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의 리얼리티는 무엇을 향해있는가

   내가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아기 인형을 생각하면 그것도 꽤 리얼했다. 피부는 딱딱했고 팔다리의 관절은 섬세하지 않았지만, 누이면 눈을 감고 세우면 눈을 떴으며 찌르면 울음소리를 냈다. 유모차부터 침대까지 육아 놀이 풀세트를 유치원 크리스마스 행사 때 산타에게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포장지를 뜯기 전까지 커다란 상자의 압도감에 기분이 좋았지만, 포장지를 뜯고 나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던 똘똘이(미미월드의 인형 이름)를 보고 나는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올해 6월 한국 대법원이 리얼돌 수입을 허가하면서 리얼돌 판매 금지 청원이 23만명을 돌파했고 리얼돌이 성기구인지 또는 포르노인지에 대한 토론이 온라인에서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재료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조각난 신체의 기관들이 만드는 인위적인 이미지는 원래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모습으로 위협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리얼돌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떠도는 인공물로서의 젠더 표현물을 조잡하게 붙여놓은 플라스틱 덩어리였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걸까. 어깨 삼각근과 광배근이 발달된 형태의 리얼돌이라면, 또는 나와 닮았다면? 그러나 현재 판매되는 사진 속의 리얼돌은 오히려 내가 어릴 때 양육하던(?) 생후 100일 정도의 백인 아기 재현체인 똘똘이의 모습보다 리얼함이 부족해보였다. 이 리얼함의 부족은 기술의 부족일까. 미적 기준의 오류일까. 또는 현실 세계에 없는 여성과 다른 모습의 신체 이미지를 리얼로 호명하면서 그것을 리얼로 착각하는 자들의 구린 욕망일까.

    그러나 리얼돌의 리얼리티 부족한 모습과 다르게 리얼돌 산업은 예상 소비자층인 이성애자 남성들에게 리얼돌이 여성의 신체를 대체하고, 더 나아가 가족 같은 관계[각주:1]를 맺을 수 있다는 식으로 전시한다. 1m 50cm의 키와 상세하게 기록된 질의 깊이, 실리콘 퀄리티에 따른 텍스처뿐만 아니라 가상의 이름, 나이, 사는 곳, 전공 등을 적어놓고 어딘가에 살고 있을 법한 여성을 판매하는 것처럼 리얼한 가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리얼돌 산업은 단순한 성기구가 아닌 포르노 산업과 다를 바가 없다. 많은 여성이 리얼돌 산업에 느끼는 불안은 축 늘어진 리얼돌의 과잉되고 조각난 신체의 이미지에서 보다 그것을 실재 여성으로 착각하는 자들의 욕망에서부터 온다. 직관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리얼돌의 페도필리아적인 모습은 내가 욕망하는 여성으로서의 나의 신체와 한 글자도 맞는 게 없지만, 여성으로서 나의 신체가 기술을 통해 여전히 대상화되는 경제체계 안에 놓인다는 것에 지긋지긋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흰 피부, 작은 여자아이, 핑크빛의 리얼돌의 신체는 어딘가 똘똘이의 모습과 닮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유물로서 소유자에게 결코 상처를 줄 수 없는 무해한 신체 이미지와 연결된다. 욕망하기 쉬운 리얼리티로서 구성된 작은 여성의 재현체가 실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쾌한 감정들은 여태까지의 포르노그래피의 작동방식이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상품으로써 제시하고 구성된 신체 이미지를 다시 실재 여성이 재현하는 순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각주:2], 이성애적 남성의 욕망이 뭉쳐있는 여성 재현체로서의 리얼돌은 없다. 아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세척도 쉽고, 보관도 편리한, 게다가 사후에도 명예 실추의 위험이 없는 텐가를 사고파는 것이 낫지 않을까.

    평생을 함께할 반려, 영혼의 단짝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깨졌지만 여성이 남성에게 분배되고 주어졌으면 하는 욕망은 리얼돌을 통해 마주한다. 근대적 의미의 주체-객체 이분법처럼 지배적 위치에 놓인 지켜보는 자와 억압의 위치에 놓인 지켜보는 대상으로 남성의 시선과 여성의 신체가 구분된다면 리얼돌 산업은 리얼한 여성의 신체가 아니라 리얼한 환상을 펼쳐놓을 뿐이다.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는 남성의 성적 욕망이 반복될수록 남성 의미경제체계 안에 포섭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온전히 해석되지 못하거나 재생산을 도모하는 영역에서 허용되거나 환원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리얼돌 산업의 법적 허가는 문제적이다. 탈-신체화된 신체 기관 이미지의 지루한 반복에서 벗어나 비-재현적인 새로운 신체를 생성하기 위해서 여성의 신체는 조각난 신체의 기관으로 재현되는 방식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1. 인사이트, "리얼돌은 누군가에게는 가족이다" 강남역 한복판서 1인 시위한 용자, 2019.08.09, https://www.insight.co.kr/news/240631. [본문으로]
  2. 뉴스1, "리얼돌이 타인에게 무슨 피해를 주죠"…수입업자의 항변, 2019.08.07, http://news1.kr/articles/?368941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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