알파카가 결혼하면 축의금 N금액 낸다!”라고 서로 경쟁하듯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먹기를.) 친구들도 나의 지금보다는 먼 내일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한다. 왜 알파카랑 나는 지금 연인 사이거나, 서로의 파트너인 관계가 될 수 없을까.

    종종 주변에서 우리의 관계를 짝꿍’, ‘파트너등과 같은 단어를 통해 예비적인 것과는 다른 것으로 치환시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짝꿍’, ‘인생의 파트너라는 단어는 우리의 가족양상을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우리가 아니라 지금이곳에서의 우리 관계를 수식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시도가 보다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정하는 것은 나와 알파카겠지만, 우리가 우리를 호명하는 단어들이 일상생활에서 보다 폭넓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 우리를 호명하는 단어가 보편적인 힘을 가지고서 이 사회와 제도 안에서 우리를 예비가 아닌 다른 단어로 호명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이해하는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알파카에게 우리 관계가 무슨 관계인지 물어봤다
. “애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더 심층적으로 물어봤더니 알파카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서로가 필요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만약에 우리 둘만 좋다고 한다면 나는 이대로 살아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친구가 제발 철 좀 들고 정신 차리라고 했지만. , 기왕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엉망으로 살면 좀 어때서. 사회적인 기준에 부합한 정신 차리고 사는 삶이 아닌 삶을 사는 내가 좋다.
    아니, 사실은 불안하다. 이 삶은 우리가 합의한다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삶이라서. 잠깐만, 결혼도 그렇잖아? 그러니 기왕 한 번뿐인 인생,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순간을 위해서 살고 싶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지금 같이 살고 싶은 우리 둘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 마음만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우리 둘이 좌지우지될 필요가 없다면, 만약에 우리가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간다면 우리는 예비가 아니라 온전한 삶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간섭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반려묘도 가족인데 우리가 가족이 아닐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우리 둘만 행복하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 우리 사회에서 동거라는 가족 형태, 혹은 주거 형태에 대한 시선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다양한 구성원과 다양한 형태로 가족이나 공동체를 꾸린 들이 아무렇지 않게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 우리 사회를 이루는 보다 많은 구성원들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궤도로 여겨지는 삶의 주기와 형태를 따라서 걷지 않더라도 누구나의 삶이 정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면 좋겠다. 모든 방식의 삶이 살 만한 삶으로 여겨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제 곁에 있는 누군가를 가족이라 부르는 모든 가족이 행복할 수 있기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당사자들의 고민이자 당사자들의 문제인 동시에, 누군가와 공동의 삶을 꾸리기로 결정한 모든 이들이 차별 없이 한 사회의 인정과 지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참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묻고 싶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저랑 알파카는 어떤 관계일까요?”

    어떤 관계이기에 서로에게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의지하며 함께 삶을 살아가기를 결심하게 된 걸까.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나는 나 개인의 삶이 당신의 삶과 연결돼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동거의 정당성과 삶의 다양성에 대해서 주장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나는 지금을 살고 싶다. 내일이나 모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알파카와 나를 가족으로 부르고 싶다. 더불어 서로가 가족이라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 가족으로 호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의 삶이 행복하기를.

 

*최근에는 국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동사무소에 방문했더니 알파카와 예비 신혼부부이기 때문에 우리 둘의 재산을 합쳐서 본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학자금 대출은 아직 나와 부모님의 재산을 묶는다. 어디서는 예비신혼부부이며 어디서는 1인가구로 취급 받는다. 정말이지 엉망진창인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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