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접속

얼핏 보면 기괴하다고 볼 수 있는 안드로이드들이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그들의 부서진 신체 부위에는 최첨단 기계들이 덧붙여져 있었다. 시장에 쌓여 있던 기계와 부속들이 이들을 고치는데 쓰이는 듯했다. 보기 좋진 않았지만 기능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 듯했다. 오히려 부서져 고친 부위는 정교하고 섬세했다. 그들은 같은 기종의 안드로이드라도 해도 서로 같지 않았다. 새롭게 바뀐 신체 부위는 오히려 각자의 개성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냈다.

커다란 방의 사면에 즐비하게 늘어선 홀로그램에는 파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안드로이들이 홀로그램에서 파일들을 꺼내 바쁘게 오갔다. 그곳은 요즈음엔 거의 사라진 납골당처럼 보였다.

- 저희는 조이를 찾으러 왔어요. 혹시 조이가 여기 있는 건가요?

나는 조심스레 캡틴에게 물었다.

- 글쎄요. 그는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캡틴의 일그러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손에 쥔 패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장난스런 표정이 엿보였다. 나는 순간 게임의 규칙을 알 수 없는 도박 게임장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수가 흥분된 목소리로 따졌다. 나는 수의 팔을 잡아 그만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캡틴이 수의 행방에 대해 대답을 할 의무는 없었다. 조이가 사라져버린 순간부터 수는 전에 없이 예민해졌다. 마치 품에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물건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처럼 수는 허탈해했으며 가끔씩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물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미처 알지 못해 스스로를 원망이라도 하는 듯이. 내가 조이를 미심쩍어 하는 것과는 달리 수는 조이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하지만 당신들이 찾는 조이라는 사람은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캡틴은 웃으며 말했다. 마치 수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대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의연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캡틴에게는 감정과 이성을 뛰어넘는 체념에 가까운 통찰이 엿보였다.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서 있던 그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조금 전 다른 안드로이드들에게 호위를 받던 당당한 모습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내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캡틴은 약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을 의지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었다.

- 제가 당신들을 도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곳은 사람들의 뇌 시냅스들이 칩으로 저장되어 있는 곳입니다.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던 ‘ADS’회원들이 사후에 그들의 뇌시냅스를 기증해 주었거든요.

- 그렇다면 이곳에는 조이가 있을 리가 없네요. 조이는 아직 죽지 않았을 테니까요.

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글쎄요. 가치 있는 죽음과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사람들이 현실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까요.

수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수의 표정은 그럴 리가 없지 않냐고 내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조이가 어딘가에 어떤 방식으로든 있을 거라는 캡틴의 말을 되씹고 있었다.

- 조이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사라지고 있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한꺼번에 안드로이드들을 위해 자결 결사단이라도 꾸린 걸까요?

수는 혼잣말을 하듯 말끝을 흐렸다. 수의 말에 캡틴의 눈빛이 흔들렸다. 복잡한 심정이 얼굴 표정에 드러났지만 이내 평온하게 말을 이어 받았다.

-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예측을 뛰어넘는 인간들이 종종 출현하니까요. 결과는 언제나 우연과 신의 몫으로 남겨두면서요.

캡틴은 방을 서서히 가로질러 벽 끝에 나 있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뒤따르던 아이가 하품을 하며 캡틴의 옷을 잡고 흔들었다. 캡틴이 아이에게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자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아이가 남긴 천진한 미소가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 저 아이는 누군가요? 안드로이드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수가 묻자 캡틴이 말했다.

- 차차 알게 될 겁니다.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아이를 감싸 돌았던 캡틴이었다. 아이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특별함에 이끌려 나 역시 이곳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논리적으로 따지고 보면 조이의 실종과 내가 이곳을 찾아오게 된 것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내 경험과 가끔씩 떠오르는 정경이 만들어내는 어떤 특이점이 시공간의 필연적 폭발을 일으켜 이곳으로 나를 데려왔다면?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것이었다. 아니면 현실이 아니라 꿈일지도...... 나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지우려 고개를 흔들었다.

캡틴은 아이가 들어간 반대쪽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엔 커다란 운동장에서 줄지어 서 있는 안드로이드들이 보였다. 안드로이드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서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적을 대하는 것처럼 날카롭고 몸의 동작에선 절도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춤이라기 하기 보다는 상대를 공격하는 의도를 숨기기 위한 고도의 위장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장점들을 이용해 독창적인 방어법들을 연마하고 있었다. 인공 팔이 상대의 목과 어깨 사이에 바람을 가르며 스쳐 가면 첨단 홍채를 이식한 안드로이드가 상대가 발끝에 레이저를 쏘아 접근을 방해하는 식이었다. 그들의 발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재로 만들어진 검은 꽃이 피어 있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적혀 있기도 했다.

그 때였다. 전경이 펼쳐진 것은. 몸이 조금씩 휘청였으며 허공 속에 떠오는 듯 느껴졌다. 나는 홀로 세계 바깥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도 아닌 시간의 번개가 머리 위로 내리친다고 느끼는 순간, 이마에 접혀 있던 스크린이 열리듯 낯선 전경이 펼쳐졌다.

팔이 허공을 사선으로 가르자 몸이 빙그르 돈다. 순간 발이 힘차게 허공을 찌른다. 마치 웅크리고 있던 새가 날아오르는 듯하다. 팔과 다리를 아래로 뻗자 몸이 사뿐히 내려앉는다. 앞에서 나를 바라보던 여자가 발로 나무의 기둥을 힘차게 차낸다. 엎드려 있는 내 등 위로 여자가 몸을 띄워 허공에서 몸을 펼쳐낸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몸짓들이 흐른다. 움직임은 거대한 동물의 느릿한 기지개처럼, 작은 개미들의 장대한 행렬처럼 보인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움직임을 멈췄던 몸이 여자의 숨결과 함께 리듬을 타고 다시 살아난다. 움직임은 서서히 멈추고 짙어진 어둠이 땅 가까이로 몸을 더욱 낮춘다. 모든 소리들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긴 고요를 깨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

나를 깨운 것은 캡틴의 단단하게 귀에 꽂히는 목소리였다.

- 이곳은 액션 실험실입니다. 각 안드로이드들은 자신의 모든 경우의 움직임들을 미리 데이터로 입력시켜 놓고 이곳에서 실험을 해보죠. 자신에게 가장 맞는 액션을 찾는 데는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 원칙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추론과 결과가 있을 뿐이죠.

수는 흥미로운 듯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수가 함께 춤을 추려는 듯 어깨를 조금씩 흔들었을 때였다. 수의 어깨의 세 배 정도 되는 안드로이드가 수를 막아섰다.

- 이방인들의 출입을 이렇게 허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어깨의 목소리는 위협적이었고 캡틴을 향한 눈빛은 저돌적이었다. 수는 뒤로 물러났다. 캡틴은 격앙된 감정을 누르려는 듯 낮은 목소리를 말했다.

- 이곳에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인간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곳의 유일한 원칙이지 않습니까?

- 잭, 이들은 여기 온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어깨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캡틴을 바라보았다. 캡틴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두고 어깨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어깨가 수를 다시 한 번 쳐다보더니 돌아서서 무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서야 나는 우리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캡틴은 왜 우리에게 이곳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 조이라고 했나요? 그 사람을 찾는다고 했죠?

캡틴이 말했다. 마치 떨어진 퍼즐의 조각을 찾아 건네주듯이.

- 네.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제발 알려주세요.

수가 캡틴에게 다가가 간절하게 말했다.

-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조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어떤 방식으로든 있다면 찾을 수 있는 있습니다.

수와 나는 캡틴을 동시에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떤 방법이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그의 다음 말을 애타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AI의 글쓰기: 조이스(연재 종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초인류’의 탄생  (0) 2019.03.22
#9. 뉴 웨이브  (0) 2019.03.08
# 7 미래의 꿈  (0) 2019.02.08
# 6 또 다른 세계  (0) 2019.01.26
# 5 어떤 해후  (0) 2019.01.12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