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직면의 어려움 (2)
- 온전히 생존기: 김경진
- 2019. 12. 16. 16:41
분명히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작업인데도 나는 이 장소에서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함께 참여하는 다른 참여자들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형 무대가 되는 건물 한 동 전체가 새까만 암전이었기 때문이다. 씻을 때도, 먹을 때도, 침대에 누울 때도, 복도를 걸을 때도, 준비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방에 들어갈 때도, 암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공간은 기획된 어둠으로 채워져 있었다. 기획된 어둠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둠보다 훨씬 더 짙었다. 이 어둠 속에 24시간 있으며 순서대로 정해진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했다.
제일 먼저 이름과 소리를 정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식별하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 고유의 소리를 정하고, 고유의 소리를 내며 본인의 위치를 알렸다. 각기 다른 소리들을 들으며 알았다. 이 어둠 안에 스무 명 내외의 사람들이 있다. 소리가 뭉쳐지면 무엇하나 명확하게 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어둠 속에서 예민해진 청각으로는 사람들이 내는 개별적인 소리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다음 느낀 것은 자세의 변화였다. 걸을 일이 생길 때는 한 손을 얼굴 앞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벽을 짚으며 천천히 공간을 더듬어 나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얼굴이 어딘가에 부딪힐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자세로 걸어 다니게 되었다.
나는 내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다. 그것이 두려웠다. 모든 행동에 너무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정신적인 소모가 커지는 것을 느꼈다. 첫날의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침대 안에만 있고 싶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수행하려면 침대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배우들은 참여자들에게 차를 주고, 몸을 움직이게 하고, 소리를 듣게 하고, 손을 잡게 하고, 대화를 나누게 했다. 나는 최대한 열심히 차를 맛보고, 몸을 움직이고,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눴다.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동시에 아주 힘든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계속 긴장하다 보니 여러 가지 감각들이 자꾸 예민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느 순간부터는 손만 잡아도 그게 누구의 손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손은 다 모양과 크기와 두께가 다르고 촉감이 달랐다. 온도가 다르고, 손잡을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좁혀졌을 때 느껴지는 체취가 달랐다. 손을 뻗는 방식, 내 손을 먼저 주었을 때 손을 마주 쥐는 방식도 다들 달랐다.
사람들은 익숙하고 안심되는 환경에서 긴장을 풀고 쉰다.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갈수록 긴장하고 예민해지는 것은 내가 그곳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이곳이 안전하고, 위험한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여봐도 긴장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임에도 그랬다. 완벽하게 시야에 들어찬 어둠은 그만큼 지배적이었다. 밤의 골목길을 걸으면 자연스럽게 신경이 곤두서는 것처럼, 감각은 어둠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점점 더 예민해졌다. 사람들의 소리, 사람들과의 부딪힘이 자꾸만 그것을 부추겼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급격히 쇠약해졌다. 그런 상태 변화를 스스로 조절할 수도 없었다. 맥박이 빨라지는구나. 두통이 생기고 있구나. 현기증이 오고 있구나. 그런 것들이 느껴져도 도움을 청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게 되자 나는 복도에 쓰러지게 되었다. 온 방향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어두운 복도였다. 나는 쓰러진 채로도 그 소리들을 계속 듣고만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나는 약했다. 약하기 때문에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다. 긴장으로부터,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돕게 될 것입니다. 혼자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그랬다. 어둠 속에서는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도움을 받게 되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복도에 쓰러진 덕분에 나는 곧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여기 누구 쓰러졌어요. 누가 쓰러져있어요. 나를 발견한 다른 참여자들이 스태프들에게 위치를 알리기 위해 주변에서 계속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는 다급했고, 그 다급함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때부터 다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사람들이 괜찮냐고 자꾸 물어보고 있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괜찮다고 대답하고 나자 누군가 나의 손을 쥐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상태를 묻고, 손을 잡고 침대로 데려가 눕혀주었다. 물과, 두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약을 주었다. 나는 누군가 내 몸을 눕히는 대로 눕고, 주는 물과 약을 얌전히 받아서 먹었다. 누군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둠 속에선 원래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정말 그랬다.
나 외의 다른 몇 명의 사람들도 긴장하고 아파했다. 순전히 어둠 때문이었다. 몸과 마음이 아파진 몇 명의 참여자들은 참여를 중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진 사람들 중의 다수는 감각적으로 직면하게 된 자신의 약함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좀 더 견뎌보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여기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눕혀 준 몸을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지친 상태로, 비로소 감각을 통해 만나게 된 나의 약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강한 줄로만 알았다. 약한 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싫었다. 네가 뭘 알아? 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혼자서 이것저것 해냈으니까. 내 삶의 서사를 믿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조금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다. 괴로움이 지척에 널렸는데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욕망하는 바를 알고 실행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으니까. 하겠다고 입으로 내뱉은 일은 언젠가 반드시 해냈고, 그 와중에 타인을 도왔으니까. 나는 나의 트로피였다. 나의 자랑거리였다. 사실 왜 그렇게까지 완고하고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는지를 알고 있다. 나는 몇 몇의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고 있었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가지기 두렵고 미운 모습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다 보니 이렇게 살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들처럼 추하게 살아남고 싶지 않았다. 멋진 사람으로 자라서, 나를 자결시키려 했던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네가 나를 하찮게 대했지만 사실 나는 그렇지 않다. 네가 나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살아남아서 이렇게 멋지게 자랐다. 내가 너보다 더 크다. 삶 전반이 복수심 섞인 인정 투쟁이 되어버린 셈이다. 사랑하며 살겠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생존의 결정적인 지점에서는 언제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 빠져있었다. 미움과 두려움만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은데도, 나는 오래 해 온 인정 투쟁에 관성처럼 삶을 맡기고 있었다.내 손에서 나온 기획들이 자꾸 본의 아니게 대의를 말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의 멋짐을 증명하려는 오랜 버릇 때문에, 입으로는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어줍잖은 대의를 끼워 넣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구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언뜻 멋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최근에 불명확하게나마 느끼던 이러한 지점들을, 나는 애써 더 생각하지 않고 떨쳐냈었다. 삶의 태도가 바뀌는 순간은 언제나 두렵고 외로우니까.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생각하고 감각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혼자가 되고, 마음먹지 않아도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어둠 속이었으니까. 이제 그런 식으로 스스로의 못남을 외면하며 살고 싶지 않아졌다. 외면할수록 본질적이지 않아졌고, 본질적이지 않아질수록 거짓말을 하게 되니까.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내 약한 본질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 외로워졌으니까. 내가 사람들을 모으려는 이유가 뭐지?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나는 이것을 스스로에게 묻는 대신,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누워있는 동안 옆자리를 계속 지켜주었던 배우 한 명이 있었다. 그는 간식 삼아 셀러리와 당근을 씹어먹으며, 조곤조곤하고 담담한 어투로 기꺼이 대화를 나누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이 공연의 이유를 물었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이 서로를 돕게 만들고, 약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는 모임의 힘에 대해서 말했다. 모일 때 위대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도움을 주고받을 때 생겨나는 선함에 대해서. 그 어둠 속은 선의의 시험장이었다. 모임으로써 외로움을 인정하고, 선의를 갖고 타인을 도움으로써-그리고 그 도움이 필요한 타인이 누군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음으로써-스스로 위대해지고, 마침내는 벗어남으로써 그 경험을 바깥의 다른 모임으로 가져가야 하는.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해서 지금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은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모임이 성립될 때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가 모임에 기반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하나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밤 산책을 나섰을 때 행복했다고. 그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보거나 생각하면 그때의 풍경이 떠오르고, 그 풍경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그는 외로울 것이라고 했다. 함께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매일 감사함을 느낀다는 말에 나는 조금 웃었다. 다른 세상의 이상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 훗날,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가족을 찾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그저 웃어 넘기자, 어둠 속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자기가 가족이 되어주겠다는 이야기는 조금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 사람은 모임과 나눔에 아주 익숙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부러워졌다. 어둠 속에서는 혼자 있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나는 그처럼 잘 돕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때부터는 다시 일어나 사람들 속에 있어도 괴롭지 않았다.
(3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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