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아픔에 이름 붙이기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엉망이었다. 무언가가 매우 슬프고 화나는데 무엇 때문인지 몰라서 당혹스러웠다. 나는 누구고 무엇을 하는 중이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어제를 살아낸 관성으로 시간을 버텼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전부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귀찮은 일을 나에게 미루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뜻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평소 ‘정상적일 때’를 떠올려서 머리로 이해해야 했다. 납득은 잘 가지 않지만 내 기분대로 반응했다가는 큰 싸움이 일어날 거 같았다. 차라리 걸리는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속을 푸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 싶기도 했는데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화가 더 잘 나는 것을 보고 그만 뒀다. 강한 사람들에게 화냈다가는 그저 나만 다치고 말 것이라는 걸 ‘본능 혹은 이성’적으로 알고 선별했던 것이다. 나보다 강한 상대에게 화내는 게 아니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무에게도 화내지 못했다. 제일 만만한 나 자신한테 화를 냈다.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힘든 거라고 윽박질렀다.
 
    왜 이렇게 정신이, 마음이, 자아가 혹은 영혼이, 이것을 뭐라고 부르든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무언가가 망가져서 오작동을 하고 있는 건지 차분히 돌아봤다. 최근 애인과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올랐다.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던 중이었다. 애인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체를 해서 집에 급히 돌아와야 했다. 데이트 도중 갑자기 아파서 집에 데려다준 게 벌써 세 번째였다. 겪어봤어도 익숙해지지는 않아서 응급실에 데리고 가야 하나 119를 불러야 하나 허둥대다 택시를 태워서 집에 데리고 온 것이 전부였다. 오는 길에 애인이 말을 꺼냈다.
 
    “계속 아픈 걸 보면 엄마처럼 나도 불치병에 걸리는 거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어요. 병에 걸리는 것보다 그런 내 옆에 당신이 있다는 게 더 두려워요. 만약 그렇게 되면 나랑 꼭 헤어져요. 나를 버려야 해요.”
 
    자기가 무슨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인 줄 아는지, 멜로 좋아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직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저런 말을 한다는 게 괘씸하고 어이가 없는 한편으로 거의 매일 아픈 걸 알아서 마음이 쓰렸다. 아프게 하는 원인을 없애고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면 될 텐데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 제일 속상했다. 애인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어머니는 병으로 요양 중이시고 네 가족이 살 집을 마련하느라 20대 초반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 없이 일만 하며 살아왔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고되게 일했는데 아직 대출금을 못 갚았으니 잠시도 쉴 수 없다고 했다. 살아온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친구를 통해서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애인에게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 애인이 최근 지속적으로 두통에 시달리고 체하고 아팠다. 근 15년을 그렇게 일했으니 당연히 아픈 거였다. 나 또한 스물여섯살에 목‧허리디스크로 고생해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쉼 없이 일을 계속 하면 (내 경우에는 장시간 책상에 앉아서 공부한 것이 원인이었지만) 탈이 나고 아프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그동안의 생활을 뉘우치고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쉬어주니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애인은 가족들과 살기 위해서 쉴 새 없이 일했고 지금도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일을 멈추면 돈을 갚지 못하고 생활비도 벌지 못하니 말이다. 어쩔 수 없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졌다. 평생 복권을 사본 적이 없었는데 열심히 로또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 봄, 시간을 갖자는 말을 할 정도로 크게 싸운 일이 있었는데 그도 돈 버는 일 때문이었다. 애인이 야근 잦은 본 직업을 유지하면서 주말에는 시장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건강도 건강이었지만 주말까지 일하면 데이트 할 시간이 전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너무도 서운했다. 마음이 깊어가는 때라 잠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애인 입장에서 큰 액수의 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이니 빨리 대출금을 갚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로 보인 모양이었다. 그런 애인에게 나는 데이트는 언제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영화 <기생충>이 개봉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남주인공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살인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키스하자고 조르는 여주인공이 딱 나 같아 보였다고 했다. 먹고 살 걱정 없는 중산층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말이다.
 
    헤어져야한다고 말하는 애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싫어, 안 헤어질 거야. 옆에서 병수발 들고 꼭 붙어서 살 거야.’ 이렇게 말하면 속이 시원했을까. 여섯 달 전 즈음에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현실이 어찌 될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니 애정 어린 공수표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파서 정말 그렇게 될까봐 조마조마한데 병에 무조건 걸릴 거라고 확언하는 것 같았다. 같이 살아도 건강하게 행복하고 싶지 힘들어하며 살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병에 걸리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어디 있어, 지금부터라도 건강해지려고 노력하면 되지.’ 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밤낮없이 일하면서 건강을 챙기는 건 기적에 가깝다는 걸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할 수 없었다. 적어도 경제적인 뒷받침은 해 주어야 네 몸 관리만 제발 잘 하라고 잔소리 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자격지심도 들었다. 애인을 구원해 줄 경제력이 없으니 말이다. 이도저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묵묵히 땅만 보고 걸었다. 정말 X같은 현실이라고 속으로 욕을 잔뜩 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집에서 지내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언행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마주치는 그 짧은 순간에 하는 단 몇 마디의 말들이 내 자존감을 박살내서 속을 다 뒤집어놓았다. 독립을 하면 될 텐데 나는 20대 내내 아픈 몸을 추스르느라 일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고 따라서 돈이 없었다. 집에 있는 것이 싫지만 갈 데가 없는데 독립할 엄두도 안 났다. 구차하고 찌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집을 나오고 싶으면 막노동을 하더라도 나와서 살면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만한 돈을 벌려면 노동 강도가 셀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경제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과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 둘 다를 갖고 싶어서 아무 것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아둥바둥 하고 있었다.
 
    감정의 혼수상태에 빠져 어떤 말을 하든 무감하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는 나에게 애인이 그렇게 힘들면 헤어져도 된다고 말했다. 헤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순수하게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만약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헤어지는 것밖에 답이 없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왜 헤어질 생각은 들지 않는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답은 너무도 간단하고 당연했다. 애인이 좋으니 헤어질 생각이 들지 않는 거였다. 그녀의 이목구비, 목소리, 체향,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좋았다. 또한 그녀의 가치관, 몸가짐, 말하는 방식,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등이 전부 근사하고 멋있었다. 그런 그녀를 만들어 낸 것이 삶의 경험이니 현실도 그녀의 일부였다. 
 
    돌이켜보면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낯선 사람이었을 때 그녀에게 결정적으로 마음이 갔던 이유는 절망 때문이었다. 삶의 고난 속에서 사람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지 어떤 감정, 어떤 마음까지 먹을 수 있는지 그녀는 넓고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며 살고 있던 내게 그녀가 깊이 침투했다. 절망과 우울의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녀는 곁에 있어주었다.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공유하며 안락함을 느꼈다. 나는 이런 주고받음이 사랑이라고 느꼈다. 그녀의 이런 부분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 ‘고난’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속상하고 안타까워도 별 수 있나 견디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녀의 현실이 힘들다고 해도 헤어질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였다.
 
     근 며칠간 애인에게 어떤 마음에서 사랑한다고 말해야하는지 알 수 없어져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는데 글을 쓰는 지금에야 알게 됐다.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힘든 현실을 가감 없이 나누고 함께 괴로워하고 서로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다시 오늘에 섰다. 내후년 계약이 끝나는 한시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고 가족들과 복작복작하게 부대끼며 아픈 데가 있어도 별 내색하지 않는 애인과 함께하다보니 겨울로 넘어가는 늦가을이 되었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듯 하면서도 수도 없이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낯선이 였으나 지금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가까워진 그녀처럼 말이다. 지금의 괴로움 또한 언젠가 눈 녹듯 사라져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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