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연말의 대전쟁


    사건의 발단은 2019년이 3일 남은 1229일 저녁 식사에서 시작된 아빠의 반찬투정이었다. 엄마와 아빠, 나와 동생 모든 식구가 모여 밥을 먹는데 아빠가 코다리찜에서 비린내가 난다고 화를 냈다. 처음에는 가만히 있던 동생이 점점 강도가 세지자 맞붙어서 싸웠다. 그걸 말리려는 나와 엄마도 같이 소리를 질러 결국 부엌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동생과 아빠가 일찍 퇴장하고 식탁에는 나와 엄마만 남았다. 엄마가 은근하지만 굳센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가 몸이 아프니까 저러는 거야. 아빠가 너네 이렇게 키워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니. 얼른 아빠 손잡고 결혼식장 들어가야 은혜를 갚지. 이번 주에 남자 친구 데리고 와라.”

 

    이 무슨 길 걷다 새똥 맞는 소리인지. 앞서 벌어진 상황과 엄마가 한 말이 전부 충격적이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한동안 엄마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봤다. 일단 아빠가 몸이 아프다고 해서 식사자리에서 보인 행동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를 박박 가는 통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잘 몰랐고 밥맛이 떨어져서 소화가 안 되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도 참고 같이 밥을 먹어준 것은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를 뛰어넘어버렸다. 아빠가 식탁에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왜 내가 결혼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내 결혼과 아빠의 행동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 방식으로 엄마를 이해하려 애썼다. 아빠의 만행을 멈추기 위해서는 어른으로써 행동할 집안 행사가 있어야 하는데 가족 이벤트가 내 결혼밖에 없으니 그런 것 아닐까라고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빠의 행동이 괴로우면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문제를 풀어야지 왜 내가 결혼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생각한 게 정답이 아닐 수 있으니 다시 생각해봤다. 아빠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안정적으로 독립했으면 좋겠어서 결혼을 하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혼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 본인도 잘 알지 않은가.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결혼을 해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산단 말인가.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아빠가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의무를 다했으니 나도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애 낳고 재생산에 복무하는 딸의 의무를 다하라는 뜻이라고 말이다. 뮬란이 도대체 몇 년 전에 나온 만화영화인데 같은 문제로 씨름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엄마의 말에 짜증과 분노로 가득 차 어떻게 대답하면 좋은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일전에 하도 남자를 만나라고 난리를 부리는 통에 내 애인(1년째 만나고 있는 여성 애인)을 성별만 숨기고 사귀는 중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득달같이 얼른 그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결혼하라고 말했다. 내 결혼 비용은 엄마가 대준다고 하면서 전세방에서 아주 작게 시작하라고 말이다. 독이 바짝 올랐다. 아주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가 뭐야. 우리는 월세 살아야 해. 월세가 뭐야. 반지하 살아야 할 걸?”

    “? 형편이 많이 안 좋아?”

 

    애인의 상황을 이야기 했다. 집에서 가장’(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살고 있는 그대로 말이다. 아무리 내 애인이 남자였어도 엄마 눈에는 안찼을 것이라는 점을 나는 이전부터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부모님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이 불가능한 것처럼 애인도 가족들에게서 독립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내 입장에서는 동일선상이었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나를 결혼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지만 애인은 거꾸로 본가를 부양하고 있으니 결혼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애인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말하는데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운 티를 안내려고 설거지만 박박 했다. 성화였던 엄마가 조용해져서 아이고, 이를 어째만 반복했다. 나는 그러니까 결혼 못해. 알겠지?’ 라고 쐐기를 박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 다음날이 되었다. 출근해서 하루를 꼬박 일하고 퇴근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엄마가 가족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나를 소환했다. 집에 일찍 들어와 차 한 잔 좀 하자는 것이었다. 평소 이런 말투로 말한 적이 없었다. 집에서 차를 마시기는 무슨, 서로 물을 떠다 마시는지도 모르고 사는데 말이다. 아이가 사고를 쳤을 때 선생님이 학부모를 소환하는 그런 형국이었다. 퇴근하기 너무 싫어졌다. 무슨 말을 할지 너무도 뻔하게 보였다. 연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게다가 1231일과 11일은 회사 휴무여서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했다. 쉴 시간이 주어졌는데 쉴 곳이 없었다.

 

    퇴근하고 곧장 도서관으로 갔다. 꼭대기 층에 있는 넓고 편안한 쇼파에 누워 아빠와 동생이 저녁 약속 있다고 카톡하는 것을 지켜봤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배가 안 고팠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게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했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갔다. 휴일은 이틀, 오늘부터 하면 23일이었다. 언제든 마주해야 할 엄마였다. 매를 맞을 거면 일찍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 좋았다. 집에 도착해 엄마와 마주쳤다. 역시나, 그 사람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누가 결혼한대?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어, 엄마. 연애만 할 거야.”

    “남녀 관계는 모르는 거야. 오래 만나면 정들어서 (헤어지기) 힘들어. 그러니까 엄마는 네가 그 남자 안 만났으면 좋겠어.”


    남자와 여자가 오래 사귀면 결혼할 생각이 없어도 큰 일이 난다며 학을 떼는 엄마를 보고 있으니 정말 웃기면서도 답답했다. 남녀가 같이 있으면 무엇이 큰일이 나는 것일까. 아기가 생기니 큰일인 걸까?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랑 아기를 가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것일까? 고작 얼마 전에는 코가 뒤통수에 붙어있어도 내가 좋다는 사람이면 다 좋다더니만, 역시나 절대 아니었다. 젠더 문제는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난리가 났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8시 드라마는 뭐 하러 보는지, 사는 게 드라마인데 말이다.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 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엄마한테 순순히 알았어, 그 남자 안 만날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애인은 남자가 아닌데 뭐 어때.’ 이런 교묘하고도 편한 데로 가져다 붙인 핑계가 생각난 것이다. 물론 애인과 헤어질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애인이 남자가 아닌데 왜 내가 헤어져야 한단 말인가. 엄마에게 애인이라고 소개할 때는 남자라고 착각하게 해놓고 이제와서 남자가 아니니 계속 만나겠다고 정당화하다니 내 스스로가 너무나 이중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엄마에게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애인과 나는 만나면 안 되는 관계인데 고집을 부려 만나고 있는 것일까? 만나면 안 되는 관계라니 이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 혹은 조선시대란 말인가. 내가 2019년 한국을 자유, 평등으로 향해 가는 진보적인 사회라고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과 나의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젠더가 두 사람이 만나는데 장벽이 되는 현실이 문제라는 점이 더욱 뼈저리게 다가왔다. 돈이 없으면 사랑도 못하고 남녀가 아니면 가족이 되지 못하는 차가운 현실에 내동댕이쳐졌다. 속수무책으로 어쩔 수 없다고 수긍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그렇지 않게 만드는 게 더 인간적이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사람들과의 마음과 관계는 장벽이 있든 없든 지속될 것은 지속됐고 끝날 것은 끝났다. 왜 주변에서 괴롭혀 더욱 지옥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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