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살아내는, 몸. (2)
- 온전히 생존기: 김경진
- 2019. 8. 26. 15:23
첫 달, 누드모델 일만으로 낸 수익은 40만 원 남짓이었다. 여기서 당시 거주하던 지역과 서울에 있는 화실의 왕복 비용을 빼면 30만 원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비용으로만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고, 당시에는 영상을 기획하거나 제작하는 외주 일을 받아다가 하고 있었다. 이 일만으로도 나는 먹고살며 학비를 내고 저금도 약간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을 냈다. 다만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 정도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잠을 잘 수 없었고, 기계적으로 영상을 찍어 내는 일은 단순 작업과 별 차이 없이 지루했다. 영상도 분명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한 놀이였는데 일이 되고 나니 타성에 젖었다.
나는 업무 외 시간에 책을 읽거나 공연을 보고 싶기도 했고, 글을 쓰고 싶었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잠잘 시간도 없는 와중에 업무 외 시간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을 리 없어서, 삶의 어느 부분에 제동이 걸려 있는 것을 매 순간 느끼며 살고 있었다. 개인의 가치 추구가 결여된 생존 차원에서의 노동은 생존 외의 모든 가치를 포기하게 만든다. 딱 내 삶이 그랬다. 나는 지독하게 일만 했다. 남들이 쉴 때도, 잘 때도, 각자 무리지어 모여 소속감을 도모할 때도 나는 내 방의 컴퓨터 앞에 혼자 앉아서 일했다. 외롭고, 불안하고, 지쳐있었다. 그런 삶을 지속할 용기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즉흥적인 누드모델 일은 조금 더 매력적이었다. 물론 근력이 없는 몸으로 무대에서 몸을 쓰고 나면 온몸이 욱신거리며 아팠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충분히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플 때까지 몸을 쓰고 나면 감정의 찌꺼기를 다 내다 버린 것처럼 홀가분하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오래된 불면증 때문에 졸피뎀을 몇 년간 장복 중(약을 무절제하게 쓰지는 않았고, 복약 기간과 휴약 기간을 의사와 상의하는 등으로 긴밀히 신경 쓰고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치료 차원의 복약이다.)이었고 가끔 자해를 하기도 했는데, 누드모델 일을 하느라 몸을 쓰고 온 날이면 지친 탓인지 깊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내 몸을 남에게 보여지는 몸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자해를 하고 싶은 기분이 덜 들기도 했다. 누드모델 일은 금전 외적인 부분에서 확실히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몇 년간 간신히 안정 시켜 놓은 생활 루틴을 한순간에 백지화하는 것에는 망설임이 컸다. 이제 한 달 해 본 일에서 ‘적성에 맞는가’를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겁이 났다. 이 두려움은 당장 버는 돈이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보다 ‘주류적 삶’을 스스로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영상 제작 프리랜서라는 직함은 우선 멋지고, 누구나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타인에게 직관적으로 인지되고,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주류적 삶의 직함이다. 나는-비록 내게 꼭 맞춘 것처럼 마음에 들진 않아도-이러한 삶에 주어지는 안정감, 사회적 안전, 지위 같은 것을 내던지고 보다 비주류인, 대안적인, 기존과 다른 모양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고민이 좀 더 필요했다. 고민은 고민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우선 누드모델 일을 할 때 몸이 덜 아프게 길들이기 위해 운동을 좀 해보기로 했다. 자발적으로, 내 몸을 발전시키기 위해 운동을 결심해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일과 중에 시간을 쪼개 운동하는 것은 힘들었다. 대신 수면 시간을 30분 더 줄이고 학교까지 걸어 다니기로 했다. 당시의 나는 수면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통학을 할 때 매일 같이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러니 당시에는 그만큼만 해도 놀라운 결정이었다. 어디서 읽었는데 기초 체력을 기르는 데에 걷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했었다. 통학 길은 경사가 좀 있고 계단도 있는 오르막길이니 운동 삼아 걸어 다니는 데에 적절할 것 같았다.
그렇게 걸어서 통학을 해 본 첫날에 내 신체 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몸소 체감했다. 오르막길을 조금만 올라가도 금방 허벅지가 뻐근하고 숨이 찼다. 몸에서 보내는 그러한 신호들을 무시하고 더 걸어 올라가려 하면 눈앞이 까매지며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쭉쭉 걸어나가 금방 나를 앞지르는데, 나는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어 오르막길 중간중간에 자리에 멈춰 조금씩 쉬며 올라가야 했다. 그 길을 쉬면서 걸어가는 사람은 나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알기 싫어도 내 몸의 상태가 평균을 훨씬 밑돌고 있다는 것을 매일 아침 눈으로 보고 알아야 했다. 그렇게 걸어서 학과 수업을 주로 듣는 건물에 도착하면 언제나 땀범벅이었다. 며칠 그렇게 땀범벅된 옷을 입고 다니다 못해 학과 건물에 도착해 갈아입을 나시를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걸어서 통학하기를 시작하기 전에 시간이 촉박해도 뛰지 않기로, 그리고 걸어서 통학하기를 쉬지 않고 지속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목표치를 최저로 설정하고 나서 계획을 실행하니 마음의 부담이 적어서 그랬는지 의외로 나는 매일 힘들어하면서도 꾸준하게 몇 달간 걸어서 통학을 할 수 있었다. 30분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도, 매일 땀범벅이 되는 것도 싫긴 했지만 몸에는 분명히 기초 체력이라는 것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걸어서 통학하기를 시작한 지 3개월째 되는 주부터, 나는 오르막길이 있는 통학 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몸은 쓰임대로 발전한다는 것을 이때 명확히 알았다.
몸이 발전하고 새로운 몸의 경험에 익숙해지는 체험은 무대에서도 계속되었다. 처음 누드모델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팔을 앞이나 위로 쭉 뻗는 포즈를 하면 3분을 버틸 수 없었다. 그러나 몸의 쓰임이 거듭될수록 단련이 되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5분, 또 어느 순간부터는 7분을 버틸 수 있게 됐다. 잘 정지하기 위해서는 잘 움직일 수 있는 몸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정지 또한 움직임, 몸짓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행위다.
나에게 처음 일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는 이 ‘정지’가 생각보다 몸에 무리를 많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언제나 강조하셨다. 실제로 몸에 걸리는 과부하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모델들은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신경 손상으로, 또 어떤 이는 무릎의 연골이 닳아서, 또 어떤 이는 하지정맥류가 생겨서 일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손상된 몸의 부채는 고스란히 몸의 주인인 개인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스스로 관찰하고 상태를 인지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한계를 깨려 할 때도 몸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일상적인 스트레칭을 할 것, 절대 무리하지 말 것, 무리하기 전에 ‘무리를 해도 되는 상태인지’를 먼저 관찰할 것, 언제나 여상스럽게 할 것, 등등. 나는 이렇게 몇 가지의 규칙을 가지고 누드모델 일을 지속하고 있다.
정지하고 견디는 것, 몇 시간이고 그렇게 하는 것에 익숙해져 앓아눕지 않게 된 어느 날 나는 천천히 삶의 궤적을 바꿔 볼 준비를 했다. 우선 내 선으로 들어오는 영상제작 업무 중 몇 개를 다른 사람에게 재 의뢰하고 중개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글로 요약하니 이렇게 명료한데, 이 일은 글처럼 쉽진 않았다. 적합한 사람들을 찾아 일을 넘기고 이것저것 조율하는 데에 꼬박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알람을 꺼놓고 몸이 저절로 잠에서 깰 때까지 잠을 자는 일이었다. 그렇게 잠에서 깬 뒤에는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했다. 일을 넘긴 만큼 수입은 줄었지만 나는 그때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내 삶의 주도권을 그 누구의 손에도 넘겨주지 않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다.
그렇게 직업인으로써의 누드모델이 된 지 몇 년이 지났다. 근래 삶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키워드는 ‘몸’이다. 내 몸에 대한 관심이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그것은 빠르게-내 몸에 대한 관심이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는 속도보다 빠르게-여성의 몸을 가지고 살아내는 일상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몸은 무대에 올려져서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공평하게 특별하다. 몸들의 동등한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가슴이 뛰었다. 꼭 맞는 투쟁의 도구를 손에 넣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성적으로 대상화 되지 않는 몸들을 증명하며, 몸으로 투쟁하고 몸으로 살아내는 삶의 수순을 밟는다. 그만큼의 시간과 고민이 내 몸에 쌓였다는 것을 관심의 범주가 확장될 때 느꼈다.
최근에 누드모델 활동과 관련하여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여성이 신체를 드러내는 것을 터부시하는 사회에서 ‘탈 브라’ 하는 행위와 자의적 선택으로 ‘옷 벗을 권리’를 집행하는 여성 누드모델의 활동을 일치시켜 엮어낸 재미있는 기획 기사였다. 여러 질문 중 성적으로 사고가 난 적이 없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나는 그 ‘성적인 사고’라는 것은 여성이 벗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누군가 때문에 벌어진다고 대답했다. 여성이 벗지 않아도 성적 대상화는 맥락적으로 어디든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여성들이 성적인 문제의 피해자가 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벗은 몸은 가장 무해하고, 인간에 있어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순수한 오브제다.
나는 옷을 벗고 본질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투쟁한다. 내 몸의 역사가 여기에 새겨져 있음을 증명하고, 이 몸이 정말로 ‘야하게’ 보이는지 무대 바깥에서 시선을 보내는 이들에게 정면으로 부딪혀 묻는다. 무대에 서는 모든 순간이 그 물음의 순간임을 자각하고 있다. 내가 내 몸을 스스로 관찰하여 나의 역사를 발견해냈듯, 무대 바깥에서 나를 관찰하는 이들의 대다수도 그것을 알아본다. 이는 특별한 투쟁인 동시에 특별하지 않다. 다른 몸들도 각기의 역사를 관통한 흔적들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각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므로, 나는 이제 이것을 자각시키고 다른 여성의 몸들을 투쟁에 동참시킬 방법을 작업으로써 모색한다.
내 삶이 한 평생 안정적이고 안온하기를 바라지 않기로 했다. 나는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이고, 누드모델이다. 약자다. 다만, 권력자들의 터부시함과 싸워 삶을 쟁취해내는 약자다. 몸은 무해하다고 선언하며 그 무해한 몸으로 싸우는 불합리한 전쟁을 하고 있다. 삶의 매 순간 나와, 나인 여성과, 나의 몸은 이 싸움 한복판에 새파랗게 살아있다.
몸, 살아내는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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