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뉴 웨이브

캡틴은 우리를 중앙 데이터 시스템 관리국을 안내했다. 그곳에서 캡틴이 알려준 조이를 찾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와 수의 기억에 있는 조이를 모두 끌어내는 것인데,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적분법을 활용이었다. 조이와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기억들을 적분해 나가면서 조이와 근접한 데이터의 홀로그램 파일을 찾아내는 방식이었다.

- 조이가 여기 있다면 당신들의 기억들과 일치하는 홀로그램 파일이 반응하게 될 겁니다.

수와 나는 캡틴이 안내하는 대로 기억 재생 장치를 머리에 쓰고 의자에 앉았다.

-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조이를 처음 만났던 때부터 떠오르는 기억들을 불러오면 됩니다. 그 기억들은 점점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 최면을 통해 숨겨져 있던 기억들을 모두 끌어오는 원리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 있게 때문에 실재 조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오류들은 인물의 일관적 성격과 사건의 논리성을 따져 이곳에서 알아서 선별합니다.

– 만약 조이가 이곳에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결국 조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이 되는 건가요?

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일단을 그렇게 봐야죠. 하지만 경우에 따라 목숨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몸이라는 유기체는 멈췄지만 의식과 기억은 다른 의체를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다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의식과 이성, 감정과 감각들은 과연 이것들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내 신체는? 이런 생각들을 뚫고 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 굳이 이런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아무리 기증이라 해도 기증한 사람의 기록 같은 것이 있을 텐데요.

수를 쳐다보며 한참을 고심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던 캡틴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 이곳에서 다시 태어나는 안드로이드들은 인간들의 총합이거나 또 다른 정체성의 일원화 과정입니다. 말하자면 하나이자 모두인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기증자들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뇌 시냅스를 기증합니다. 이것이 ‘자결 결사단’의 수행 원칙이죠. 결국 이곳은 모든 뇌 시냅스들로 이루어진 인류 자산의 보고인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캡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언젠가 조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조이는 후대를 위해 당대의 지혜와 기술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남겨놓아야 한다는 각성이 있었다면 아마도 인류는 더욱 발전하게 되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어쩌면 한 개인의 역사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자산일 수 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정말 수는 스스로 ‘자결 결사단’에 들어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이 안드로이드들에게 내주었던 것일까?

-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버튼이 눌려지고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자 마치 장막을 씌운 듯 어두워지며 모든 생각이 멈췄다.

- 처음 조이를 만났던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처음 조이를 만난 날, 눈을 뜨자 눈앞에 조이가 있다.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조이의 얼굴. 낯선 여러 장비들과 기계들이 놓인 방 안.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의 목소리.

- 조이. 이제부터 우리의 운명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번 실험만 성공한다면 이제 인류는 안드로이드들에게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시 되가져올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모든 기능들을 대신하고 있다고 믿게 되겠지만 이 기억 절제 장치를 이용하면 우리 인간이 그들을 조정할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되는 겁니다.

-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하며 살아야 하는 슬픈 존재죠. 어떤 식의 폭력은 반드시 발산해야만 자신 안에 있는 분노와 울분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폭력의 대상이 있다면 범죄율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인류 평화를 위해 아주 획기적인 실험이 될 겁니다.

올라간 조이의 입 꼬리. 조이는 검지로 안경테를 밀어 올리더니 엄지를 붙여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웃음소리가 이명처럼 울리더니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섞여 들어간다. 찢어질 듯 치솟은 전자기타의 선율에 천둥이 치듯 쏟아지는 드럼 소리. 고개를 흔들며 춤을 추는 조이. 엉덩이를 흔드는 조이를 보고 자지러질 듯 웃는 나. 함께 껴안고 방 안에서 맴을 도는 우리. 부드럽게 나를 껴안고 입술을 포개는 조이. 그리고 이어지는 조이의 험악한 얼굴과 기괴한 웃음......

나는 어지럽고 이해할 수 없는 이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나는 팔을 휘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눈을 뜨자 내 옆에 있던 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수의 얼굴이 마치 내 얼굴인 듯 일그러져 있었다. 수가 기억해낸 조이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던 것일까? 수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캡틴은 이곳에서 일하는 안드로이드들로부터 결과를 보고 받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캡틴의 표정은 알 수 없는 불안과 실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 당신들의 수에 대한 기억이 너무 다릅니다. 공통되는 지점에서 조이를 찾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당신 둘 모두 어떤 기억들이 임의적으로 지워지거나 조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수의 기억은 대체로 일관되지만 내 기억이 전혀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이지 못하며 조이의 상반된 성격들이 마치 꿈처럼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다고 했다. 내 기억은 마치 꿈의 원리와 같다고 했다. 반면 수의 기억은 마치 기계 속의 데이터처럼 너무도 선명하다고 했다. 마치 누군가 기억을 칼로 반듯하게 잘라놓은 것처럼.

- 수의 기억은 마치 안드로이드 속의 뇌지도와 같아요. 반면 조이스 당신은 사람이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듯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이더군요.

수는 아직도 조이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 보였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수는 조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워하고 좋아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당신의 손목에 있는 그 상처......

눈물을 훔치는 수를 본 것이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손목에 난 수의 상처에 대해서는 나도 언젠가 물은 적이 있었다. 아마 어릴 때 다쳤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는 열다섯 살 때 사고로 부모를 잃고는 충격으로 그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잊었다. 수는 손목을 손으로 문지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소매를 상처를 가렸다.

-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는 상처예요. 이런 건 별 거 아니고......문제는......

캡틴은 수에게 다가가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살이 울퉁불퉁 튀어 나와 벌어진 상처를 꿰맨 것처럼 보였다. 상처라고 하기엔 아름다운 문양처럼 보여 나도 볼 때 마다 자꾸 눈이 가곤 했다.

- 루이. 루이였어.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캡틴은 수를 깊이 껴안았다. 수와 내가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 표정을 짓자 캡틴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루이. 너는 우리가 만들어낸 최초의 인간복제 안드로이드야. 너를 발명했던 닥터 김과 함께 너는 어느 날 사라졌지. 미완성 상태였던 너는 당시에는 얼굴이 없었어. 그래서 너를 바로 알아 볼 수 없었던 거야. 하지만 그 손목에 있는 표식은 너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이지. 그건 일부러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캡틴이 하고 있는 말을 나는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수 역시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캡틴의 말에 따르면 수는 사람이 아니라 정교한 안드로이드였다는 것인데......어떻게 사람과 다름없이 여태 살아오게 되었는지, 닥터 김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수를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게 하면서 그 사실을 비밀로 했던 것인지 궁금하고 의아할 뿐이었다. 수 역시 많이 놀란 듯 텅 빈 표정으로 캡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밖에서부터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들려오더니 문이 열렸다. 급하게 캡틴을 향해 안드로이드가 들어왔다.

- 캡틴! 큰일 났어요. 잭이 액션 실험실의 안드로이드들을 모아 혁명군을 조직해 밖으로 나가고 있어요.

캡틴은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폭력의 굴레에 다시 들어가게 되겠군. 혁명은 그런 방식으로는 안되는데......

캡틴은 우리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당부하듯 말했다.

-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수가 의자에 일어나며 캡틴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 우리는 조이를 찾고 싶을 뿐입니다.

- 조이를 찾기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캡틴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커다란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가 휩쓸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다가와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벽처럼 여겨졌다. 나아가야 한다면, 살아가야 한다면 어떻게든 용기를 내야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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