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판도라의 상자

 


 

    모든 추억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모든 기억을 추억할 수는 없다는 말을 어느 소설책에서 읽었다.
    요즘 내 낡은 기억과 추억을 떠올려보면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흐려지, 즐겁고 아름다웠던 추억은 선명해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마음은 편하지만 조금 슬프기도 하다. 아픔을 지우고 행복만 남긴 것이 왠지 거짓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 고향집에서 보관해오던 옛 친구의 편지와 사진이 든 박스가 택배로 도착했다. 오랜만에 박스의 실물을 보려 하니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만 같았다. 가끔 궁금해져서 열어보고 싶다가도 얼핏 떠오르는 과거의 부끄러운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어서 외면해 왔지만, 최근 들어선 내 머릿속에만 있는 기억이 아닌 조금은 객관적인 과거가 궁금해졌다.
    풀풀 날리는 먼지와 함께 낡은 박스 안에 묻혀 있던 오래된 기억과 추억을 꺼내 그 조각들을 맞춰보기로 했다.


illust cellophane




    “마산에 피어싱 가게가 있나요?”
    한창 유행하던 세이클럽의 마창진(마산,창원,진해) 스트리트 패션 어쩌고 하는 이름의 클럽에 가입해서 처음 글을 남겼다.
    더 어릴적 죽어버릴까 죽여버릴까라는 이름의 다음카페에서 알게 된 어떤 남자가 내게 매일 음악을 추천해줬는데 그때 록의 세계를 알게 되면서 펑크에 푹 빠졌, 서울 홍대에서 유명하다는 크라잉넛이라는 펑크 밴드 알게 됐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크라잉넛 다큐가 방영됐는데 한 멤버가 옷핀으로 귀를 뚫고 옷핀 귀걸이를 한 모습을 보고 이게 펑크지!” 하며 곧장 따라 하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괴짜들 많은 미술 학원에서 옷핀으로 귀를 뚫거나 옷핀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한동안 선생님과 아이들은 펑크걸이 되고 싶은 나를 엽기걸이라고 불렀다. 내가 남자였다면 아마 엽기보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조신해야 할 여자아이의 그런 과감한 행동이 그들에게는 생소하고 불편했던 것 같다. 학원에는 이미 피바다라는 이름의 펑크 밴드를 하는 잘나가는 남자 선배도 있었다.
    펑크를 좋아하다 보니 피어싱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스무 살이 넘으면 코 피어싱을 하려고 했는데 귓불처럼 내가 스스로 뚫을 수는 없으, 지방에는 없을 것 같은 피어싱 가게를 찾던 중이었다. 나중에 찾게 된 피어싱 가게에서 4mm 귀 피어싱을 처음 했을 때는 별로 아프지 않았는데 코 피어싱을 했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팠다. 나는 왠지 해방감을 주는 그 통증을 좋아한다. 코 피어싱을 한 날은 엄마와 심각하게 싸운 날이었다. 나는 마음이 아플 때마다 겁이 없어진다.

    “시내 ㅇㅇ골목 안쪽 옷가게에서 피어싱도 해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마산에서 보니 반가워요.”
    질문 글을 남기고 며칠이 지나 대충 이런 내용의 쪽지가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쪽지를 주고받으며 동성인 우린 금세 친구가 되었, 바로 만나기로 했다. 인연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운명 같다. 언젠가 우연히 들어갔던 신발 가게에서 본 알바생이 너무 귀여워서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는, 그 알바생이 바로 내게 세이클럽 쪽지를 보내온 친구였던 것이다. 그 친구 A는 나와 성격은 달랐지만 나이도 같고 키도 비슷했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취향도 비슷해서 종종 자매냐는 소리도 듣곤 했다. A는 인기도 친구도 많고 무엇보다 참 재밌는 친구였다. 요즘 말로 인싸였던 A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은 내가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에너지도 넘쳤던 시기였던 것 같다. 시내에서 함께 구제 구루마와 니뽄 소쿠리라는 이름의 빈티지 노점을 하고 길거리에 우르르 모여서 순대와 떡볶이를 먹었다.  A에게는 시내에 매일 나오는 멋진 동성의 나이트 삐끼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덕분에 노점이 끝나면 항상 공짜로 나이트에 가서 실론티를 마시고 앉아서 A무리가 춤추는 걸 구경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시끌벅적했, 사람들은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 했으, 아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시내에 나가면 여기저기 인사하기 바빴다. 그들과 어울리는 일은 내게 아주 벅찬 일이었지만 함께 있으면 그들처럼 나도 특별해진 것 같았다. 그때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아마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AA무리 친구들도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나는 대학생이었다. 길거리 생활과는 달리 학교 안에서의 나는 존재감이 없었다. 그래도 인싸가 하는 건 다 흉내내려고 끔찍이도 가기 싫었던 OTMT에 참가했는데, 역시 언제나처럼 실패와 부끄러운 기억만 잔뜩 만들어냈다. 근데 그럴 때 가끔 나를 구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과에 굉장한 인싸 언니가 있었는데 OT 때 나를 콕 집어 니는 어떻게 말을 한마디도 안 하노? 내 옆에 앉아라라며 나를 챙겨줬다. 사실 그게 더 창피하고 수치스러웠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언니 옆에 붙어 있었다.
    소심하지만 열정은 넘치 나는 예술가가 되려면 실제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1년을 휴학하고 꽤 스팩터클한 경험들을 만들고 만신창이로 다시 복학했다. 내가 의지하던 언니도 이제는 없고 낯설음은 배가 되어 나는 먼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붓을 씻고 있으면 옆자리에 있었던 친구가 놀라며 너 수업 왔었니?”라고 물어서 서로 쓴웃음을 짓곤 했다. 실제로 존재감이 없는 아이라고 불렸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그들에게 내가 어떤 인상을 줬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기쁘기도 했다. 조용한 학교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시끌벅적한 A무리와 함께하는 것은 꼭 애인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이중생활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쪽이 애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결국 어느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했고 내가 정말로 뭘 원하는 건지도 잘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변하고 A와 점점 멀어지고 졸업도 다가올 때쯤 내가 혼자라는 것, 존재감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가득차서 눈에 띄게 이상 행동이 심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예전보다 더 불안이 심해져 과호흡 같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하염없이 눈물이 나곤 했다. 부산에서 열린 교수님의 전시를 친구들과 보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내가 그럴 때마다 당황한 친구들은 내게 더욱 말을 걸지 못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른 척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항상 편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친구들은 당시의 나를 많이 불편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이상 행동의 원인은 내가 나약해서라고 생각했다.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자신감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자기혐오와 자책으로 가득 찬 나날이 이어졌다. 한참 후 조금은 성장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처음 정신의학과를 찾았는데, 그제야 내가 광장공포증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됐다. 건강해진 지금도 불안과 싸우는 연습을 계속해야 하는데 어쩌다 피곤함을 느낄 때, 가장 한심하고 용기 없고 바보 같다고 생각한 과거의 내가 사실 아주 용감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계속 실패하긴 했어도 도망치거나 혹은 어딘가를 향해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실패는 내가 가만있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내게는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마법의 주문도 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죽으면 되지 뭐.”
    나는 마음이 아플 때마다 용감해진다.
    어쩌면 나에게 포기와 희망은 아주 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흑역사가 쏟아져 나올 것 같던 낡은 박스 속 추억과 기억의 조각들을 요리조리 맞추어보니 지금의 행복한 추억들이 아픔을 지워서 만들어낸 거짓된 추억이 아니라, 아픈 기억들이 성장해 행복으로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또 다른 아픈 기억들이 내게 어떤 식으로 행복을 만들어줄지를 잠깐 상상하며 나는 박스를 닫았다.

illust celloph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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