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로피를 획득한다 (2) - 농구하는 “여자”로 설명하기

3. #농구하는여자


   전국농구연합회의 NABA 규칙에 문제점을 느낀다면 아마추어 대회나 동호회 정기 모임에서 로컬룰을 적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 팀은 선수 출신과 외국 국적의 선수가 많아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러한 규칙에 문제를 느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을 바꾸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농구 규칙 안에서 배려의 이름으로 배제와 차별로 작동하는 정상규범의 문제들에 대해 농구 경력이 긴 두 명의 선수 출신 농구인 고인물(가명, 27세), 조상(가명, 26세)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허주영(이하 허): 본인의 농구 경력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고인물(이하 고):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고 숭의여중, 숭의여고에서 선수활동을 하다가 1학년 때 그만두고 성인이 된 후에 본격적으로 동호회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여성 농구 동호회 ASAP의 WINNERS 팀과 서울시 실업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조상(이하 조): 저는 광주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 때까지 선수 활동을 했습니다. 졸업 후 오래 농구를 쉬다가 지금은 여성 농구 동호회 ASAP의 STYLE 팀과 서울시 실업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허: 농구를 전문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조: 저는 학교에서 시켰어요. 키 큰 애들한테 스카우트 제의를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고: 대회 나가면 키, 몸무게 같은 정보들이 남으니까 그걸 농구부가 있는 학교들이 그 정보들을 공유하고 스카우트를 해요. 그래서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허: 나를 소개하거나 설명할 때 ‘농구하는 나’라는 정체성이 강하게 작동할 것 같은데, 자신의 경력을 어떻게 설명하나요. 그리고 반응은 어떤가요?

조: 그냥 선수출신이라고 얘기해요. 반응은 거의 신기해하는 편이에요.

고: 저는 설명을 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를 딱 보면 “뭐 하시나 봐요”라고 물어봐요(웃음). 저는 키가 크고 그러니까 농구 아니면 배구 하냐고 물어봐요. 아 킥복싱도 들어봤어요.

조: 저는 운동 하냐는 말은 많이 안 들어봤어요. 얘(고인물)랑 같이 다니면 물어보는데 혼자 다니면 안 그래요. 오히려 어릴 때 선수생활 할 때는 머리가 짧아서 물어봤는데 성인된 후에는 안 물어봐요. 그리고 농구한다고 하면 그냥 신기해해요.

허: 신기해한다고요? 그런 말 듣기 싫지 않아요?

고, 조: 아니요. 별로 상관없어요.

고: 그것보다 역도부냐고 유도부냐고 물어본 적도 있는데 그게 더 짜증나요(웃음). 그리고 농구를 가르쳐달라는 반응도 많아요. 그럼 ASAP팀으로 오라고 하거나,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체육관 올라가시죠 라고 해요.

허: 다른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두 분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릴 때 ‘#농구하는여자’ 자주 쓰시잖아요. 저는 자신을 농구하는 ‘여자’로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그 해시태그를 볼 때마다 좀처럼 참을 수 없는 저항감이 들어요. 내가 진짜 여자라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고.

고: 물론 여자라는 말을 빼고 농구하는 ‘나’로 설명할 수 있지만 해시태그를 통해서 사람들이 들어왔으면 해서요. 농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농구하는 여자들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농구하는 여자’라는 키워드로 찾아볼 것 같아요.

조: 저도 처음에 ASAP팀에 들어왔을 때 엄청 신기하고 놀랐어요.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이렇게 농구를 잘 하는 것이 신기했어요. 광주에는 남자 농구 동호회 밖에 없는데 서울 오니까 여자들이 농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농구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일반인들이 농구를 하니까 신기하고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궁금해서 해시태그를 달아요.

허: 초등학생 때부터 농구하셨잖아요. 여자들이 농구하는 것이 신기하다고요? 저는 안 신기하거든요. 농구 경력이 겨우 5년 밖에 안 된 저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한 농구맨들을 만났을 텐데 그런 반응이 놀라워요.

조: 저는 농구를 배웠으니까 하고 있지만 안 배웠으면 못할 것 같아요.

고: 사람마다 다르겠죠 뭐. 최근에는 제가 가르치는 학교의 학부모가 전화 와서 슬램덩크 송태섭 같은 가드가 되려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허: 농구를 하면서 스스로가 여성임을 인식한 적이 있나요?

조: 중학교 때 남자애들이랑 농구를 했는데 수비를 붙을 때 자꾸 가슴 쪽을 만지는 거예요. 일부로 그런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몸싸움을 제대로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하기 싫어서 코치한테 가서 말했어요. 자꾸 만져서 못하겠다고. 여자들끼리 하면 몸싸움할 때 전혀 그런 불편함이 없는데 남자들이랑 하면 그래요.

고: 나는 신체접촉은 없었는데, 그냥 잘하는 남자애들이랑 게임 뛰면 내가 패스랑 달리기가 느리고 점프가 안 되니까 확실히 남자랑 여자랑 운동신경 자체가 다르구나 차이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남자애들이랑 부딪치면 내가 나가떨어질 때도 있고.

허: 그렇다면 성별, 나이, 국적에 따른 아마추어 농구 규칙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나요?

조: 저는 어드밴티지를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이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약하니까. 사회적 인식이 그렇잖아요.

고: 농구만 기준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체력이 약하고 달리기가 느리기 때문에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또 다섯 명 중에 두 명 이상은 (어드밴티지를) 안주잖아요. 딱 적당한 것 같아요.

허: 너무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규칙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다 정해놓은 거잖아요. 또 개인이 가진 조건들은 모두 사라지고 성별, 나이, 국적만 남는 거잖아요.

고: 어긋나지 않는 것 같아요. 가끔은 농구를 못하는 남자랑 해도 좀 밀릴 때가 있어요. 그리고 40대 5명이랑 20대 5명이 경기를 뛰면 저는 20대가 월등히 앞설 것 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40대가 잘해도 20대가 몸을 쓰면 나가 떨어져요.

조: 맞아요. 젊음은 못 이겨요.

고: 프로 경기에서는 그렇게 나눠지면 안 되지만 아마추어에서는 괜찮아요. 또 여자 선출들이 남자 경기 나가면 +1점 안주는 경우도 있어요.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 가장 농구를 잘하는 두 명이 자신을 스스로 스포츠의 타자로 호명하고 남성/여성의 엄격한 경계를 긋는 원인은 무엇일까. 오히려 운동하는 여성이 스스로를 신체적 한계에 가두어놓고 자신의 육체를 남성보다 약한 “여성”으로 형상화하고 부정의 의미로 고정시킨 채 좌절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은 놀랍고 속상한 일이다. 이러한 한계에 대해 토로할 때 결국 자연적인 물질로서 여성의 신체가 남성보다 신체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은 “성적인 차이를 물질화”[각주:1]한다. 반복 속에서 기대되고 상상되는 여성의 신체는 자연적인 물질로 고정된, 언제나 남성보다 약한 것이기 때문에, #농구하는여자 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단체 사진 속에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그래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저항감과 분명한 불쾌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파워와 스피드를 모두 갖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의 호르몬 수치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자신의 호르몬 수치를 증명하기를 요구받는 것은 그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잘 뛰고, 그것은 “여성”으로 상상되는 신체와 능력에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각주:2]


   ‘Women in Sport’의 리서치에 따르면 스포츠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중 40%가 성별로 인한 차별을 겪었다고 밝혔고, 남성 중 72%가 성별로 인한 불평등이 없다고 대답했다.[각주:3] 이 연구는 같은 스포츠 산업 종사자들이 성별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겨우 40%? 이미 증명된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 고위직 진출 기회 부족, 인프라,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압박 등 다양한 차별들이 뚜렷하게 존재하는데도 차별을 경험했다는 여성 40%와 불평등을 느끼지 못한다는 남성 72%라는 이 숫자는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40% 밖의 여성은 남성 72%와 마찬가지로 불평등을 느끼지 못하거나 불평등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스포츠 업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과 여성혐오는 어떤 증명을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겨우 40%의 여성만이 차별을 경험했다고 고백한 것이며, 여성을 향해 새파랗게 눈뜨고 있는 차별과 폭력의 시선과 마주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고등학교 선수생활을 거쳐 약 16년 동안 농구를 해 온 여성이 어떠한 폭력을 느끼지 못하고 또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여성이 스스로 시스템의 피해자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은 가해와 피해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착되어 있는 구조를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것이다.


   처녀막이 터질까봐 자전거를 못 타게 하는 것, 집 안에 가두어놓기 위해서 작은 신발을 신게 하거나, 고작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면서 다양하고 대단한 이유들, ‘여성=집, 대지, 고향’의 은유 안에 가두어지는 여성들을 얼마나 더 증명해야 할까. 그러므로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하는 여성은 상품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지 못하는 위기에 스스로를 내모는 것으로 치부된다. 사회가 고도화되어 다양한 사회적 장치로 여성의 신체에 대한 규제들이 에둘러졌지만, 결국 여성에게 운동을 장려하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이미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엘리트 농구 코스를 밟아온 당사자가 짧은 생활농구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나보다 더 깊은 억압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지금의 스포츠 산업과 환경의 구조에서 여전히 여성은 운동하는 내가 되지 못하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의식에 발목 잡히기 쉽다는 것이다. 사냥꾼의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여성이 골대에 골을 넣는다는 것은 인류가 농경 사회로 넘어가면서 오랜 시간동안 진화 생물학이 주장해온 성역할과 사회질서를 어지럽게 만드는 위협이 된다. 즉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 자체가 여성이 가질 수 없는 욕망이기 때문에 트로피로서 존재해야하는 여성이 뛰쳐나와 트로피를 획득하면 곤란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야한다. 농구를 하며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쉴 때 생각한다. 더 뛸 수 있을까. 공수가 바뀌고 마음은 벌써 반대편 코트에 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 나의 한계. 한계는 인종, 국적, 신체적 특징에 따라 동등하지 않게 부여된다. 게다가 뿌리 깊은 남성중심적 세계와 사고들은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고 타자화 시켜왔다. 이 억압의 기표로서의 여성의 신체를 가진 내가 운동하는 나이지 못하고 운동하는 여성임을 인식하는 것은 매순간 어떤 패배의 고백이 되고 만다. 어드밴티지 +1점이 배려가 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내가 예민해서일까. 혹시 이제 무언가 판을 바꿀 수 있는 인식론적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보다 약하지 않으며,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강하지 않다. 단순한 규칙의 변화를 통해 평등을 이루는 차원이 아닌 여성의 신체가 운동장의 그늘 막에서 벗어나 땡볕의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스포츠 산업의 미래를 새로운 관점으로 상상해보아야 한다.



♨ 서울 · 경기권 여성 농구 동호회를 소개합니다 ♨


<ASAP>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여자 농구 동호회

농구가 하고 싶은 20대 이상 여성이라면 가입 가능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개봉역 인근에서 정기 모임

ASAP STLYE / ASAP WINNERS 팀이 동호회에 소속되어 있음

☞ 카페∥ http://cafe.daum.net/ASAP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sapteam2000

ASAP STLYE ∥ www.instagram.com/_asap_style_/

ASAP WINNERS ∥www.instagram.com/asap_winnus/


<한늬>

2008년부터 시작한 농구 동호회

매주 일요일 부천역, 소사역 인근에서 정기 모임

현재 청소년은 팀원으로 받지 않고 있으나, 게스트로 참여 가능

카페∥ http://cafe.daum.net/HANNI/9upz/57


<JDC>

‘지’와 ‘덕’을 겸비한 여성들이 주말농구를 통해 ‘체’를 다지는 모임

농구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 가입 가능

카페∥ https://cafe.naver.com/teamjdc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DCWomensBasketball


<SPURT>

스퍼트는 2015년에 시작한 여자 농구 동호회

20대 대학생을 중심으로 모여 활발한 활동

이화여대 체육관에서 정기 모임을 가짐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team_spurt


<FLOW>

20대부터 30대까지 농구가 좋아서 모인 다양한 전공의 팀원들로 구성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분위기로 농구를 통해 팀스포츠의 재미와 가치 향유

매주 토요일 오후 이화여대에서 정기적으로 운동

카페∥ http://cafe.daum.net/bballflow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flow_bball/


<AMICA>

농구를 처음 하는 사람, 잘하는 사람 신경쓰지 않고 농구가 좋으면 모두 대환영

서울을 기점으로 주말마다 다른 장소에서 정기 모임을 가지고 있음

카페∥ http://cafe.daum.net/amica2007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mica_basketball_team/


  1. 주디스 버틀러,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김윤상 역, 인간사랑, 2003, 23쪽. [본문으로]
  2. 「The Guardian」, 01 May 2019, “Semenya loses landmark legal case against IAAF over testosterone levels”, https://www.theguardian.com/sport/2019/may/01/caster-semenya-loses-landmark-legal-case-iaaf-athletics [본문으로]
  3. 「The Guardian」, 20 Jun 2018, “Report finds 40% of women face discrimination in sport jobs”, https://www.theguardian.com/sport/2018/jun/20/report-prompts-women-in-sport-call-urgent-action-discriminatio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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