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의 스포츠, 여성 스포츠는 퀴어 친화적인가?

- 퀴어여성게임즈 후기


    지난 9월 8일, 퀴어여성게임즈 3:3 농구 종목에 나가 우승을 했다. 2018년부터 개최한 퀴어여성게임즈는 종목에서 남/여 구분이 없고, 대회 취지에 동의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나는 매년 4~5개의 전국대회와 서울시리그 등 농구 대회에 나가 뛰고 있지만 퀴어여성게임즈는 그렇고 그런 대회들과는 달랐다. 평등한 스포츠 문화 만들기에 앞장서는 취지에서 오는 차별점 이외에도 농구, 배드민턴, 풋살, 계주 4개의 종목을 한 장소에서 동시에 아우르는 시공간부터 모두를 응원하고 박수치는 다정한 분위기까지 여러모로 굉장히 새롭고 놀라웠다. 기존에 출전했던 농구대회는 아무리 아마추어 대회라고 해도 출전하는 모든 팀이 우승과 트로피를 원했다. 잘하면 박수 받지만 실력이 없으면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나 벤치를 지켜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과 게임의 내용 등 일련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좋아야 과정도 중요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퀴어여성게임즈는 실력에 상관없이 모두가 박수받는다. 못해도 괜찮고 잘하면 더 괜찮은 이렇게 다정한 대회의 분위기가 매우 낯설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박수받을 수 있다니? (나도 어느새 박수를 치고 있음) 처음에는 드리블도 제대로 못 하는 팀을 보고 당황했지만 분위기 파악을 하고 나니, 뛰어난 기량으로 많은 골을 넣어서 승리하는 것만이 진정한 스포츠라고 생각하던 것이 머쓱해졌다. 신체를 움직이고 빼앗긴 운동장을 되찾는 움직임들 속에서 스포츠의 성취감은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여성-퀴어-스포츠’의 배열은 낯설지 않다. 운동의 행위가 탈-여성이라면, 퀴어와 탈-여성은 잘 부합하고 여성 스포츠 선수로서 정체성을 위협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상상, 여전사가 있다면 분명 운동선수의 신체를 가졌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익숙하고 적절한 자리에 배치된 완벽한 조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남/여 구분으로 필드가 자연스럽게 나뉘는 스포츠에서 여성 스포츠는 남성 스포츠보다 더욱 퀴어 친화적으로 여겨지고, 실제로 프로에서 활동하는 선수들 중에서 커밍아웃한 여성 선수들이 남성 선수들보다 많다. 최근에 치러진 2019 프랑스 월드컵에서 커밍아웃한 여자 선수는 서른여덟 명이었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커밍아웃한 남자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각주:1] 남성 스포츠가 호모소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남성 스포츠 선수의 커밍아웃은 선수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위협하지만 여성 스포츠에서 퀴어는 여성선수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오히려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운동선수로서의 아이덴티티에 오히려 부합된다. 그렇다면 여성 스포츠는 퀴어 친화적인가? 그래서 여성퀴어게임즈는 퀴어 친화적인 분위기에서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인가? 그러나 ‘여성-퀴어-스포츠’의 완벽한 조합이 퀴어 여성과 스포츠를 가깝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스미스 대학 하키팀에서 뛰고 있는 노라 코흐렌Nora Cothren은 여자 운동선수는 레즈비언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오히려 커밍아웃하기 더 어렵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팀원 중 누군가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게 되면 고정관념으로 떠도는 것들이 (거봐, 내가 뭐랬어 진짜)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각주:2] 이것은 마치 호모소셜에서 남성성을 위협하는 존재로서의 동성애자를 ‘우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존재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과정과 일정 부분 닮아 있다. 아무리 여성 스포츠 선수는 레즈비언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자유롭게 떠돌아도 여성 선수가 스스로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을 때 필드에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커밍아웃한 선수가 그로 인해 억압받거나 스폰이 끊기거나 줄어들 수 있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엘 월드(The L World)에서 프로 테니스 선수로 등장하는 데이나 페어뱅크스는 레즈비언 정체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 게이 친구를 애인으로 위장해서 파티에 참석한다. 광고와 스폰을 지속하기 위해 에이전시로부터 사생활에서도 ‘섹시한 이성애자 테니스 선수’ 이미지를 유지하기를 요구받기 때문에 데이나는 시즌 1에서 커밍아웃을 두려워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후 데이나는 커밍아웃을 하지만 걱정한 것과 다르게 스폰이 유지된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스포츠 선수를 이야기하면서 메건 라피노(Megan Rapinoe)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2019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성소수자 없이 우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팀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이것은 바로 과학이다!”[각주:3]라고 약간 찝찝하게 임파워링 되는 말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승리의 자리에서 우승자가 겨우 할 수 있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스포츠에서 커밍아웃으로 손해를 보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트로피를 획득한 사람들뿐인가. ‘퀴어 없는 우승은 없다’는 말은 우승을 한 자만 할 수 있다. 그가 우승하지 못했다면? 트로피를 들지 않은 빈손으로 할 수 있는 말은? 더 많은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남성 스포츠 선수들보다 커밍아웃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스포츠가 더욱 퀴어 친화적이거나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레즈비언 스테레오 타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오히려 편견과 혐오에 더욱더 쉽게 노출시키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더 아래로 숨길 수밖에 없게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퀴어 챔피언 또는 메달리스트가 구성한 퀴어-여성-스포츠의 배열은 혼을 빼놓는 유니콘의 유령으로 떠돌아다닐 뿐이다. 퀴어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밝혔을 때 선명해지는 것은 무엇일까. 우승자가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를 외치면, 언제나 벤치를 지키는 B급 선수가 모두의 신체를 드러내는 라커룸의 압박을 견딜 수 있을까. 국가와 국력을 대변하던 파워게임으로서 스포츠의 남성 중심적인 뿌리를 외면한다면 퀴어-여성-스포츠는 남성이나 거대한 다이크의 이미지를 가운데 두고 그것에 완벽히 일치하거나 가장자리로 벗어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여성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장이 퀴어 친화적인 장이 될 수 있기 위해 스포츠 정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다시 후기로 돌아와서, 퀴어여성게임즈는 승리를 통해 성취를 이루는 것이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뛰어난 기량의 선수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 그러한 선수가 되지 못하면 벤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 출전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운동장이라는 공간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것, 그래서 훌륭한 결과와 우승자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스포츠의 성취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는 모든 게임에서 우승했지만 우승자 타이틀과 작고 반짝이는 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 대회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스포츠가 남성 의미경제체계를 반복, 생산하는 것을 멈추고 퀴어-여성-스포츠의 자리와 새로운 의미체계를 생성하는 과정을, 실력에 상관없이 스포츠를 통해 신체를 움직이는 서로를 응원하고 맞은편의 상대를 향해 박수치는 것으로부터 상상해본다.

  1. BBC, 여자 월드컵: 여자 축구가 남자 축구보다 더 성소수자가 많은 이유, 2019.07.06,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8852013 [본문으로]
  2. “그것이 문제였다. 여자 운동선수가 레즈비언이라는 고정관념. 내 팀원들은 그 고정관념을 싫어했고, 그것을 분명히 표현했다. “레즈비언들이 왜 그렇게 많이 있지? 싫어! 모두들 나를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라고 했고, “음, 분명 팀에 남자가 있어. 그게 아니면 거대한 다이크(a huge dyke)””, 「Huffpost」, 02.13.2014, As a Lesbian Athlete, I Am More Than a Stereotype, https://www.huffpost.com/entry/as-a-lesbian-athlete-i-am-more-than-a-stereotype_b_4781983?guccounter=1 [본문으로]
  3. 「The Guardian」, 28 jun 2019, ‘You can’t win without gay players,’ says USA’s World Cup hero Megan Rapinoe,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19/jun/28/cant-win-without-gays-usa-megan-rapino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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