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봉준호의 <기생충>: 한국 (남성)영화라는 장르의 반복

뭐지, 이 온도 차?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를 보지 않게 되었다. "한국 영화"라는 장르 하나가 생겨도 좋을 만큼 한국 영화의 소재 및 서사는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 영화인이 배제된 소위 '알탕 영화'들이 매번 다른 제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환경 탓도 있겠지만, 정형화된 남성 중심 서사의 시장 공급에 문제가 될 만큼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남성 중심 서사/여성혐오 영화에 대한 폐기를 주장하는 비판 여론이 강하게 일면서, 한국 영화판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조금씩 시장을 넓혀가면서, 지난해 하반기에는 <벌새>, <아워바디>, <메기>, <82년생 김지영> 등의 다양한 여성 서사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벌새>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45관왕을 휩쓰는 쾌거를 이루었고, 그야말로 "국가적 위상"을 높인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벌새>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주목도는 <기생충>과 확연히 달랐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기생충>에게 대한 찬사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한국 영화사의 유의미한 행보, 세계가 인정한 한국 영화라는 국가적 자부심에 가득 찬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온도 차는 뭘까. 1세계의 인정에 목 마른 이들은 왜 <벌새>의 쾌거로는 "국가적 위상"을 드높였다며 들썩이지 않는 걸까. 작품에 투자된 자본(시장)의 차이 때문일까. 그렇다면 왜 이전에 김기덕 감독에게는 엄청난 주목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걸까. 이런 의문 속에 지난 주말 뒤늦게 <기생충>을 보게 됐다.

 

혐오의 재생산, 대상화된 이미지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에서 생활하는 일가족의 이야기다. 네 식구는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피자 박스를 접어 생계를 이어가던 중, 친구의 소개로 아들 기우가 부잣집 과외를 시작하게 되면서 가족 사기극을 벌이게 된다. 영화에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상층 계급에 속하는 박 사장 가족의 집은 높은 지대에 있으며, 하층 계급에 속하는 기택 가족의 집은 낮은 지대에서도 반지하에 있다. , 박 사장 가족의 집 내에서도 지상에는 박 사장 가족이, 지하에는 문광 부부가 자리하고 있다. 계급 위치를 일차원적으로 옮긴 이 구도의 고루함은 차치하고, 문제는 이러한 구도를 통해 하층 계급에 속하는 이들을 '기생충'으로 묘사한다는 점에 있다.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하층 계급)가 박 사장(상류 계급)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계급 격차에 의한 불평등의 심화가 주된 화두인 한국 사회에서 하층 계급을 '기생충'으로 호출하는 일은 사실상 혐오 표현에 가깝다. 그들의 계급성을 묘사하기 위해 동원되는 또 다른 이미지는 "냄새". 신분을 숨긴 채 박 사장의 집에 취업한 이들은 능숙하게 상류 계급을 연기했지만,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반지하 특유의 냄새까지 가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냄새" 또한 하층 계급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기 보단, 그들의 '수치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영화 말미에 박 사장을 살해한 기택의 행위를 상층 계급에 대한 저항, 계급상승이 불가한 사회의 불평등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하층 계급을 묘사하기 위해 동원하는 이미지들은 이미 기존에 하층 계급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됐던 "대상화"된 이미지들이다. 이 영화에서 "계급"은 주된 주제라기보다, 장르의 재미를 부각하기 위해 소모되는 장치에 불과하다. 모든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 창작물은 창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언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하층 계급은 더럽고 불결한 공간에 산다는 것? 하층 계급의 욕구도 상층 계급의 욕구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 애초에 이들을 상/하로 나누는 불평등한 사회의 "구조"는 어디로 갔는가? 단순히 이미지만을 빌려 차이와 차별의 구조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은 참신하다기 보단 흔해 빠진 이야기에 가깝지 않나.

 

또 하나의 남성 중심 서사일 뿐

 

    이 영화에서 가족 전체 계급의 상승과 하락을 나타내는 것은 '가부장'의 위치다. 박 사장 가족의 계급은 박 사장의 사회적 성공과 위치에 의존하고 있다. 기택의 경우, 벌이가 없을 때는 아무런 권위도 가지지 못하다가 박 사장의 운전기사로 일하게 되면서 점점 가부장으로서 존재감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박 사장 가족의 집에 일가족이 취업하면서 일시적인 계급 상승을 꿈 꾼 기택 가족과 달리, 문광 부부의 경우 기존에 가정부로 일하고 있던 문광의 경제활동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에 해당하는 근세의 거처가 여전히 어두운 지하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아버지와 딸/아들이 관계 맺는 방식 또한 기존의 가부장제 질서와 다르지 않다. 박 사장은 아들 다송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딸 다혜와는 대화하는 장면조차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기택은 살해 용의자가 되어 기약 없이 지하 벙커에서 숨어 살게 된 뒤 매일 밤 모스 부호를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은 엄마 충숙이 아닌 아들 기우다.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영화 속 여성들은 남성들과 비슷한 비중을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여성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력에 이야기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에 가깝다.) 오히려 남성 인물은 별다른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점차 이야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심인물이 된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여성 인물은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사라지고 어떤 의미 있는 대사도 하지 않는다. 사실 이 이야기의 내적 서사를 이끄는 것은 여성들이 아닌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 주요 사건 및 대사의 대부분이 남성 인물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은 그저 단순한 우연일까? 역시나 이런 서사의 전개방식과 구도를 가진 영화를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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