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by 정수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여기가 거기예요.”
    “극락이라고요?”
    “여기가 바로 극락이에요.”
    “그 사람들이, 내가 찾는 주소를 잘못 안 게 분명해요…….”

    시적인 제목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실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뉴올리언스에서 운행되던 열차라고 한다. 이 작품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과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블랑시는 가문의 몰락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삶이 망가져 버렸다. 방황하던 블랑시는 여동생 스텔라가 사는 ‘극락’이라는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이 결코 극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열차에서 내린 순간 알 수 있었다.

    언니 블랑시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스텔라의 소소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블랑시는 스텔라의 삶의 방식과 그녀의 남편 스탠리의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비하하고, 과거의 영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귀부인인 척 행동한다. 자매는 똑같이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지만, 몰락 이후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스텔라와 달리 언니 블랑시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짓과 환상으로 가득 찬 삶을 산다. 블랑시는 비정한 현실로부터 끝없이 고개를 돌리고 그럴수록 더 큰 공포와 불안에 빠진다.

    그런 블랑시를 스탠리는 의심하고 괴롭힌다. 그리고 블랑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애써 포장하는 블랑시와 시종일관 그녀를 비꼬면서 거친 말을 일삼는 스탠리.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은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블랑시는 비정상이고 스탠리는 정상이라고 설명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화려한 삶을 놓지 못하는 블랑시의 활동 시간은 언제나 밤이다. 반면 스탠리의 등장 시간은 낮으로, 현실과 환상에 밤과 낮, 이 둘을 빗댄 것 같다. 블랑시는 어둠속에서 나이 든 자신의 외모와 비밀을 숨기려 한다. 스탠리의 친구 미치와의 데이트 중에 미치가 어둠속에서 불을 켜자 블랑시는 경악하며 얼굴을 가린다. 늙은 여자는 가치도 없고 끔찍하다는 듯이. 블랑시는 미치에게 갓이 없는 알전구는 볼품이 없으니 밝은 알전구에다 종이 갓을 씌워달라고 말하지만 사실 블랑시는 밝음이 두려운 것이다. 나중에 스탠리가 그 종이 갓을 갈기갈기 찢어버리자 블랑시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속에서 여성은 오로지 남성에 의해 움직인다. 기뻐하고 절망하고 움직이고 결정하는 모든 것들이 남성에 의해 정해진다. 블랑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그들의 보호를 바란다.

    “그래요, 난 낯선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가졌어요. 앨런이 죽고 난 뒤…… 낯선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만이 내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전부 같았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보호받으려고 한 건 바로 공포, 공포 때문이었어요. 이곳저곳, 차마 떠올릴 수도 없는 곳, 급기야 열일곱 살짜리 소년에게까지도.”

    블랑시에게는 매순간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 아니었을까. 살기 위한 선택.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블랑시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블랑시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미치를 만난 후 다시 사랑에 빠져 의지할 상대를 찾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블랑시의 과거를 밝혀낸 스탠리로 인해 그 관계 역시 망가진다. 블랑시에게 푹 빠졌던 미치는 그녀가 더럽다는 이유로 결혼할 수 없다고 한다. 블랑시는 늘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을 붙잡고 의지하려 했고 미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치: 블랑시, 당신은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블랑시: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지 말아요.”
    “미치: 거짓말, 거짓말. 겉과 속이 모두 거짓말투성이에요.”
    “블랑시: 속으로는 절대 안 했어요. 마음속으로는 거짓말한 적 없어요…….”

    사람들은 때때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다. 블랑시는 자기 자신을 지키고 상대를 붙잡고 싶어서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그럼에도 그 거짓말은 결국 파국을 불러오고 말았다.

    “스텔라: 언니처럼 외로운 사람한테 그렇게 잔인하게 굴 필요는 없어.”
    “스탠리: 그래, 워낙 섬세한 분이시니.”
    “스텔라: 옛날에도 그랬고, 당신은 소녀 시절의 블랑시를 몰라. 언니처럼 부드럽고 남을 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아무도 없었어. 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들이 언니를 학대하고 변하게 만든 거야.”

    동생 스텔라는 언니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믿고 지지해주지는 않는다. 블랑시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상대이기는 해도 역시 언니를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스텔라는 블랑시를 나약하고 사랑받지 못한 불쌍한 여자라고 여긴다. 

    당시 여자는 그저 조신하게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하고,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자기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통념처럼 퍼져 있었다. 사실 현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사랑이란 것도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계급 아닐까. 블랑시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이 블랑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당시 여성들이 처한 위치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끊임없이 서로 부딪히면서 치열하게 다투는 스탠리와 블랑시. 스텔라가 출산을 위해 집을 비운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아슬아슬하고 험악한 분위기가 계속 펼쳐진다. 그리고 급기야 스탠리는 정신적으로 취약해진 블랑시를 강간한다. 이 강간은 단지 성욕 때문이 아닌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블랑시를 짓밟기 위한 행위였다.

    결국 떠날 타이밍을 놓치고 망가지고 만 블랑시는 스탠리에 의해 정신 병원에 보내진다. 언니를 떠나보내며 스텔라는 슬퍼하지만 결국 언니를 강간한 스탠리를 용서하고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현실에 안주한다. 작품 안에서 스탠리는 시종일관 너무 불편한 존재이면서도 가장 큰 힘을 가진 존재다. 그런 상대를 떠나는 것은 약자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곁의 여성들은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숱한 가스라이팅에 이미 길들여져 버렸고 큰 벽에 둘러싸인 듯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스텔라의 선택을 과연 오롯이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영화에서의 결말은 원작인 희곡과는 다르다. 스텔라는 스탠리를 떠난다. 2층으로 떠나는 것일 뿐이지만 다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오진 않는다.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블랑시는 마지막에 자신을 데리러 온 정신과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뇌리에 깊이 남는 대사는 작품을 처음 접할 때만 해도 이해가 잘 안됐다. “낯선 사람에게 의지해 왔”다니. 낯선 사람이 아닌, 관계가 깊고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가졌다고 믿었던 많은 것을 잃었을 때,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닥쳤을 때 인간은 새로 시작하고 싶어 한다. 

    나를 모르는 이들은 대부분 처음에 친절하다. 하지만 그 친절에는 조건이 있다. 친절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 그러다 보니 내가 불안정하거나 취약한 상태에 있을 땐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상대가 나를 자세히 알게 될수록 볼품없는 나 자신을 들켜버릴까 봐, 그래서 그에게 미움받고 버려질까 봐 두렵다. 그 때문에 관계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보다 차라리 그 관계를 망가뜨리고 새로운 사람을 다시 찾아나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껏 스스로를 꽤 독립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항상 누군가를 의지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서로 의지하고 나누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의지하는 상대가 유일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나를 스스로 옭아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갑갑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꽤 자주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나의 외로움을 이유로 관계를 망가트리곤 했다. 매번 ‘이번엔 성장했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번번이 트러블을 일으킨다. 계속해서 사랑받고 싶어 하며 나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상대를 찾는 건 일종의 자기파괴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너무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해주는 배우자가 있고, 현재의 생활에 큰 불만이 없음에도 계속 이 상황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 같다. 

    블랑시의 마음과 내 마음을 비교해보는 요즘이다. 

    단단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서로 잘 의지하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 안에 나만의 방을 만들어 나만의 것들을 채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돌보고 또 누군가를 의지함에 있어 나를 약자로 만들지 않게, 동시에 내게 기대어 오는 상대를 돌볼 수 있도록. 

    블랑시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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