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좌충우돌하는 공공장소 애정표현3
- 어쩌다 퀴어: 무지
- 2020. 4. 6. 11:54
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을 멈추지 않았다. 애인의 볼과 머리카락에 뽀뽀하고 허리에 손을 두르고 포옹을 했다. 점점 면역이 생기는지 애인도 내 스킨십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지 두려움이 들 때마다 나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성애 커플과 우리는 다른 점이 없는데 왜 내가 행동을 삼가야 한단 말인가. 애정표현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은 혐오자들에게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숨고 싶지 않았다. 이성애 커플들이 그렇듯 우리의 사랑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정한 후에 나온 것이었다. 담금질 한 후 얻은 확신이었기에 굳건할 수 있었다. 여성과 사랑에 빠졌던 초기 나는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성애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혼란스러웠고 따라서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말해야할지 잘 몰랐다. 내가 왜 여성을 사랑하게 됐는지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 헤맸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남성을 두려워하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아버지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남성 대신 여성을 사랑하게 된 게 아닐까? 라면서 말이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기에 ‘정상’이 아니고 따라서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도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비정상이라고는 하지만 비참하고 괴로웠던 건 아니었다. ‘그래, 나 정상 아니야, 그런데 뭐 어쩔래?’ 라는 자조와 함께 아버지로 대표되는 정상의 세계에 침을 뱉는 속시원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여성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비정상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나, 정상(이성애)의 세계에서 영원히 추방된 나, 결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나. 이런 식으로 내 자신을 바라봤다. 동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상의 울타리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울타리 안은 너무도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기에 질투가 나고 시샘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동성을 사랑하지 않는 척하며 남성과 연애를 해서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버지의 세계인 그 울타리 안에서 폭력을 당하며 추악한 실상을 엿봤으니 말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있으니 따뜻하고 행복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썩은 부분이 있고 괴로움과 절망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에 관한 상처 때문에 레즈비언이 된 거라면 남성들과는 어떻게 사랑을 했던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 첫 애인은 남성이었고 그 후로도 몇몇 남성을 사랑했던 것이다. 남성을 사랑할 때는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성을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그늘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했으면서 말이다. 아버지가 준 상처는 사랑과 상관없이 항상 갖고 있었다. 남성을 사랑할 때는 상처와 사랑을 연결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여성을 사랑하자 아버지 때문에 내가 비정상이 됐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과오류였다.
엉터리 같은 생각의 고리들이 끊어졌다. 내가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와 관련된 상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내가 있고, 내가 하는 ‘사랑들’은 각각 그저 ‘사랑’일 뿐이었다. 머릿속이 환해지고 속이 뻥 뚫렸다. 마음의 상처가 있다고 해서 내 자신을 비정상으로 볼 이유가 없었다. 흔한 말로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비정상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사람을 ‘정상,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는가도 의문이었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나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비정상 취급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편견이 깨지니 너무도 기뻤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를 사랑하든 상대방의 고유성에 매료되어 존재가 뒤섞이는 경험은 그 어떤 잣대로도 ‘비정상’이라고 취급받을 수 없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이유를 논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찾는 것은 폭력적인 일이었다. 그 이유가 없었다면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사랑을 볼품없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하필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 이유를 찾아내기란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내 사랑을 모가 나고 비뚤어진 이상한 마음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해방을 맛보고서야 그동안 얼마나 억압되어있었는지를 알게 됐다. 울타리로 나뉜 세계인 줄 알았는데 울타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성애만이 정상이며 그 밖의 다른 사랑은 비정상이다’라는 편견이 안과 밖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편견을 걷어내자 평등한 세계가 있었다. 이상하게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나도 그저 사랑을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내 자신이 오롯이 받아들여지는 감격이었다. 결혼해서 축하받는 친구들이 더 이상 질투 나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결혼하고 싶으면 나도 하면 되니 말이다.
다른 이들의 사랑이 아름다운만큼 내 사랑도 아름답고 찬란한 사랑이라고 진심으로 여기게 되자 숨기지 못하고 공공장소에서 흘러나온다 해도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 정도가 아닌 한)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인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은 분명 무서웠다. 어떤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 두려움이 ‘실재하는’ 두려움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허깨비’인지 가늠하려 애썼다. 아무리 폭력을 당하는 상상이 된다고 하지만 애인과 내가 실제로 누군가에게 당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행인들의 최대 반응은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 시선에는 레즈비언 커플은 비정상적이며 그 자체로 눈에 띠고 혐오감을 준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나도 벗어나기 힘들었던 그 편견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공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테러를 당한다면 우리는 무고하다고 피력할 자신이 있었다. 레즈비언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을 했기에 그런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애정표현을 하는 다른 이성애 커플들을 보고도 전부 폭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필 것이었다. 이성애 커플은 괜찮지만 우리는 안 된다면 분명한 차별이니 말이다. 혐오의 논리로 우리를 폭행했다는 뜻이기에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그만한 벌을 받게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정당성을 가진 나에게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었다. 공공장소에서 눈이 마주친 행인들과 눈싸움을 하게 된 건 이때부터였다.
부모님에게 아웃팅 혹은 커밍아웃 하는 문제도 같았다. 부모님과 의견이 부딪쳐 도저히 같이 지낼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자라고 있었다. 이 모습이 나니까 말이다. 성적 지향을 인식하고 마음을 부정하고 그 후에 긍정하는 과정을 부모님과 함께 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들에게는 새로운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자식관계라도 모든 것을 시시각각 공유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항상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으니 얼마정도는 힘든 시기를 거치겠지만 결국에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시지 않을까 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 있었다. 우리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내치고 거부하는 것까지는 안 하시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니 말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싶은 열망에 타올랐다. 모든 사람들이 울타리를 걷어내고 안과 밖의 구분을 없애면 어떨까. 정상의 사랑과 비정상의 사랑을 나누지 않는 사회, 사랑하는 이들은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이곳은 성별에 따른 의무도 없고 가부장 권력도 없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을까봐 관계를 숨겨야 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고 축하받는다면 동성을 사랑한다고 부모님과 갈등할 일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울타리가 발생해 소수자를 만들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의 불완전함을 걱정하는 것은 그 세계가 온 다음에 할 일이다. 이 세계가 빨리 오기를 재촉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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