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미래의 꿈

    사라진 조이에게는 이틀 째 아무 소식이 없었다. 경찰은 집과 연구소 주변의 CCTV와 스마트 장치로 위치를 추적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은 단서는 밤늦게 연구소에서 그가 파일로 남긴 고고학 보고서가 유일했다. CCTV와 위치 추적 장치 안의 기록은 어느 것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 이렇게 행적이 깨끗하게 소멸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관할 경찰서 컴퓨터에는 범죄사고의 예방 차원에서 개인의 행적기록들이 자동으로 하드에 기록되니까요. 하지만 조이 씨에 대한 기록은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실종되기 전까지의 모든 기록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경찰관들은 컴퓨터시스템에서 개인 정보가 유출되거나 삭제되었다는 경고알림을 확인하고 바로 이곳으로 출동했다. 수가 경찰에 전화를 거는 순간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경찰의 조사는 철저했지만 불필요한 사실만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더러는 오류를 사실인 양 기록하기도 했다.

    - 그러니까 이 수씨는 조이의 옛 애인이었던 셈이네요.

    - 아니요. 그냥 친구였다니까요.

    - 한 집에서 살기도 했다면서요.

    - 네. 친구였으니까요.

    - 그러게요. 이성이 한 집에 살았으니 여자 친구였다는 거죠?

    - 네. 맞아요. 여자 친구.

    - 그러면 조이 씨의 옛 애인이 맞네요.

    수와 경찰관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며 쳇바퀴를 돌았다.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며 섹스봇으로서의 단순한 업무에 대해서만 대답했다. 어차피 그들은 나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 요즈음엔 섹스봇이 살림도 해주면서 마누라 노릇까지 해준다더니...... 직접 보니 좀 신기한데?

    내게 질문을 하던 경찰관이 수를 담당하던 경찰관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고개를 숙이며 조사용 패드에 수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던 경찰관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 탐나면 좀 빌려 쓰지 그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장이라도 경찰관에게 대들며 분노를 터트릴 기세였다. 하지만 그들의 스마트 와치에서 호출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대는 통에 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 뭐라고? 비슷한 실종 사건이 또 발생했다고?

    그들은 서둘러 조이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나갔다. 아마도 여러 사건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출동 인원이 부족해진 모양이었다.

    경찰관이 나가자 수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가만히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때 내게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열차를 타고 갔던 광장에서 만났던 안드로이드였다. 그를 따라 갔던 곳은 폐허처럼 버려져 있었지만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모든 것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어쩌면 조이는 그곳으로 흘러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언젠가 내가 그곳에 대해 조이에게 말하자 조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었다.

    - 사라진 모든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현실에서든 기억에서든.

    나는 수에게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수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 나한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사실 조이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했어. 그래서 기억 제거술을 받았는데...... 후회를 많이 하더라고.......

    나는 조이의 말에 단서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우선 그곳을 다시 찾아가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앞에 서서 나를 재촉했다. 나는 수에게 장소를 안내했다. 곁에서 길을 걷는 수의 얼굴이 유난히 수척해보였다. 순간 수한테 조이가 어떤 존재일지 새삼 궁금해졌다. 수에게 있어서 조이는 애인도 친구도 아닌, 그 어떤 관계의 의미로도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이에게 섹스봇도, 애인도, 아내도. 집사봇도 아닌 그 어떤 존재인 것처럼......

    수와 내가 열차를 타고 기억을 더듬어 도착한 곳은 이전과는 달리 활기로 가득했다. 쓰레기 같은 각종 고물과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전과는 달리 안드로이드들이 분주하게 쌓인 물건들을 치우고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 때 만났던 매리와 아이를 찾았다. 수는 처음 접하는 광경에 어리둥절한 듯 내 걸음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문득 총총거리며 내게 바짝 다가온 수가 속삭이듯 물었다.

    - 도시 주변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너는 이곳을 어떻게 알게 된 거야?

    - 글쎄. 그것을 우연이라고 하는 걸까요?

    말은 우연이라고 했지만 과연 우연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나는 과거의 모든 경험과 행동은 미래의 어떤 한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믿는 편이었다. 그러므로 현재는 과거와 미래와 함께 공존하며 이유 없는 사건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편이 신을 믿는 일보다는 확실했다. 그 날 카페 남자와 약속을 했던 것도, 광장에서 매리를 만나게 된 것도, 이곳에서 매리와 함께 있는 아이를 보게 된 것들 모두 어떤 긴밀한 연결고리를 통해 오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금방이라도 이곳에서 조이를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 하지만 우연에 기대기엔 조이의 실종은 위급하고 중요한 사건이잖아.

    수는 이런 곳에서 조이를 찾는다는 게 달갑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와 함께 길을 따라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기억 속에서 우연들을 더듬고 있을 것이었다. 조이를 만나 보낸 시간 동안 수가 간직하고 있던 많은 기억파일 속 어딘가에 조이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길모퉁이를 돌아섰을 때였다. 매리와 함께 있던 아이가 길 한가운데 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 아! 너 그 때 그 아이 맞지?

    나는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입가에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아이는 뒤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돌아보지도 않고 따라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였다. 우리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아이 뒤를 따라갔다. 길고 좁은 골목길에 따라 걷던 아이가 멈칫하더니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더니 우리를 향해 말했다.

    -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캡틴이 이제 곧 올 거예요.

    아이의 얼굴은 좀 전과는 달리 천진하게 바뀌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장난을 걸어올 것처럼 입가는 실룩거렸으며 볼은 오동통해 쓰다듬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이곳에서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이의 발그레한 볼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눈빛과 근육의 정교한 움직임은 이곳에서는 어쩌면 유일한 것인지도 몰랐다.

    다시 돌아본 이곳은 인공물들의 창고처럼 부속과 기계품의 회로 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것들로 가득했다. 체계나 일관성을 잃어버렸지만 어떤 형태로든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니 쓰레기처럼 쌓여 있는 부품과 쇠붙이들과 회로들이 사람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안드로이드는 각자 맡은 부분에서의 전문가였던 것은 아닐까? 흩어진 장기를 찾아 제자리에 넣고 피를 다시 수혈하고 신경을 연결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라면? 그들은 모두 ‘근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별명을 지닌 프랑케슈타인이라면? 갑자기 머릿속에서 불이 켜진 듯 느껴졌다. 그렇다면 그들이 만들어 내려는 괴물은 어떤 존재인 것일까? 사라진 조이는 이들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알파월드의 캡틴 매리입니다.

    매리가 나를 향해 친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를 등 뒤에 감추고 불안하게 나를 쳐다보았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은색으로 어깨 장식을 단 제복을 입었으며 무엇보다 한쪽 다리를 절며 휘청이듯 걷던 모습과는 달리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걸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와 나는 매리와 번갈아 악수를 했다. 매리는 얼떨떨하게 서 있는 수의 표정을 보고는 재미있다는 듯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 당신이 다시 우리를 찾아올 줄 알았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매리는 나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아이를 앞세우고 골목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와 나는 매리의 뒤를 따랐다. 아이와 매리가 걸음을 멈춘 것은 막다른 벽 앞에서였다. 아이가 다시 손목을 들여다보더니 손으로 손목을 쥐었다 놨다. 벽이 밀리며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이번에는 아이가 길옆으로 물러나고 매리가 앞장 서 걸었다.

    - 알파월드에 입성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줄지어 늘어선 안드로이드들이 한꺼번에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선가 들리는 물소리와 양 옆으로 차례로 일어서는 금속판들에 안드로이드와 매리, 아이 그리고 수와 나의 모습이 반사되었다. 마치 고체로 변한 물이 일어선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물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안드로이드들은 연신 손뼉을 쳐댔다. 마치 북소리가 울리는 듯 천둥이 울리는 듯 크고 우렁찬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마치 기괴하고 이상한 꿈 속에 빠져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곁에는 수도 함께였다.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니었다. 길고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걸어가자 다시 새로운 문이 나왔다. 문은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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