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식욕의 무거움 by 지혜
- 글 다락: 사고(思考)뭉치
- 2021. 8. 3. 03:20
약간의 청록 빛이 도는 엑스레이를 봤다. 의사 선생은 예전에 다친 발목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다시 아프기 시작한 거라며 말을 했다. 몇 번의 치료를 받아야 하고, 언제 다시 와야 하고 뭐라 뭐라 말을 이어 나갔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 뼈에 비해 두툼한 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뼈와 살은 비례 관계가 아닌가. 살이 찌는 만큼 뼈도 단단해지면, 인간은 조금 더 나은 생명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음식이 주는 충만한 기쁨을 스무 살 때 처음 느꼈다. 잠시 모든 신경을 멈추게 할 만큼 극강의 당도로부터 행복감을 느꼈다. 뇌가 얼얼할 정도로 단 음식들은 가장 쉽게, 가장 단순하게, 가장 빠르게, 가장 싸게,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지금 당장의 내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이제껏 살면서 어느 누구로부터, 혹은 어느 무엇으로부터도 받아본 적 없는 최상의 만족감이었다.
흔히 우리가 쓰는 표현 그대로 ‘불어갔다’라는 말이 정확한 듯하다. 내 몸은 매년 꾸준히 불어났다. 살이 처음 찌기 시작한 첫해에는 1-2kg 늘어났다. 그 정도야 뭐. 음식이 내게 주는 행복감과 그 정도는 맞바꿀 수 있었다. 그다음 해는 3kg 정도, 군것질만 먹지 않아도 금세 체중은 돌아올 것이고,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다음 해는 5kg, 또다시 5kg. 그렇게 끝도 없이 내 몸은 꾸준히 매해 규칙적으로 불어났다.
예전에 입던 옷들은 맞지 않았으나, 더 큰 옷을 사면 됐다. 주위 어른은 내게 살이 너무 쪘다고 뭐라 했으나 보이는 몸이 중요하지 않다고, 그런 것은 코르셋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나는 주변의 말들에 개의치 않았고, 살이 찐 몸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믿었던 진실에 반하는 행동들이 실재했다. 가령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는 묵묵히 세면대와 흘러나오는 물을 보면서 절대 거울을 보지 않고 손을 씻는 것, 사진을 찍을 땐 무조건 뒤로 가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이라도 사이즈가 맞으면 일단 사고 보는 것, 몸을 가리는 큰 에코백을 메고 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것, 타인이 SNS에 올린 내 사진이 몹시 불쾌하지만 티를 전혀 내지 않는 것, 사이즈도 맞지 않을 옷을 구매해 소장만이라도 해보는 것, 그 옷을 언젠가 살을 빼면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살짝 상상해보는 것,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내 몸이 비치지 않게 서는 것, 지하철 개찰구에서부터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그사이의 간격을 좁게 걸어, 지하철역에 붙어 있는 전신 거울로부터 절대 내 몸이 반사되지 않게 걷는 것, 엄마 몰래 무언가를 먹고 집 밖에다가 음식 포장지를 버리는 것,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점점 더 기피하는 것, 혹시 모를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잠재적 통념을 불식시키기 위해 회사에서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고 움직이는 것, 그런 사소한 습관들이 생겨났다.
나는 점점 더 음침한 사람이 되어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웃으며 함께 대화하고 있는 저 사람이 내 먹는 모습을 보고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듯 게걸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마지막 조각을 먹으면 식탐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지, 지금 너무 빨리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저 사람의 의미는 무엇인지, 간혹 내가 음식을 거절하는 것을 왜 놀랍게 생각하는지, 버거킹은 왜 하필 매번 신호등 앞 길거리에 있고, 왜 그렇게 통유리로 설계했는지, 유리창 안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러니까 뚱뚱하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지, 아니 그냥 내가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이유로 저렇게 살이 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자격지심이 생겼다.
잠이 안 온다든가, 피곤하다든가, 우울하다든가, 그런 얘기를 남에게 하는 것도 짜증나기 시작했다. 결국 내 모든 문제점은 내 몸이었다. 나는 그럴수록 더 먹었다. 그래요, 당신 보시기와 같이 나는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늘 우울하고 살이 많이 찐 거예요. 나는 내 자격지심에 성실하게 보답해야 했다. 나는 내 살찐 몸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내야 했다.
내가 먹는 모습을 가장 보여주기 싫은 대상은 엄마였다. 엄마는 연예인 누구가 어떻게 살을 뺐다더라, 얼마나 살을 뺐다더라, 너가 사진에서 가장 뚱뚱하더라, 다리가 터질 것 같다, 턱살 때문에 목이 사라졌다, 너는 어릴 때가 가장 예뻤다,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살이 다시 찐 것 같다,는 등의 말을 늘어놓았다. 내 몸은 사회에서나 가족 내에서나 늘 대상거리이자 부정거리였다. 나는 상상한다. 칼로 내 허벅지를 도려내면 동글동글한 지방이 우수수 떨어지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내 허벅지를 칼로 깊숙이 찔러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을까?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만큼 희열을 느끼진 않을까?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쿵쾅이’가 나이므로. 엄마는 언니 사진은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어도 내 사진은 올려두지 않는다. 내 몸 자체는 당신에게 수치였으므로. 뚱뚱함은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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