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직면의 어려움 (3)

    당시 나를 케어해 주었던 배우의 말처럼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의 삶인지는 알 수 없다. 연재를 늦추는 기간 동안 지금껏 그러한 삶을 상상해보려 노력했지만, 나는 아직껏 행복한 상태와 잘 견디는 상태 사이의 어떤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제껏 꾸준히 써온 바에 의하면 나의 삶은 견디고, 끌어안고, 수렴시키는 연습의 일환이었던 듯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넘어지고, 넘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느린 속도로 한 손에 흙을 그러쥔 채 일어난다. 한 손으로는 몸을 지탱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살아냄에 스스로 내려보는 진단이다. 진단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직면하고자 하는 의지이므로, 나는 스스로의 삶을 때때로 진단하고 이름 붙이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며 살 것이다. 반복과 추가, 나는 행복과 즐거움과 잘 견딤을 구분하지 못한다. 즐거운 상태가 오래 지속 되면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이것저것 끌어안고도 일상을 잘 살아낸다면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한동안은 그저 알 수 없는 채로 살게 될 것이다. 넘어짐과 일어남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흙을 길어 올리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넘어져 있는 기간 동안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이 보다 많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망설임 없이 빚졌다. 남은 시간 동안 어둠을 그저 견딜 것인지, 그 말대로 어둠 안에서 무엇이든 되어보는 놀이를 할지는 스스로가 선택하면 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눈을 감고 다녀보기로 했다.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애써 노려보지 않기로 했다.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고,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는 훨씬 더 편안했다. 누구의 손이든 잡고, 누구든 도울 준비가 되었다.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서서 복도에 다시 선 직후부터, 누군가를 도울 기회들이 물밀 듯이 찾아왔다. 처음 마주친 사람은 숙소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깜빡 길을 잃어서 본인이 어디 쯤에 있는지를 잘 모르게 된 와중에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여기는 2층이에요. 숙소는 3층에 있어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1층부터 3층까지의 계단이 총 34개라는 것, 여성 숙소는 3층 왼쪽 벽의 세 번째 문이라는 것 등을 알려주었다. 계단을 오를 때는 벽보다 난간을 잡고 걸으면 훨씬 층계를 알기 쉽다는 것, 예기치 못한 부딪힘에서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한 손을 얼굴 앞에 세우고 걸으면 좋다는 것, 보통 사람들이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쪽 벽을 많이 짚고 걸어 다니는 것 같으니 부딪힘을 피하고 싶을 땐 왼쪽 벽을 짚고 걸으면 좋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가 침대를 찾고 몸을 누일 때까지 함께 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고마움을 전달해주었다. 내 손을 꼭 쥐고 놓지 않는 것, 적당히 몸을 붙여올 때 전해지는 압력, 목소리를 통해서. 그가 망설임 없이 나를 믿고 도움을 받아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어둠 바깥에서 만났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기획된 어둠 속에서의 규칙이구나. 돌려받을 대상이 누군지 모르니 도움 이후에 무엇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맘 편히 돕게 되는 것, 내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 없이도 기꺼이 그렇게 되는 것이 말이야. 누군가 마음속에서 말을 거는 것처럼 규칙을 체화해 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통상보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밤 내내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고, 그 중 몇을 돕고 어느 때에는 도움을 받았다. 좋은 사람 되기는 불편하고, 시간과 체력을 소모 시켰다. 그러나 이타적 행동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운 충족감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을 감수하려는 나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인상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선한 영향을 행사함으로써 정말로, 겉으로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안쪽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때의 즐거움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때 느껴지는 충족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평하게 그 어둠 속에서 가져갔을 것이다.

    몇 가지 경험이 이러한 예상의 토대가 되어주었다. 당시의 나는 가벼운 어깨 부상이 낫지 않은 채로 공연에 참여 중이었다. 그 때문에 팔을 들게 되는 여러 자세가 많이 불편했다. 조금만 팔을 써도 어깨 쪽 힘줄에 염증이 생긴 것처럼 시큰거리고 열감이 올랐다. 벽을 짚거나, 앞사람의 어깨를 짚고 다 같이 걸어가는 체험 등을 할 때 자꾸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미끄러졌다. 자꾸 미끄러지고 떨어지는 팔을 앞사람의 어깨에 고쳐 올리면 금방 다시 미끄러지기가 일쑤고, 통증과 열감이 계속되니 여간 불편하고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앞사람의 어깨를 짚고 함께 걸어가는 체험 중, 팔이 또 앞사람의 어깨에서 미끄러지려고 하자 앞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내 손을 잡아 본인의 어깨에 고정해 주었다. 그도 앞사람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있으니 양손을 다 들고 걷게 되는 셈이다. 아마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도 팔이 아팠을 것이다. 내 손을 쥐기 위해 올린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곧 느껴졌지만, 그는 체험을 진행하는 10여 분 동안 계속 자신의 손과 어깨로 내 팔을 지탱해 주었다. 나는 어깨의 힘을 조금 풀고 기대면서, 그의 차가워진 손끝을 끌어당겨 꼭 쥐었다. 그 행동으로 고마운 마음이 어느 정도라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작다면 작을 수도 있고, 일시적이라면 한없이 일시적인 이런 도움들을 크게 기억하고 인상 깊어 하면서, 지금껏 왜 오롯이 혼자 자라났다고 여겼는지 의구심이 일었다. 물론 그간 살아낸 삶을 갑자기 온실 속의 삶처럼 인식하게 된 것은 아니며 완전한 수용과 이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삶의 큰 궤적 안에는 여전히-그리고 영원히-홀로 있겠지만, 그래도 많은 주변인들이 나를 도우려 애쓰고 행복을 빌고 있다는 것만큼은 뼈저리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손잡는 이보다 더 나를 사랑하고 더 많이 도왔다.

    어떤 이는 아직도 만남 때마다 함께 읽으면 좋을 만한 책, 들려주고 싶은 음반을 챙겨 나온다. 또 다른 사람은 내 지갑 안쪽에 ‘당신이 제일 사랑스러워’라고 글귀를 새겨주었다. 누군가는 가방에 자수를 놓아주었다. 내 주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나의 행복을 빌고 있다. 그들과의 관계와 그 관계 안에서의 주고받음이 나를 자라도록 독려했음을 인식했다. 그러고 나자 그들이 그리워졌다.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을 약속하고 싶어졌다. 그들에 나에게 만들어주는 관계, 그 관계 안에서의 자리가 나의 이유였다. 지금보다 더 선해지며, 더 짊어지며 작업해야 할 이유.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직면해야 할 것은 내 안에만 있지 않았다. 바깥에도 응시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경험을 어둠 밖으로 가져가고 싶어졌다. 마침 내가 기록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모임의 속성을 강조하는 형태를 띄고 있는 와중이니까, 나만 이 경험을 어둠 밖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고민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연히, 그저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찾아 들어 온 공간에서 나는 이전보다 좀 더 단단해졌다. 하루가 지나고 어둠 속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주변인들에게 연락해서 고맙다고, 너를 생각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바깥의 하루는 어둠 안쪽의 하루보다 훨씬 더 짧고 무던하므로, 사람들은 내가 왜 연락해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몰랐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둠 안에서 감각하고, 약해지고, 그 끝에서 더욱 단단해졌던 경험을 가져가려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시도가 많은 행동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를 마친 지도 2주가 지났으니 이것은 지난 반년에 대한 소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만든 것은 여자들의 모임이고, 참여한 모두에게 ‘다른 참여자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고민한 뒤 그것을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하고, 통상보다 더 많은 양의 선의를 가지고 와주었다. 나를 믿고 걱정하는 마음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1박 2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내 손에는 약 900여 장의 사진이 남았다. 사진이 남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자들이 프로젝트 안에서 무언가를 얻어갔다는 점이다. 참여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채식하겠다는 결심, 친구, 작업에 대한 영감, 콤플렉스가 콤플렉스로 여겨지지 않게 되는 경험,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 탈 브라 등등을 얻었다는 후기를 전해 주었다. 참여한 사람들이 삶의 태도를 아주 조금이라도 바꾸었다면, 그러기 위한 씨앗을 심었다면, 이 안에서 무언가를 얻어갔다면 모임은 그야말로 그만의 가치를 증명한 셈이다.

    그동안 이것저것을 느끼고 실험하느라 나는 많이 지치고 예민해졌다. 이 소진됨이 온전히 갈무리되고 행동할 에너지가 차오르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사진들을 보게 될 것이다. 조금 긴 휴식을 가진 후 성급하지 않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있었던 일들, 사람들, 사진에 대해 아카이빙 하고 싶다. 그 안에 담긴 경험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더 단단한 태도로 고민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우선은 후련하다. 첫 모음이 이만큼 잘 마쳐졌으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지만, 오만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번의 행동으로 직면하게 된 것은 나의 약함이다. 나는 생각보다 더 자주 넘어지고, 자주 예민해지고, 자주 스스로에게 시달린다. 그래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자꾸만 사람들을 모으고, 그 사람들을 돕고, 그 사람들에게 도움받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는 더 즐겁게, 덜 소진하면서 함께 하는 직면의 경험을 이어가고 싶다. 나를 구하고, 타인을 구하기 위한 모임을 계속해서 만들며 살고 싶다. 이 일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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