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랑의 가능성에 대하여
- 어쩌다 퀴어: 무지
- 2019. 10. 18. 13:29
애인에게 쓰는 편지인데 웹진에 올리는 것을 염두하고 썼습니다. 편지의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아직 당신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요. 지난주 금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해명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동안 우리는 불안 질투 분노 좌절 같은, 관계에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일들을 겪고 나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고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곤 했어요. 서로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생각들을 했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설명하고 상대방이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를 확인하곤 했죠. 감정의 연원을 따라 내려가면 너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것이 드러났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말끔히 태워버릴 수 있었어요. 그러고 나면 당신과 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엮인 느낌을 받았죠. 관계가 더 튼튼해졌다고 느꼈어요.
마찬가지로 지난주 금요일, 우리는 당신이 이별을 생각할 만큼의 꽤나 큰 갈등을 겪었어요. 결과적으로 다시 잘 만나고 있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서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 것 같아요. 상처를 대충 덮어두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관계를 좀먹는 씨앗이 되지는 않을까 다소 불안했죠.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당신에게 이야기하려 해요. 아직도 내 자신이 이해가지 않지만 사건에서 시간적으로 멀어질수록 형체가 드러나는 걸 느껴요. 이럴 때 글을 쓰면 도움이 되는 걸 알고 있기에 나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해서 무거운 마음을 덜고자 합니다.
지난 목요일 저녁, 어머니와 식사를 마치고 쉬는 중이었어요.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과 나, 넷이 사는 집에 다른 가족들은 약속을 가고 없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소 크고 작게 싸우면서도 같이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중이지요. 내가 어머니였으면 당장 이혼했을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말이에요. (물론 아버지도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놈의 ‘젠더’가 무엇인지, 어머니 쪽에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되더라고요. 그 말인즉슨 ‘어머니는 피해자고 아버지는 가해자다’라는 시선으로 두 분을 바라볼 때가 많았다는 뜻이지요.) 이번에도 어떤 사건이 빌미가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머니가 분노에 가득 차서 큰어머니와 전화를 하시더라고요. 원통하고 억울하다는 한탄을 하는 전화였어요. 저녁 먹는 동안 전혀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였기에 나는 너무도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저 정도의 격렬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태연하게 밥을 먹고 일상을 지낼 수 있었던 거지? 생판 모르는 남이라도 깜짝 놀라서 어머니를 어떻게든 도와주려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격렬한 감정이었어요.
어머니의 요지는, 아버지 같은 (안 좋은) 남자를 만나서 어머니 팔자가 이 모양이 됐다는 거였어요. 너무도 많이 들어본 레퍼토리라 ‘두 분의 일은 두 분이 알아서 하게 두자, 나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신경을 끊으려 했지만 어머니의 전화통화를 듣고 난 후로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되기 시작했어요. 일단 어머니께 직접 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 아빠가 또 무슨 일을 벌인 거야?’라고 물어봤어요. 너는 신경 쓸 거 없다는 말에 그렇게 힘들면 이혼하라는 말을 붙이고는 내 방으로 돌아왔어요. 그 후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했어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나는 무엇이 화가 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진정하려 애썼지만 걷잡을 수 없었어요. 두 분은 역시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해, 왜 자식은 낳아서 결혼생활을 끝낼 수 없게 만든 거야. 같은 말들이 맴돌았어요. 직접 들은 바로는 분명 끔찍이 서로를 사랑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서로를 저주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사랑을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시간일까 생계일까 결혼일까 자식일까. 쓸데없다고 느끼면서도 이런 고민에 푹 빠져있었어요.
‘세상에 사랑 따위는 없어, 한 때의 뜨거운 감정일 뿐. 어차피 누구나 혼자야’ 이런 생각으로 흘러가는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어요. 이전부터 사랑이 없다는 증거를 발견할 때면 항상 하던 생각이라 더욱 쉽게 사로잡혔어요. 나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아끼고 위해주는 마음은 자신의 심신이 풍족할 때나 가능한 것이 아닌가, 가끔 살신성인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는 ‘특수한’ 경우 아니던가,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우울과 절망으로 힘들어한 시간들이 길었기에 타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여겼어요. 서로가 가진 어둠에 다치기 쉬우니, 찌르고 찔려 아파할 것이라면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죠.
이런 생각에 허우적거리는데 자꾸 당신이 끼어들었어요. ‘회사에서 일하느라 고생했어요, 저녁 메뉴는 뭐예요? 보고싶어요.’ 우리가 꽤 오래 전부터 일상적으로 나누던 대화들이었는데 내면이 황폐해진 나에게는 불쏘시개였어요. 한마디 한마디가 내 심장을 타들어가게 만들었어요. 세상에 오직 나 혼자뿐인데 당신은 왜 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지, 보고싶어 하는지 울화가 났어요. 어머니의 전화통화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당신과 일상을 나누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는데 그랬던 과거의 나를 알고 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다는 사실이 또 가슴 아팠어요. 너무도 큰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 몸과 마음이 서늘했어요.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니까, 그저 내가 어머니로 인해 비뚤어진 것뿐이니까 당신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나 자신을 애써 안심시키려 했지만 걷잡을 수 없었어요. ‘사랑 따위 순간의 환상일 뿐이야’ 라는 생각이 나를 온통 지배해서 당신에게 향하는 마음들을 고통스럽게 했으니 말이에요. 지금은 이렇게 달콤하게 행동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당신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내 부모님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기필코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내 나와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러니 당신은 나에게서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를 나쁜 사람 취급하면서 지금까지의 관계에서 물러나려하는 것이 바로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무책임이라고 하죠.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어리석고 또 미숙했어요. 당신에게 배경설명도 없이 본론만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으니 말이에요. 당신은 헤어지자는 뜻으로 받아들여 밤새 한 숨도 못자고 분노하고 슬퍼했다고 했지요. 입장 바꿔보면 나도 그랬을 거예요. 누가 들어도 헤어지자는 말이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도 당신은 나에게 어떤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고 얼른 만나서 얘기하자, 보고싶다 라는 말을 반복했어요.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있던 이틀 동안 당신은 끈기있게 인내하고 침착하게 대처했어요. 당신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달라진 게 없는 걸 보고, 내가 준 상처를 혼자 감내하는 것을 보고 점차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당신을 힘들게 해서 미안했고 당신이 상처 입은 게 너무도 속상했어요. 어둑어둑하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헤어지자는 뜻이 아니었다고, 전처럼 아니,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더 긴밀한 관계로 잘 지내고 싶다는 내 마음을 알리고 싶었어요.
사랑이란 도대체 뭘까요.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생각하곤 해요. 사랑해요.(노을이 예쁘게 지는 것을 보니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요) 라던가, 사랑해요.(당신을 만나고 싶은 마음보다 당신이 집에서 푹 쉬는 게 더 중요해요) 라던가. ‘사랑’이라는 말 자체로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지금 당장 네가 보고싶어서 온 몸이 타들어가는 마음에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거죠. 반면 당신을 평생 책임지겠다는 뜻에서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삶을 걸고 무겁게 말하는 것일 테니까요. 너무도 의미가 다른 것들이 사랑이라는 단어에 뭉뚱그려 있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사랑한다고 말할 때 구체적인 내용이 없으면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세상에 사랑 따위는 없다고 말했을 때, 여기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따져봐야겠죠. 이 고민을 하려는데 갑자기 어머니의 한탄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았던 때가 떠올랐어요.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나도 덩달아 비뚤어진 것이었으니 말이에요. (결혼으로 생겨난 자식이 ‘나’니까) 내가 오히려 어머니의 행복에 방해물이 되었다는 생각에 괴롭고 싫었어요. 그런데 어머니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서 같이 고민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머니를 사랑하니까 그런 것이잖아요. 세상에 사랑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따지고 보면 ‘어머니’지 ‘내’가 아닌데도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다보니 문제에 골몰하다가 내 문제로 받아들인 거였어요. 한때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러 책들을 찾아 읽기도 했는데 부모님의 감정에 따라 내 감정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딱 그 증상 같았기 때문이에요. 책을 읽었으면 뭐 하겠어요, 여전히 어머니의 꼭두각시가 되어 온통 어두워졌는데 말이에요.
여기까지 오니 어머니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과 노을을 보고싶어 한 것처럼, 어머니의 삶을 구제하는 게 아니라 옆에서 같이 걷는 친구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친구라면 어머니의 한탄을 듣고 그렇게 좌절하고 비뚤어질 이유가 없으니 말이에요. 나는 나의 삶을 살며 다양한 마음들을 펼치고 살길 원하고 어느 때는 절망이 있더라도 어느 때는 사랑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어머니에게 휘둘려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은 원치 않아요. 나는 다 큰 성인이고 독립된 개인이잖아요. 어머니도 소중한 관계들 중 하나의 위치로 보낼 거예요. 내 ‘분신’이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잘 살 수 없을 거고 주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미숙한 사람일 테니까요.
색색의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여전히 사랑을 알고 있어요. 불안, 공포, 좌절이 있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건 아니니 말이에요. 시시각각 다른 마음들이 나타났다가 지나갈 것이고 또 새로운 마음이 나타나겠죠. 긍정적인 것들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당연히 ‘인간’이니까 부정적인 것들도 있을 거예요. 당신을 향한 마음 또한 그래요. 행복한 순간들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겠죠. 하지만 부정적인 날들에도 당신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아요.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분명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곧 우리의 관계가 시작된 지 1년이 돼요. 다양한 일들을 겪었는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다채로울지 상상이 가질 않네요. 관계를 잘 만들어가고 싶어요. 지금처럼 당신이 도와줄 것이라 믿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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