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옥탑방 사기꾼 예술가


    “
고향이 어디야?”
    “마산이요.
    “그럼 아버지가 어부시니?”
    내가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알바하던 편의점 사장은 마산이 어촌인 줄 알았나 보다.

마산이 바닷가 근처이긴 하지만 나는 직업이 어부인 분을 만난 적이 없고 회도 좋아하지 않는다. 마산에 있을 때는 서울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는, 서울에서 마산은 아주 멀었다.

    나는 줄곧 마산을 떠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서울에 가면 직업도 다양하고 즐길 거리도 많고 재밌는 경험과 기회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마산을 떠나던 날, 서울에서 무엇을 이룰 것인가에 대해 상상하던 그 설렘이란...

    마산을 떠나 처음 살게 된 곳은 뜻밖에도 서울이 아닌 천안이었다. 함께 살기로 한 친구 B구한 집이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일러스트 학원을 다녀야 했지만, B는 천안에 있는 대학을 다녀야 했던 것이다. B내게, 서울과 천안이 아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서 문제없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통비만으로도 부담스러웠고 매번 막차를 놓칠 뻔했다. 그리고 늦은 시간의 지하철은 무서웠다. B가 구한 집은 사글세였는데 미리 1년 치 집세를 다 내버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근처에서 구한 오뎅바 알바만 하며 반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왜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고 바보 같았을까. 이 일을 시작으로 B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내 생애 최악의 인연 넘버 1이다. 내 저주로 B가 죽는다 해도 손톱만큼도 미안한 마음이 안 들 거라 장담하는 악연의 B,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울고 있을 때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를 안아준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B를 떠올리면 괴로운 만큼 즐거운 추억도 많다. 그 추억들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울에선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대.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다단계에 안 걸려본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친구의 친구였던 친구에게 속아 일련의 다단계 사건을 겪었는데 다단계에 붙잡혀 집을 비운 사, 집에 도둑이 들어서 옷과 물건의 반이 털렸다. (이 사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 그제야 나는 다 포기하고 천안 생활을 접고 서울로 이사하기로 했다. 날려버린 집세와 시간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했다. 서울에서 그나마 익숙한 홍대 고시원을 얻었다. 홍대 거리에 있는 건물 8층에 위치한 저렴한 고시원이었는, 창문 없는 공간에서는 도저히 살 자신이 없어서 3만원을 더 주고 월 28만 원짜리 창문 있는 방을 계약했다. 그 작은 창밖으론 홍대 거리가 바로 내려다보여서 언제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고 겨울에는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나는 내가 교회 꼭대기 다락방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샤갈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거리에 늘어서 있던 상가들의 업종도,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진 홍대지만 그 고시원만큼은 이름만 여러 번 바뀌며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고시원 창문과 창밖의 홍대 거리 :)

    고시원 생활 11개월 만에 간신히 옥탑방으로 이사를 했다. 작은 옥상과 넓은 창이 마음에 쏙 들었던 이 집은 판자인지 석고인지는 모르지만 그 벽에 압정이 쑥쑥 들어갔고 만듦새가 불안불안해서 사람이 주거 목적으로 살기 힘든 집이었다. 놀랍게도 부동산을 통해서 얻은 집이다. 어느 날 전등이 갑자기 쿵 떨어져 대롱거려서 깜짝 놀라 3층에 사는 주인아저씨에게 알렸다.
    “방 천장 전등이 떨어졌어요.
    “에휴, 여자들은 전구도 하나 못 갈아가지고.”
    “아니, 그게 아니라 전등이 떨어졌다고요.
    한숨을 쉬며 올라온 주인아저씨는 매달린 전등을 보고 조금 민망해하며 고생하지 말고 시집이나 가라고 했다.

집을 그렇게 날림으로 지어 불법으로 세를 놓은 인아저씨가 할 말인가.  
    난 이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업자와 주인아저씨도 저주 리스트에 넣기로 했다. 당시는 내가,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유독 많이 들은 시절이었다. 내가 아무리 불쌍하고 한심해 보여도 그렇지, 그들이 무슨 자격으로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건지 모르겠다. 왜 나의 고생이 결혼과 연결되는 건지도.
    그래도 옥탑의 추억은 꽤 즐겁다.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이 방 삼면에 넓은 창이 있었던 것인데 그 창으로 하루 종일 빛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새벽, 아침, 점심, 오후, 저녁, . 그 외에도 시간마다 색이 모두 달랐다. 빛을 따라다니며 그림을 그리던 모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동생도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았다. 옥탑에서의 생활은 거의 편의점 알바를 하고 빈티지 의류 조금과 뭔가를 만들어 파는 노점 생활로 연명하던 시절이었고, 동생도 안정적이지 않아서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살며 간신히 월세를 냈다. 음식은 거의 편의점 폐기 음식을 먹었고 남은 건 얼려놓고 데워먹기도 했지만 스타벅스 그린티 프라프치노는 잊지 않고 종종 사먹었다. 나는 아직도 삼각김밥이 싫, 그린티 프라프치노는 끊었다.

    옥탑 시절은 나의 광장공포증이 가장 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편의점 알바도 하고 노점도 했지만 그 외엔 어디도 혼자 다니질 못했다. 이상하게 집 앞 편의점도 못 가서 다른 사람 눈에는 엄청난 게으름뱅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번은 동생이 고향집에 며칠 내려가 혼자 지내고 있었는데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살 돈은 있었지만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나가지 못했다. 대신 각 잡고 온 집 안을 다 뒤졌는데, 부침가루가 발견된 게 아닌가. 나는 부침가루로만 부침개를 만들어 먹었는데(맛있음) 동생에게 말했더니 기가 막혀 했다.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마다 매번 웃음이 난다. 나는 지독히 가난하고 지독히 외로웠던 반 고흐의 인생과 내 삶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옥탑 시절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은 당연히 나의 고양이 미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B가 옥탑 근처로 이사오며 다시 연락이와서 만나게 됐고 또 다른 최악의 기억을 만들면서 생긴 행운이다.

엄마 고양이의 코 얼룩을 똑 닮은 미쉘의 이름은 비틀즈의 노래 미쉘에서 따온 것이다.
나와 함께 힘든 옥탑생활을 견뎌온 나의 사랑 미쉘.

    Michelle, ma belle
    These are words that go together well
    My Michelle
    Michelle, ma belle
    Sont des mots qui vont tres bien ensemble
    Tres bien ensemble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그 외에도 좋아했던 것들이 많다.
    길에서 낑낑대며 주워와 작업 책상으로 쓰던 아주 좋아했던 검정색 옻칠의 커다란 좌식 상.
    사람 네댓 명이면 꽉 차는 작은 옥상과 빛바래고 덜컹거리던 파라솔.
    분홍색 땡땡이 원단을 달아놓은 넓은 창과 종이박스를 쌓아 만든 수납장.
   
    옥탑방은 꼭 어설프게 손으로 만든 허름한 종이집 같았다
.    

옥탑방 시절 :)


    부끄럽긴 하지만 나는 내가 진짜 예술가가 될 줄 알았고 그래서 샤갈
, 모네, 고흐 등의 예술가들이 내 현실 도피에 큰 도움을 주었다. 어떻게든 그들의 삶과 내 삶을 끼워 맞추고 공통점을 찾아내, 지금은 힘들지만 나도 그들처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 상상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든가 고생을 해봐야 훌륭한 예술이 탄생한다같은 말들을 참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현실 도피를 위한 말들이라는 걸 나중에 깨닫고는 그 말들이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현실을 견뎌내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된 지점도 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좋은 환경과 건강한 마인드에서 훌륭한 예술작품이 나온다. 좋은 환경, 돈이 많고 안정적인 환경을 뜻하는 건 아니다. 각자에게 좋은 환경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고생이나 고난을 일부러 겪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특히 건강을 혹사시키는 일은 피하면 좋겠다.

    지금도 계속 실패와 실수들은 토끼풀 번지듯 계속 생겨나고 풍성해지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이, 실패와 실수의 과정들이 아름답기도 하다. 토끼풀들 사이숨어 있는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듯이 많은 실패들 사이에서 아름답고 단단한 희망을 찾을 수 있길 기대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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