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생리하는, 몸. (1)

   끔찍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가뜩이나 직업적인 문제로 온갖 관절과 근육에 통증을 매달고 사는데 장마가 시작되니 급기야는 아침마다 온몸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염분과 수분 섭취를 제한하고 꼬박꼬박 스트레칭을 해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주먹을 쥘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들에 퉁퉁하게 부종이 올랐다. 그런 손을 내려 발목을 쥐면, 발목이 통상 두께보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 두꺼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붓는 것보다 끔찍한 것은 몸이 부어올랐을 때 몸에 힘을 제대로 줄 수 없다는 것과, 이런 식의 부어오름은 보통 열감과 통증과 무기력감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샤워를 할 때 뜨거운 물을 오래 끼얹어 혈액 순환을 돕고, 수분 섭취량을 제한하고, 붓기가 염증이 되지 않도록 꼬박꼬박 소염제를 챙겨 먹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이 시간이 지나가고 어서 다시 부어오르지 않는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간간이 천둥번개가 쳤다. 몸은 일주일 넘게 매일 매일 부어올랐다.

    아무리 익숙한 장마철의 일상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긴 했다. 나는 인체모델이고, 일할 때 근력을 써야 하는데 주먹 쥘 힘도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는 일을 할 수 없다. 결국 며칠 뒤로 예정되어 있던 스케줄을 하나 미루고 몹시 짜증이 난 채로 바닥에 앉아 습관적으로, 잘되지 않는 스트레칭을 하며 생각했다. 이 몸은 어째서 이렇게 신경 써 보살피고 애정을 쏟는데도 알아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한쪽 다리를 뒤로 쭉 펴는 고관절 스트레칭 동작을 하는데 그, 느낌이 왔다. 심리적으로 뒷골이 쭈뼛하고 정말로 소름이 돋았다. 아 이 느낌... 포궁 있는 자들은 알고 있는 이 느낌, 따뜻한 굴 낳는 느낌!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정신없게 지내는 와중이라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생리가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 속옷에 적은 양의 혈흔이 묻어 나오기도 했었다. 몸이 많이 피곤한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게 배란혈이었던 모양이다. 장마철의 생리라니 너무 끔찍하다. 습하고 냄새나고 뜨겁고 무겁고 아프다.

    결국 몸이 그토록 부어오른 데에는 장마철 날씨도 한몫했지만 결국 생리 전 증후군(PMS, Premenstrual Syndrome) 탓이 컸다는 말이다. 나는 약간 불규칙한 28일 주기로 생리를 하는데 생리 약 일주일 전부터 체온이 오르고, 몸이 붓고, 아랫배가 나오고, 유방이 단단하게 뭉치고, 식욕이 증가하고, 무기력해지는 등의 증상을 겪는다. 그리고 이 증상들은 제각기 다른 통증을 동시다발적으로 유발한다.

    PMS는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흔한 증후군인 동시에 몹시 생소한 개념이기도 하다. 나는 11살 때 초경을 했는데 PMS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된 건 27살 때였다. 정규교육과정을 거치며 보건 성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그때 생리에 대해 배운 것이라고는 ‘여성의 몸은 아기를 가지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과 ‘생리는 불쾌한 것이기 때문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복합적인 호르몬의 작용이며 때때로 생활이 곤란할 정도의 고통과 불편을 동반한다는 것은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생리 시작 전에도 호르몬이 작용하기 때문에 PMS라는 것이 동반된다는 것도, 생리의 디테일한 메커니즘-이를테면 몸이 생리혈을 원활히 배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포궁에 근 수축과 근 경련을 일으키고 그래서 생리통이 생긴다든지-도, 생리 중 몸이 아플 때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하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이렇듯, 한국에서 생리와 생리하는 몸은 사회적으로 방치되고 등한시된다. 한국 사회는 PMS라는 단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지만 생리 기간에 여성들이 심리적으로/신체적으로 어떤 일시적 변동을 겪는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으레 여성들은 “왜 이렇게 예민해. 생리해?” 같은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이 질문이 그 상태를 인지하고 지원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생리하는 상태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문제다.

    이 폄하 안에 생리는 숨겨야 하는 것, 열등한 것, 보건 치료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 아닌 개인이 해결할 것, (출산 가능한 몸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면서도) 남의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작동이 숨어있다. 이건 생리를 하는 여성 당사자들에게도 작용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생리할 때 병원에 가거나 쉬는 대신 진통제를 먹으며 버틴다. 생리 중이라 몸이 안 좋다고 하면 비웃음 살까 봐 말도 못 한다. 장염이나 두통은 말해도 괜찮은데 생리통은 안된다.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다. 인체 모델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PMS 상태의 몸, 생리하는 몸의 상태가 노동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기 때문에 병원 상담을 받아보려고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한 채 어거지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모델링의 퀄리티를 떨어트리지 않으면서 내 몸도 덜 힘들 수 있게 의료적 조치를 하고 싶었다.

    “제가 PMS를 남들보다 좀 심하게 겪는 것 같아요. 몸을 쓰는 직업인데 생리 당일보다 PMS 기간이 더 힘들어서, 혹시 호르몬 치료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는 건지 상담을 좀 하고 싶거든요.”

    “PMS가 뭐죠?”

    도움이 필요해서 전문적인 의료기관에 전화를 했는데, 왜 내가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지? 황당했다. 병원 몇 군데에 전화를 더 걸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비슷했다. 그중 한 병원이 PMS라는 말을 알아듣기는 했지만, 병원에 오실 필요는 없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쉬시면 되며 혹시 생리 불순이 의심된다면 경구 피임약 처방 정도 해줄 수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멍하니 앉아 있으니 슬슬 화가 났다.

    사회적으로 생리라는 것이 폄하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에 필요한 여성 보건 또한 이만큼 원시적이다. 이전에 다낭성 난포 증후군으로 생리불순이 잠깐 심했던 적이 있는데 이때도 경구 피임약 처방을 받았었다. 이건 근본적 치료가 아니라 그냥 생리주기를 억지로 맞추는 것인데, PMS로 문의를 해도 잘 모르겠으니까 피임약 드셔보시라는 정도의 말밖에 못 듣는다니! 내가 이렇게 아파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증상을 겪는데도 대부분의 병원은 PMS라는 개념조차 모른다니! 이미 논문도 많이 나와 있고, 아는 여성들끼리는 알음알음 어떻게 PMS 기간을 보내는지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산부인과는 비보험 초음파로 돈 버는 곳이지 여성의 몸이 겪는 일상적 불편에 대한 보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피임약을 먹다 끊으니 증상이 다시 나와요, 어쩌죠? 그럼 증상이 안 나올 때까지 피임약을 다시 드세요! 보통 이런 식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을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여러 가지 세금을 내는데 그중에 건강보험료도 포함되어 있다. 이 건강보험료는 의무적인 환원인 동시에 국가가 내 몸이 아플 때 적절한 보건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기대 비용이다. 그런데, 생리 및 여러 부인과 이슈에 대해서 만큼은 이 값을 치른 만큼의 조치를 받을 수 없다. 특히 생리는 포궁 가진 여성의 삶과 가장 밀접하고 일상적인 보건 이슈임에도 그러하다. 보건 서비스만큼 여성이 이 땅에서 아직 이등 시민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사례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않으니 웹서치와 입소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과 만든 단톡방 발 정보에 의하면, PMS도 치료제가 있다. 프리페민이라는 약이 있는데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PMS 치료뿐만 아니라 생리통을 줄이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 동안 잊지 않고 매일매일 복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게다가 한 달 30정제는 2만 3천 원, 3개월 90정제는 6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보편적으로 생리 기간에 많이들 먹는 타이레놀이나 이부프로펜 성분의 진통제들이 10정에 2천 원 꼴인데 프리페민은 대충 3정쯤이 2천 원이다. 그러나 PMS 기간과 생리 기간을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보내고 싶다는 염원은 결국 이 비싸고 번거로운 약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매달 2주 정도를 계속해서 겪어내야 하는 고통을 대신하는 값이라면 그렇게 어려운 지출이 아니기도 했다. 나는 동네 약국에서 프리페민을 우선 한 달 치 사서 복용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리페민의 문제점은 비싼 약 값과 복용의 번거로움뿐만이 아니었다. 프리페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병원 처방 없이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호르몬 제제라는 데에 있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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