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_할머니

 

 

    황토색보다는 진한 베이지색에 가까운 면장갑, 버버리 이미테이션인 듯한 체크 머플러, 빛바랜 마트료시카 인형, 기도하는 아기 천사가 그려진 플라스틱 접시, 드문드문 금테가 벗겨진 옥색 밥그릇.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의 유품들이다.

    돌이켜보면 할머니도 물건에 집착이 깊었다는 게 생각난다. 1층짜리 작은 단독주택인 할머니 집에는 잡초가 무성한 작은 마당이 있었고 집안 여기저기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잡다한 물건이 많았는데, 깨진 부분을 접착제로 붙여 놓은 도자기 장식품에다 내가 살짝 손이라도 댈라 치면 금세 불호령이 떨어졌다. 방에는 커다란 자개장롱과 자개서랍장들이 화려하게 서 있었고 곳곳에 먼지 쌓인 플라스틱 조화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크리스털 컵과 접시,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듯한 오래된 미제 간식도 많았다. 나는 할머니 집에서만 풍기는 그 특유의 분위기를 참 좋아했다.

    할머니의 별명 중 하나가 영국신사였는데 키도 크고 항상 옷을 멋지게 입고 다녀서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방 안에서는 화장품 향기가 났고 옷장에는 옷이 가득했다.
    내가 할머니를 만날 때면 늘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한 바퀴 돌아봐라”

    그러면 나는 한 바퀴 빙그르르 돌고 할머니는 좋지 않은 시력으로도 내가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 내 오늘 복장이 어떤지를 살피셨다. 나는 어른의 말을 고스란히 받아 안는 순한 손녀가 아니었기에 항상 혼이 나기 일쑤였다.

    늘 다리가 아팠고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던 할머니는 우리 가족 서열 1위였고 내게 항상 무서운 존재였다. 어릴 때부터 코가 낮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10번씩 손으로 코를 세우라고 했고 햇볕에 타면 안 된다며 그늘에만 있게 했다. 매운 걸 못 먹어서 혼나고 너무 자주 울어서, 또 소리 내어 운다는 이유로 혼났다. 웃을 때 잇몸이 보인다고 늘 손으로 가리라고 했다. 살 빼야 한다는 소리는 다섯 살 때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그래서 난 내가 못생겼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뚱뚱한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욕할 거 같아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음식 먹는 걸 피하고, 돌아서면 폭식을 했다. 식사를 챙기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드는 일이었다.

    내 외모 콤플렉스가 꼭 할머니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봐도 정말 예뻤던 내 동생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예뻐하고 부러워했다. 내 안엔 열등감이 깊게 자리 잡았다. 나는 거의 여초 집단에서 자랐는데 여자들은 외모에 대해 엄격했다. 다들 예쁜 사람을 좋아했고 자기 외모에 불만이 많았으며 날 걱정하거나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예쁜 외모가 그나마 여성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하얀 피부, 날씬한 몸매, 또렷한 이목구비 등 그 예쁜 외모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진 걸까.

초등학교 3학년 때쯤 동생과 함께 다녔던 미술학원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그 선생님은 예쁜 친구들과 못난 친구들을 나누곤 했는데 동생을 부르며 “선생님 닮은 예쁜 친구들을 이쪽으로~”라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동생으로부터, 그 당시 선생이 “네 언니는 호박이야”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학원에서 참여한 전국 미술 대회에서 나는 최우수상을 받고 동생은 우수상을 받았는데 그 선생님은 동생에게 “넌 너무 잘 그려서 선생님이 도와준 줄 알고 우수상 준 거야. 언니보다 네가 더 잘 그렸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미술학원 선생님이 아직도 밉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내게 직접적으로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난 스스로 누군가가 정해놓은 ‘여자’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예쁜 치마나 핑크색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바지만 입고 캐주얼한 옷을 주로 입었는데 할머니는 내게 항상 원피스를 입히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만 유일하게 동생보다 나를 예쁘다고 해줬던 것 같다.
    할머니의 외모 평가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내가 할머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기본 몇 시간은 옆에 앉아서 할머니의 억울함에 대한 토로와 원성을 들어야 했는데, 그 내용을 채운 건 대부분 엄마에 대한 것이었다. 엄마 욕 말이다.
    세월이 흘러 고향을 떠날 땐 ‘드디어 탈출하는구나’ 하며 정말 기뻤더랬다. 서울에 와서도 몇 시간씩 통화를 하며 할머니의 한탄을 들어야 했지만 물리적 거리와 시간은 결국 그렇게 진득했던 할머니와 나의 관계를 헐렁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할머니를 정말 미워했지만 멀어지고 나니 할머니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 “많이 힘들제?” 라는 한마디에 펑펑 울어버린 기억이 있다. 나는 사실 할머니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사람들을 못 알아볼 때, 적어도 나는 알아보겠지 했었다.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때 나는 슬픔보다는 서운함과 절망을 더 크게 느꼈다.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얼마간 지내시다가 내 곁을 영영 떠났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복잡하다. 날 너무 힘들게 한 것이 너무 밉지만 또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대 여성들의 고된 삶의 풍경이 할머니의 삶 안에도 고스란히 스며 있다. 할머니가 겪은 여성으로서의 차별과 고난을 할머니와 똑 닮은 내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내게 잘못된 집착을 보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할머니는 당신의 괴팍한 성격만큼이나 뒤에서 욕을 많이 들었고 병원과 노인정, 교회에서도 왕따를 당하곤 하셨다. 그래서 정말 많이 외로우셨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남은 텅 빈 방을 둘러보니 그렇게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했던 할머니의 분위기를 찾기가 힘들었다. 내가 고향을 떠난 뒤 할머니는 우리집에 이사 와서 내 방에서 지내셨다. 할머니의 집을 가득 채웠던 할머니의 소중한 물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사라졌고, 내가 좋아하던 할머니의 집도 사라졌다고 들었다. 할머니는 내 작은 방 안에 자개 서랍장 하나와 한두 개밖에 남지 않은 도자기 인형, 큰 글씨 성경책, 찬송가를 듣는 카세트 라디오와 볼륨을 최고로 높여야 하는 작은 TV만 두고 사셨다.

    버려지고 잊히고 사라진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할머니가 작은 방 안에 앉아 볼륨을 크게 키운 채 TV를 보는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존재감이 그렇게 크던 할머닌데 이제는 그녀가 꼭 버려지고 잊혀져버린 존재인 것만 같다.




◈ 번외편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도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터라 내가 상주 역할을 맡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상주를 해야 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아빠가 못하면 고모가 하면 될 텐데 말이다. 아들만 상주를 할 수 있다는 것부터 너무 어이없지만 아들이 상주를 못할 경우 딸이 아닌 아들의 자식이 하는 건 또 무슨 규칙일까.

    할머니와 부모님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셨는데 교회 사람들이 장례식에 찾아왔다. 그런데 할머니가 다니는 교회, 엄마가 다니는 교회, 아빠가 다니는 교회가 다 달랐다. 원래 부모님은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교회 담임 목사의 불륜 사건이 터지며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로 갈리면서 교회도 둘로 나뉘었고, 우습게도 엄마 아빠 역시 의견이 달라 둘로 갈라졌다. 재밌는 건 엄마가 목사를 지지하는 쪽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두 군데의 교회에서 장례식에 찾아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도 했는데 할머니 교회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프시면서 교회에 못 나가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다닌 교회이고 할머니는 권사가 너무 되고 싶었던 나머지 목사에게 따로 돈도 꽤 드렸다고 들었다. 결국 권사는 못 되고 집사인 채로 돌아가셨지만…. 장례가 치러지던 중 참다못한 고모들이 화가 나서 교회에 전화해서 따졌다. 교회 사람들은 나중에서야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쓸쓸한 장례식이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고모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세 군데의 교회에서 찾아든 이들 덕에 결과적으로는 꽤 북적북적한 장례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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