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로피를 획득한다(1) - 온전히 나로서 승리하고 패배하기


1. 장미란도 “남자”한테는 당연히 진다.


    옆 테이블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힘 센 여자=장미란도 “남자”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총 326kg의 기록을 세운 장미란은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무조건 진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남자는 무엇일까. 실체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납작한 강자와 약자의 도식을 공공장소에서 무방비 상태로 듣고 말았다. 어떻게 저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까. 과연 ‘모든 남자한테 진다’라는 말처럼 ‘나에게도 진다’라는 말도 감히 할 수 있을까. “남자”라는 기표에 은근히 자신을 포함 시키면서 여성을 객체의 위치로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획득하는 모습은 아마 우리에게 익숙할 것이다. 이브 세지윅이 설명한 남성 동성사회(homosocial)의 관계가 여성을 매개로 주체간의 연대와 동일시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결국 주체되기란 젠더 주체화로서만 가능하다. 개인이 가진 다양한 조건들은 젠더라는 거대한 사회적 산물 뒤에 은폐되고 지워지며, 모든 개인은 인식 가능한 단 두 개의 성 또는 젠더를 통해서만 자신의 위치를 결정 짓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리스 신의 이야기에 빠져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성과 가장 강한 남성이 싸워, 남성이 이긴다면 모든 남성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성이 차지한 ‘승자’의 자리를 획득하며, 그 게임에서 진 여성은 타자의 자리, 즉 어떠한 자리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인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비판은 많은 공적 또는 사적 담론장에서 이야기 되어왔다. 생활 체육뿐만 아니라 프로 스포츠 시장에서도 여성을 위한 필드는 압도적으로 좁고 열악하기 때문에 여성 스포츠 시장은 남성을 위한 시장과는 사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아마추어는 프로 구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여성 프로 야구팀이 생기기 전까지 아마추어 여성 선수들은 야구가 아닌 소프트볼을 했었던 것처럼 국내 프로 구단이 있는 스포츠는 아마추어 필드가 형성되기 쉽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그렇지 못하다. 2019 생활체육서울시민리그의 농구 부분 예선 참가자를 살펴보자. 서울특별시체육회에서는 만 19세 이상의 20명 이내로 이루어진 남성 304팀, 여성 24팀을 모집했고, 남성 246팀, 여성 26팀이 예선에 참가했다.[각주:1] 리그에 참가하는 팀의 수만 비교해보아도 성별에 따른 참여율의 차이는 9.5배가 된다. 우리는 남녀가 스포츠에 대해 동등한 참여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에 익숙하다. 초등학생 때 학교 체육시간을 떠올려보자. 남자 아이들이 축구를 하며 운동장의 이 끝과 저 끝을 누비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모서리에서 피구를 한다. 피구는 날아온 축구공에 여러 번 훼방 받지만 여자 아이들은 언제든지 날아올 수 있는 축구공을 의식하다 못해 오히려 자신들이 축구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에 대한 불공평한 기회와 불평등한 조건들은 운동장이 남성적인 공간, 남성들의 장소로 자리 잡고 그 공간에 여자아이들이 점점 배제되면서 동시에 체육활동, 스포츠와 같은 신체 활동의 기회가 왜 주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즉 ‘땀 흘리며 축구를 하는 남자아이들과 햇빛을 피해 벤치에 앉아있는 여자아이들’과 같은 익숙한 광경을 설명할 때 모든 문화사회적인 문제들을 은폐하고 생물학적 성별이 가지는 본질적인 성질로 이해한다면 무척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우리는 문화사회적 요소들이 불러오는 신체적 차이에 관심이 없었다.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담론이 생산한 하나의 구성물이라는 것, 여성에게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사실보다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약함을 더욱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과연 여성과 남성은 얼마큼 다른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문화사회적인 요소들과 조건들 이전에 작동할 만큼 본질적이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라면 대체 얼마나 큰 차이가 여성과 남성 사이에 놓여있는 것일까.


    2017년 각 종목의 세계기록을 살펴보면 남성과 여성의 기록 격차는 1990년대에 비해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수영 종목의 경우 5% 미만(자유형 1500m 장거리의 경우 여성이 더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함), 상체를 사용하는 역도의 경우 12% 이상 차이를 보였고 러닝 레이스의 경우 1950년에는 12~14%에서 2017년에는 7% 이하로 줄어들었다.[각주:2] 스포츠 기록 연구자들에게 세계기록 성과의 무한적인 발전 또는 현재 한계에 도달했는가에 대한 예측은 계속되는 논쟁거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 안에서 많은 스포츠 분야의 기록적 성과가 적어도 남성의 기록에서는 한계에 다다른 것에서는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기록은 아직 한계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인가. 이러한 연구들과 경기 기록들이 증명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여성에게 더욱 많은 스포츠의 기회가 주어짐에 따라 뿌리 깊게 박혀있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해부학적, 물리학적 등 수없이 많은 경계와 차이를 말해왔던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점점 사라지는 격차와 성별을 뛰어넘는 기록들은 스포츠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엄격한 구분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과거 1950년대의 기록들이 가진 성차와 현재의 성차를 설명할 때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환경과 행동의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않고는 설명 불가능한 것처럼 현재보다 더 발전할 미래의 기록들과 모두를 위한 운동장을 위해 우리는 여성의 신체적 조건이 얼마나 약자의 자리에 알맞은지, 그러므로 남성 중심적 세계가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증명하는 일을 멈춰야할 것이다.


2. ‘한국인-남성-만 40세 미만’과 농구코트의 가장자리


    나는 2015년부터 ASAP라는 팀에서 아마추어 농구를 시작했다. 어쩌다가 (여자가) 농구를 시작했냐고? 나의 공놀이는 어떤 특별한 이유를 요구받는다. 언제나 그렇듯 익숙하고 지겨운 질문을 위한 훌륭한 대답은 없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음……. 그냥? 이러한 의미 없는 이유들은 질문자를 절대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을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 사회는 여성에게 운동을 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인 내가 농구를 한다면, 나는 어떤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구구절절 질문자를 안심시켜야한다.


    아마추어 여자 농구판에는 나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 농구를 하는 사람부터 엘리트 농구를 계속해왔던 사람까지 다양하고 직업도 학생, 직장인, 알바생, 자영업자, 무직자, 구직자, 주부, 심지어 축구선수까지 농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있다. 이곳은 각자 다른 배경과 경험, 조건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놀이를 하는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들을 느꼈다. 나이에 따라서 정해지는 호칭과 권력 구조, 할 말이 없지만 집에 가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고기를 많이 먹는 것, 팔씨름을 아무 데서나 하는 것(힘자랑을 자주 함), 힘이 약하면 여자들끼리 모여 있는데 여자 “같다고” 놀리는 것, 머리가 짧으면 남자라고 놀리는 것, 여자가 어쩌고 남자가 저쩌고를 자주 말하며 역할을 강요하는 것 등. 어떤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킬조이(kill-joy)로서 나를 증명해내는 것에 한계를 느끼면서 동시에 계속 문제의식을 던져놓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 일종의 친한 사람들 사이의 농담을 뒤로하고 내가 더욱 문제를 느끼는 부분은 아마추어 농구의 규칙에 대한 것들이다. 아마추어 농구 규칙은 전국 농구 연합회의 NABA룰을 따르고 있는데, 대회는 물론 정기 모임을 가질 때도 이 규칙에 따라 경기를 진행한다. 규칙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국적, 나이, 성별에 따라 어드밴티지 또는 페널티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약자를 위한 것인지 또는 다수의 우의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문제가 되는 규칙은 다음과 같다.


■ 제 3 장 - 선수자격, 교대선수 그리고 코치들

제 11 조 - 선수자격

한국에 거주하는 자로 생활체육인으로 하되, 다음 각 호 사항의 선수자격이 부여된다.(단 외국인 선수 출전은 쿼터별 1명으로 제한한다)

4. 전문체육 선수 및 외국인 선수포함 경기 중 코트에 플레이어(Players)는 2명까지로 제한한다.

■ 제 5 장 - 득점과 계시

제 26 조 - 득 점

11. 당해 연도 40세 이상 동호인 또는 여성선수 득점 시 프리 드로우를 제외한 야투에 +1점을 가산한다.

NABA 길거리 (3on3) 농구 경기규칙

■ 제 5 장 - 득점과 경기시간

제 17 조 - 득점

일반대회에 동일하게 적용하여 2점슛, 3점슛, 자유투1구 1점으로 정한다. 남성부 출전 여성 및 40세 이상 선수의 득점은 +1점을 적용한다.[각주:3]


    한국 국적을 제외한 모든 국적의 “외국인”은 아마추어 경기에서 고등학교 또는 프로 선수 출신과 똑같은 페널티를 받게 된다. 한국 국적을 가진 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농구를 하기에 열등한 신체와 문화사회적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그래서 그것을 규칙을 통해 인정하는 걸까. 제3세계 식민지 조선인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실천하는 하나의 삐뚤어진 방법일까. 그렇다면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문화사회적 조건을 갖춘 제1세계가 아닌 국가들을 위해 대륙별로 다른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동일성을 지키고 싶어 하는 민족주의적 욕망일까.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규칙은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적용되고 있는데, 최근 이러한 열등한 신체를 인식한 규칙들이 프로까지 번져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을 시행하고 장신 선수의 키를 2m 이하로 적용했다.[각주:4] 국내 프로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선수들은 재측정에 나섰고 양말을 벗고 무릎을 굽히지 못하게 고정하는 웃기고도 슬픈 장면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국내 선수를 위한 국내 프로 농구를 위해, 한국 국적을 가진 생활 체육인을 위해 “외국인”에게 페널티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국내 경기의 진입을 높이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외국인에 대한 페널티 이외에도 만 40세 이상과 여성 선수에게 +1점을 부여하는 규칙도 문제적이다. 이 규칙은 여성팀, 남성팀, 혼성팀 모든 팀에 적용되는데, 여성팀, 남성팀에서는 만 40세 이상의 경우에 +1점이 적용되고 혼성팀에서는 만 40세 이상과 여성에게 +1점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규칙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만 40세 이상의 선수와 여성 선수는 농구를 하는 신체의 기본 값에 미치지 못해 배려 받아야하는 몸이다. 그렇다면 어드밴티지를 받지 못하는 신체의 기본 값에 포함되는 조건은 만 40세 미만의 남성뿐이다. 기본 값에 포함되는 조건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코트에서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항상 타자의 자리에 머무르게 된다. 어드밴티지를 가진 자는 경기에서 이겨도 어드밴티지를 통해 이긴 자가 되고 기본 값에 포함된 만 40세 미만 남성은 경기에서 패배해도 어드밴티지가 없다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한다. 만 40세 미만 남성이 아닌 자들은 경기에서 이겨도 온전한 승리로 인정되지 못하고, 이러한 규칙은 강하다고 여겨지는 자가 약하다고 여겨지는 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스포츠라고 오해할 여지를 준다. 관용은 가진 자의 언어이며, 약자는 그 배려 받음을 통해 강자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획득하지 못한다. 성차와 나이를 약자의 조건으로 삼음으로서 강자의 자리를 유지한다면 이러한 규칙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성차와 나이에 대한 신체적 조건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훈련된 신체들의 격차가 훈련되지 않은 아마추어의 격차보다 더 크게 벌어져야 하지만 전문화된 환경에서 훈련받은 신체들은 그렇지 않은 신체들에 비해 그 격차가 크지 않고, 오히려 점점 좁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1점의 어드밴티지가 필요 없으며, 성차와 나이에 대한 격차들을 어드벤티지 +1점으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나는 온전히 나로서 승리하고 싶고 또 패배하고 싶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강하지 않은 것처럼 나는 모든 남성보다 강하거나 약하지 않다. 어드밴티지 또는 페널티를 주는 방식은 단지 리그에 ‘공정하게’ 낄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정상성을 규정하며, 폭력과 배제의 작동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뿐만 아니라 아마추어까지 한국의 농구코트에 재미없는 ‘한국인-남성-40대 미만-비장애인’의 연속성만 남지 않기 위해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부에서는 선수 출신 농구맨 두 명과 농구하는 “여자”로 스스로를 설명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계속-)



♨ 서울 · 경기권 여성 농구 동호회를 소개합니다 ♨


<ASAP>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여자 농구 동호회

농구가 하고 싶은 20대 이상 여성이라면 가입 가능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개봉역 인근에서 정기 모임

ASAP STLYE / ASAP WINNERS 팀이 동호회에 소속되어 있음

☞ 카페∥ http://cafe.daum.net/ASAP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sapteam2000

ASAP STLYE ∥ www.instagram.com/_asap_style_/

ASAP WINNERS ∥www.instagram.com/asap_winnus/


<한늬>

2008년부터 시작한 농구 동호회

매주 일요일 부천역, 소사역 인근에서 정기 모임

현재 청소년은 팀원으로 받지 않고 있으나, 게스트로 참여 가능

카페∥ http://cafe.daum.net/HANNI/9upz/57


<JDC>

‘지’와 ‘덕’을 겸비한 여성들이 주말농구를 통해 ‘체’를 다지는 모임

농구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 가입 가능

카페∥ https://cafe.naver.com/teamjdc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DCWomensBasketball


<SPURT>

스퍼트는 2015년에 시작한 여자 농구 동호회

20대 대학생을 중심으로 모여 활발한 활동

이화여대 체육관에서 정기 모임을 가짐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team_spurt


<FLOW>

20대부터 30대까지 농구가 좋아서 모인 다양한 전공의 팀원들로 구성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분위기로 농구를 통해 팀스포츠의 재미와 가치 향유

매주 토요일 오후 이화여대에서 정기적으로 운동

카페∥ http://cafe.daum.net/bballflow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flow_bball/


<AMICA>

농구를 처음 하는 사람, 잘하는 사람 신경쓰지 않고 농구가 좋으면 모두 대환영

서울을 기점으로 주말마다 다른 장소에서 정기 모임을 가지고 있음

카페∥ http://cafe.daum.net/amica2007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mica_basketball_team/


  1. 생활체육서울시민리그 농구리그안내와 각 조 참가팀 참고, http://sleague.or.kr/2019/basketball/, 최종 접속일: 2019.7.12. [본문으로]
  2. Oyvind Sandbakk, Guro Strom Solli, Hans-Christer Holmberg(2017), Sex Differences in World Record Performance: The Influence of Sport Discipline and Competition Dur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Sports Physiology and Performance vol.13: Issue 1. [본문으로]
  3. 강조는 글쓴이, 전국농구연합회 농구규칙,https://www.koreabasketball.or.kr/basketball/game_rule.php http://www.naba.or.kr/item/item_02.asp, 최종 접속일: 2019.7.12. [본문으로]
  4. 「인사이트」, 2018.4.7., “한국 농구 커트라인 '키 2m 이하' 통과하자 기뻐 우는 외국인 선수”, http://www.insight.co.kr/news/149045, 최종 접속일: 2019.7.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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