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어떤 우울에 대하여 (1)

   이번에 공개하는 글은 사실 같은 제목으로 쓰는 두 번째 글이다. 첫 글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마감이 이틀 남은 시점에 다시 원고를 하고 있다. 첫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번에는 우울에 대해 쓰자고 스스로 정해 놓고도 ‘내 우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거나, 해야 할 이야기를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상대방을 납득 시키는 과정이 매번 껄끄럽고 숨 막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내가 이 화두 앞에서 이만큼이나 비겁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근데 나는 글을 쓰고 있을 당시에는 정말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왜 원고를 하는 내내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고 손이 멈추는지 몰랐다.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썼던 내용을 골똘히 곱씹어 보다가, 불현듯 그렇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짓말은 나를 수치스럽게 하므로, 타인을 납득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다시 쓴다. 솔직하게 쓴다.

    엄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나는 출생부터가 유난한 애였다. 이전에 연재했던 ‘엄마 이야기’에 자세히 언급했지만 이번에 잠깐 다시 하자면 나는 엄마를 열일곱 시간이나 진통하게 하며, 말 그대로 엄마의 몸을 찢고 태어난 딸이다. 태어나면서 이리 유난했으니 좀 순탄하게 커줬으면 좋은데 그러지도 않았다. 갓난쟁이인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해 엄마를 육아 지옥 중의 가장 깊은 곳으로 몰아넣었다. 심한 날에는 하루에 30번도 넘게 깨어 울었다고 했다. 특히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 평소보다 보챔이 심했어서 엄마는 아직도 비가 오면 몸서리를 친다.

    나는 이게 사실일 거라고 믿는데, 이유가 뭐냐면 불과 최근 몇 달 전까지 내가 최면 진정제인 스틸녹스를 처방받아 주기적으로 복용하던 불면증 환자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단약했지만, 여전히 가벼운 수면장애가 있어서 때때로 약의 도움을 받아 잠든다. 나는 태어나길 감각 기전 자체가 너무나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났고, 기전은 시간이 지난다고 바뀌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예민함이 내 우울의 원인이라고 믿는다. 세상은 자극투성이다. 나는 그 자극들에 너무 쉽게 영향을 받고, 남들보다 더 큰 진폭으로 감정과 감정 사이를 빠르게 오간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치고 무기력해진다. 우울해진다.

    물론 내 삶 중에는 가급적 겪지 않으면 좋을 것 같은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이 있기는 했다. 그 일들이 현재의 내 정서에 아주 영향을 안 주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나름대로 일상을 지켜 낼 줄 알았다. 지금 와서는 그 사건들을 떠올리는 것이 딱히 괴롭거나 하지도 않다. 도서관에 책이 정리되듯 그것들은 잘 갈무리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우울은 뜻대로 갈무리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사건들이 불행이었음을 인정하지만, 내 우울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처음 정신과에 가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스스로에게 물리적인 흠집을 내는 버릇이 있었다. 그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여러 종류의 폭력에 자주 노출되었다. 폭력은 외부로부터 와서 내면에 강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힘이다. 폭력 행위에는 으레 폭력 당하는 이의 의사가 개입되지 않으므로 폭력 행위는 일종의, 권력관계를 재확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누가 벌을 주고 누가 벌을 받을지,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누가 침해하는 쪽이고 누가 침해당하는 쪽인지를 재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폭력을 쓴다.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될 때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싸워 왔다. 그러나 그 거대한 폭력의 질서, 재확인의 룰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그 룰 자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적인 룰을 만들었다. 내가 가해자가 되고, 내가 피해자가 되는 룰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스스로에게 물리적인 흠집을 내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묻고 존재가 죄라고 대답했다. 태어나며 엄마를 죽일 뻔한 것, 유난히 예민한 사람으로 자란 것, 숨겨야 할 것이 많은 것, 설명되지 않는 것이 많은 것,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이 나를 폭력 상황에 놓이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속했으므로 그것들이 다 나의 죄였다. 타인들은 내 언어로 하는 말을 듣고 나를 용서하는 데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나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용서하며 약을 발랐다.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또 한동안 존재의 죄를 모른 척하고 살아갈 힘이 생겼다. 이런 룰 덕분에 한여름에도 긴 팔 상의를 입어야 했지만, 계속 살아가는 일에 비하면 그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이 룰을 남에게 들키는 것은 룰을 위반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당시에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자해흔을 들키고 말았다. 크게 당황한 남자친구는 화를 냈고,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왜’ 냐는 질문은 본인을 납득시켜 달라는 함의를 포함하는데, 타인을 납득 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당시의 나에게는 그만큼의 에너지가 없었다. 내가 끝끝내 침묵하자 남자친구는 정신과에 가자고 나를 설득했다.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핑계를 댔는데 본인이 진료비를 대겠다고 했다. 나는 핑곗거리가 떨어져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깔끔한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다가 깔끔한 진료실 안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을 마주 보고 앉자,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으셨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자해한 상처를 들켜서 끌려왔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다음 질문은 왜 자해를 했나, 한지 오래됐나, 그런 통상적인 진료를 위한 질문이었다. 자해를 한 지는 조금 오래된 것 같고, 이유에 대해서는 우울 때문이라고 대답했었다. 선생님은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를 물어보셨는데 나는 우울에 어떤 구체적인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어떤 사람들의 우울은 그 이유-결핍이 충족되면 호전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것이 질병 형태의 우울이었고, 내가 우울한 것과는 무언가 좀 다른 것 같았지만 당시에는 그 차이를 잘 알 수 없었다.

    첫 진료 후 몇 달간 알프람정을 포함한 항불안제들을 처방받아 성실하게 복약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원래 정신과 의약품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호전시키고 힘든 상황을 잘 견디도록 도와주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약을 먹게 되며 간밤에 잠드는 것이 좀 더 편안해진 것은 좋았다. 하지만 내 자해는 우울증의 증상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만든 룰이었기 때문에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나는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중에도, 내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에게 흠집을 냈다. 병원에서는 충동이나 충동의 전조 없이 하는 자해를 ‘전형적이지 않다’고 말하며 곤란해했고, 아주 조심스럽게 병원을 옮겨 볼 것을 권했다. 병원에 다닌 지 1년쯤 됐던 때의 일이다.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사려 깊은 어조였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환자를 진심으로 우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했다. 이후 다시 항불안제를 먹지도 않는다. 아주 가끔 수면제 처방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집 근처에 있는 가정의학과로 간다. 정신의학과보다 진료비도 더 싸고 거리도 가깝기 때문이다.

    이제 10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요즘도 가끔, 정신보건에 관련한 여러 키워드를 접하면 ‘전형적이지 않다’고 말하던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와 난감함을 살짝 내비치던 제스처들이 떠오른다. 그 기억이 불편하거나 상처가 되어 떠오르는 것은 아니고, 그 말 자체가 나에게 전형성-정상성이라는 것에 대한 의문점을 최초로 가지게 한 말이어서 인상에 남아 그런 것 같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형성에서 벗어난 것으로 취급되는데, 그 정신질환을 분류하고 치료할 때도 그 분야의 전형성에 의거하여 접근한 다음 진단을 내린다는 사실이 조금 재미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당시의 나에게도 이런저런 증상에 대한 표준적 접근으로 여러 가지 병명이 진단되었지만, 혹시 이 전형성이라는 것을 조금 내려놓고 진료가 이루어졌다면 다른 병명이 진단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혹시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표준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많은 생각과 판단은 언제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표준에서부터 전개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집단-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관계하며 생존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이 집단이라는 것을 안정적으로 성립시키는 것이 생존을 위해 우선해야 할 과제가 되자 어떤 표준화된 양식들-규범, 규칙, 이념 등의-을 통해 집단을 통제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러면서 전형적인 것과 전형적이지 않은 것의 구분이 시작된 것이다. 통제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려 시도하거나 이 안정의 서클을 깨는 것은 집단의 생존 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듦으로, 불온한 것으로 배척되었다. 그런 집단의 역사가 오래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표준은 익숙하고 편안하고 접근이 쉬운 것, 비표준은 낯설고 불편하고 접근이 어려운 것이 되었다. 표준적인 것이 보다 쉬우니 표준적인 것에 먼저 접근하게 된다는 얘기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개인의 다양성이라는 화두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며 정상성에 대한 재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는 다양성이 아니라 표준이다.

    이쯤 되니 정신의학과 진료 자체에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정신질환을 치료한다는 것은 집단이 요구하는 기준 안에서 원활히 생존하기 위해, 내가 가진 비 보편적 기호들을 삭제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동성애 등의 퀴어 정체성 또한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우울은 정말로 병이고, 치유의 대상인가? 집단-사회에서 편의성을 위해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아닌가? 집단의 편의를 위해, 맥락을 삭제하면서 어떤 대상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나는 그것이 폭력으로 느껴졌다. 나의 내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얘기여도 별로 그런 규정 방식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집단-표준 외적으로, 좀 더 개인적으로 내 우울에 접근해 볼 마음이 생겼다. 물론 우울의 원인은 기전 안쪽에 깊게 숨겨져 있고, 그 깊게 숨겨진 부분에 접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내 안쪽에 있는 것을 무책임하게 계속 방치할 수는 없었다. 안쪽에 있는 무언가를 알지 못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속이 비어있는데 속이 터질 것 같은 어떤 기분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기력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불면증으로, 식사를 원활히 하지 못하게 만드는 섭식 장애로, 삶 전반에 있어 시시때때로 감각되었다. 나는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것의 정체를 좀 더 알아야 했다.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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