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지지만 말고 내게 있어, 잘 보살펴 줄게<혼자 놀기> + 낙엽이 되기 전에 by 유영순


by soon

 

 

혼자놀기   유영순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큰 혹이 생겼다

나도 스스로 혹이 되어 무게감을 느낀다

 

친구도 떠나가고

취미도 특기도 떠나가고

슬픔도 기쁨도 떠나가고 하물며 형제까지도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사네

 

보람되고 재미나고 기쁘고, 어떤 게 있을까

아직도 생각은 진행 중

 

새벽.

나만의 님을 만난다.

마음의 평안함과 기쁨을 얻는다

참 좋다

 

아침.

운동 삼아 아침 길을 걸으며

이름도 성도 모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나눈다.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XX교회 집사님, 67세 형님

또 어떤 사람들

기쁘다

 

낮에는

나를 닮은 볼품없는 화분을

들여다보고 물도 주고 이야기 나눈다

어제보다 조금 컸네

대견하다

 

수세미를 뜨개질하면서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의 부엌을 상상해보고

반짝거리는 그릇을 떠올려본다

 

싱크대의 세정제를 포장하면서

지난 것보다 더 깨끗해집니다. 써보셔요

나 혼자 말하고 답한다.

 

뜨개질한 방향제 주머니를 선물하면서

제가 뜬 거예요. 쓰셔요

화장실 구석보다는 자동차 한 부분에라도 자리잡으면 신나겠지?

자동차가 달리는 곳마다 구경도 많이 하고

생각만 해도 신나고 즐겁다

 

TV는 나의 유일한 친구

유익해 보이는 이야기는

따라 해보고 적어두기도 한다

 

일부러 꽃집 앞으로 지나가며

핑계 삼아 꽃을 사서 꽂아본다

 

생각하는 것을 글로 써본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아직은

날마다 같은 날의 반복이지만

나 혼자 놀아도 참 재미있다

지금까지는

 

그러기에 나의 혹에게도

더 커지지만 말고

내게 있으라고

내가 잘 보살펴주겠노라고 말한다




└ 혼자가 아닌 혼자  by 정 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껏 알아온 엄마는 내 엄마할머니의 며느리아빠의 와이프였고 이 모든 게 엄마이기는 하지만 나는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 밖의 훨씬 많은 유영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아마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나 엄마와 함께 일하던 이들이 엄마를 더 잘 알았을지도 모르겠다가족 안에서 엄마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아니내가 본 엄마의 삶은 외로울 틈조차 없이 고달팠던 것 같다.

 

    나는 고약한 사춘기를 오래 보냈, 우리 가족은 별로 친하지 못했다.

엄마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외모도 성격도 너무 달랐다내가 친딸이 맞을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참 지독하게 외로워했는데생각해보면 부모 형제와 떨어져 외동아들에게 시집온 엄마는 기댈 곳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다엄마에게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는 농담을 던지는 나이가 돼서야 나는 마치 새 친구를 사귀듯 엄마를 새로 알아가고 있다.

 

    내가 어른이 돼서일까아니면 엄마가 다시 어려져서일까엄마와 내가 참 많이 닮아서 가끔은 깜짝깜짝 놀란다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도만든 걸 나눠주는 것도자신감이 지나치게 없는 것도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도잘 삐지는 것도.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엄마에게서 발견되니 재밌기도 하고또 마치 그게 개성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이제는 조금 평온할까 했는, 아빠가 쓰러지는 바람에 엄마는 꼼짝없이 아빠 곁에서 떨어질 수 없게 됐다이모들과 여행 가는 것도 계모임 친구들과 노는 것도 그 정도는 내가 대신 아빠 옆에 있어도 괜찮을 거라 해도 결국 가지 못했다너무 신경이 쓰이니 편히 다닐 수가 없고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아마도 엄마의 혹은 아빠가 아닌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자신의 이기심이나 죄책감인 것으로 여기고 마는 엄마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부인이라는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 왜 계속 희생해야 할까조금이라도 자기를 위한 선택을 내리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치부돼버린다엄마가 화를 내거나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독하고 이기적인 여자라고 손가락질한다.

나는 남편과 밥을 각자 챙겨 먹는다는 한마디에 나쁜 부인이 되고, 좋은 남편을 만난 행운아가 된다.

 

    엄마는 요즘 혼자놀기에 푹 빠져 있다엄마는 혼자라고 하지만 엄마 시 속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사람은 아무래도 혼자일 수가 없는 것 같다누군가가 말하는 절친한 친구좋은 친구가 없다 해도 혼자인 건 아니고혼자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이 곁에 있다.

스스로 혼자라고 벽을 쳐버리기 때문에 혼자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혼자 있거나 혼자 있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외로움은 늘 곁에 있지만스쳐간 이들에 대한 추억을 곱씹을 수 있다면그리고 가끔 마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

쓸쓸하게 시작하는 엄마의 혼자놀기 시 속에는 엄마를 덜 외롭게 해주는 존재들이 있고그래서 나는 엄마의 혼자놀기가 꽤 즐거워 보인다엄마의 추억엄마가 만든 수세미를 나눠 줄 상대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우리가 있으니 외로움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고덕분에 나도 외롭지 않다고 위안을 받는다.

 


 

 by soon




 낙엽이 되기 전에    유영순

 


내 나이 육십오 세

계절로 치면 가을에 접어들었겠지?

나에게도 꿈 많은 푸른 청춘이 있었지

어느새 결혼도 하고 두 딸도 얻었고

이젠 사위도 생겼네

참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다

 

지금부터는 가을을 물들일 채비를 하자

빨강 단풍나무를 닮을까

노랑 은행나무를 닮을까

그래, 빨강과 노랑이 섞인 주황색이 좋겠다

 

낙엽이 되어 사라지기 전에

예쁜 모습으로 누군가의 소장품이 되어보자

예전에 책갈피로 많이 쓰였고

크리스마스카드에도 많이 쓰였었지

 

낙엽이 되어 굴러다니다 누군가의 발에 밟히기보다는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불쏘시개가 되고 싶다

 

 

 


댓글(2)

  • 막내
    2020.11.01 16:21

    누님의 또다른 모습
    넘 조아보입니다

  • joi
    2020.11.10 10:42

    유영순 작가님! 나중에 사인회 열어주세요>,<
    작가님 글과 그림을 보면 왜 자꾸 울컥하게 되는 걸까요...
    작품을 통해 삶에 대한 작가님의 태도를 참 많이 배웁니다.
    좋은 작품 보여주셔서 감사하고요, 추운 계절이 다가오는데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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