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포도 이야기
- 예민한 알바생: 조이(연재 종료)
- 2019. 12. 19. 14:47
살면서 딱 두 번 들은 이야기
살면서 딱 두 번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엄마가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회사 동료를 두고, “그 사람은 자기 아들 팬티까지도 다려 입혔데.”라며 결벽증과 신경증, 완벽주의가 있다는 듯이 그 동료를 묘사했을 때 처음 들었다. ‘아들의 팬티까지도 다려 입히는 엄마’라니. 너무나도 놀라운 것도 잠시,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지않아 이런 엄마 얘기를 또 듣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고 본인이 그러한 엄마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 장가가기 전까지 팬티까지 다 다려 입혔어.” 이런 말을 한 사람은 150cm 조금 넘어 보이는 왜소한 키에 깡마른, 그러나 나보다 기운이 좋으시고, 젊은 시절 공인중개사로 가장 역할을 한 현재로서는 80이 다 되어가는 여성이자 사장의 어머니였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이야기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자신이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니 노동자인 나도 부지런히 일하라는 의미인 걸까? 그렇다면 나는 수당을 받는 노동자가 아니고 ‘시급’을 받는 노동자인데 왜 나한테 그런 말씀을 하실까 싶다. 혹은 내 아들을 그렇게 끔찍이도 귀하게 키웠으니 귀한 줄 알고 잘 대접하라는 의미인 걸까? 그렇다면 나는 매장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음료를 제조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노동자이지 당신 아들의 비서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밀려올 뿐이다. 어쩌면 그 말을 내뱉은 그 자신도 그 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간에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있던 내게 그 말은 ‘손 놀리지 말고 일하라’는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포도 직판장
이 동네는 포도가 익을 늦여름이 되면 국도에 인접한 포도농장마다 포도 직판장을 차린다. 이 광경을 마주한 할머니는 넓은 땅을 왜 주차장으로만 쓰냐며 포도 직판장을 차려 장사를 하고 싶어 하셨다. 아, 이제 멍 때리며 여유 부리는 일은 끝인 건가.
“내가 집도 팔고 땅도 팔았는데 포도 하나 못 팔까!”
이때까지는 모르셨겠지, 직판장을 차리기만 하면 손님이 몰리고 돈이 벌릴 줄 아셨겠지.
할머니는 포도 농사를 짓지 않으신다. 그 방법을 모르니 짓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아들과 안쪽 마을에서 포도밭 하나를 통째로 구매하였다. 나는 알바 다니며 틈틈이 시간을 쪼개고, 엄마는 밤 일 다니며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힘겹게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큰돈을 가지고 농사 다 지어놓은 포도밭을 척척 사는 그들을 보며 묘한 감정이 일었다.
“길가 포도는 먹기가 싫어. 여기 차들이 얼마나 많이 다니는데 다 그 먼지 뒤집어쓴 거잖아.”
이 말을 듣고서부터 감정이 분명해졌다. 그들은 이 길가에 자리를 잡아 가게를 운영하고, 국도에 인접한 토지를 매입하여 지가 상승을 노렸으면서 마치 농산물은 굉장한 청정구역에서 재배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물론 전혀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그러하듯 나 역시 농약 친 과일보다 무농약 과일이 더 좋으니까. 그런데 이건 약간 다른 문제다. 십 년 전, 아니 오 년 전만 하여도 이 동네에는 인도가 드물었는데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고 그 속력도 빠르지 않아 사람이 차도로 다녀도 많이 위험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에 IC가 개통되면서 안산공단이나 인천 등 다른 지역에 있던 공장들이 비교적 저렴한 이 동네로 옮겨오기 시작했고, 이 사장 가족도 그 틈바구니에 끼여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 동네 길가 포도가 오염되는 데 본인들도 한몫했으면서 그 결과를 두고서는 자신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양 말하는 그 뽄새가 너무나 불편했다. 그럼 뭐 이 동네 농부들은 길가에서 매연과 먼지를 뒤집어쓴 포도를 농사짓고 싶을까? 그런 포도를 팔고, 먹고 싶을까?
물론 이 동네에 들이닥친 개발 상황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여길수는 없겠지만, 지나가는 차량들이 만들어내는 오염물질과 본인들은 전혀 상관없다는 식의 그 태도가, 자신들에게 한없이 관대한 그들의 태도가 몹시 불쾌할 따름이었다.
할머니와 사장님은 농부들의 심정을 아실까. 물론 알 수 없고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포도를 상회에 내다 팔면 한 번에 많은 물량을 판매할 수 있지만, 운송비 떼고 경매 값 떼고 나면 잘 받아야 소비자가의 절반 정도나 될까. 때문에 덤으로 몇 송이 얹어줘가며 직판으로 파는 편이 훨씬 낫다. 하지만 봉투가 젖어서는 안 되는 포도는 비가 와도 못 따고, 저온 창고 등에 넣어 오래 보관하기도 힘든 과일이다. 때문에 오전에 따서 오후에 포장하고 저녁에 상회에 내보낼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지나가는 손님이 오면 직판을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아쉬우나 선택의 여지없이 상회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이러한 수확으로 생계를 꾸린다. 할머니는 이 돈이 없어도 생활을 넉넉하게 유지하고 계시면서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여성의 몸으로 가장 노릇을 하느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까, 평생 아껴가며 돈만 바라보던 게 몸에 익어 저 연세에도 돈을 좇는구나. 그렇게 한편으로는 그 노인의 생을 이해하여 안쓰럽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농부들의 직판 손님을 뺏어가는 것만 같아 괘씸하기도 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직판장을 하겠다고 나선 결과, 선별작업도 포장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 작업을 알려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사장 가족들을 썩 맘에 들어 하지 않았으면서 할머니의 일을 나의 일처럼 알려드리고 도와드렸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노동을 말로만 한없이 고마워했을 뿐이고, 정당한 대우는 내가 요구한 뒤에나 주어졌다. 또 한 번 내가 20대 여성 비정규직이 아닌 20대 남성 비정규직이라도 나의 노동에 대해 이러한 대우를 받았을지 의심하고 분노했다.
왜 때론 제목에서 이미 결말이 정해져있는 뻔한 스토리의 드라마인걸 알면서도 보게되는 때가 있지 않은가? 그저 연기자의 연기에 공감해가며 울고 웃고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기도 하고 간간이 현실에 대한 성찰도 해가며 말이다. 내게는 이 일이 꼭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상황을 또 마주했을 때 그 상황에 날 내어주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진정으로 나를 지키며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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