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좌충우돌하는 공공장소 애정표현2

   카페에 가면 애인과 나는 묘한 공방전을 시작한다. 옆자리에 앉으려는 나를 피해 애인은 건너편에 앉는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소파 옆자리를 퉁퉁 치며 ‘여기 앉아요, 여기’ 라고 말하지만 애인은 그런 나를 무시한다. 내가 일어나서 애인 옆으로 옮겨가면 반대편으로 도망간다. 옆에 앉기를 격렬하게 거부할 때마다 나는 다른 테이블의 커플을 가리키며 보라고 했다. 나란히 앉아 한 몸으로 얽혀 서로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고 있는 이성애 커플들을 말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러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그들을 불편해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심통이 잔뜩 나서 ‘왜 우리는 안돼요?’ 라고 포효했다. 카페뿐만 아니라 식당, 공원 등 데이트 장소라는 분위기가 풍기는 모든 곳에서 그랬다.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표현은 우리가 옥신각신하는 몇 가지 중 하나였다.

    공공장소에서 하는 애정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눈살을 찌푸리며 본인도 삼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공공장소 애정표현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길거리를 비롯한 대중교통, 공원 등에서 허리를 두르거나 뽀뽀, 키스를 하는 수많은 이성애 커플들을 봐왔는데 나쁘지 않았다. 버스터미널에서 헤어지기 전 애틋하게 키스하는 사람들을 보면 덩달아 아련해졌고 그들이 예쁘게 보였다. 맨 살을 드러내고 스킨십 하는 장면을 본다면 거부감이나 혐오감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목격하지 못했다. 애정표현에 거침없는 만큼 다른 이들의 표현에도 관대했던 것이다. 

    우리가 ‘레즈비언’ 커플이어서 공공장소에서는 애정표현을 하면 안 된다고 애인에게 거부당할 때마다 나는 주변의 이성애 커플들을 가리켰다.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처럼 아무리 해도 애인을 설득할 수 없자 ‘우리가 할 수 없다면 이성애 커플도 안 돼!’ 라는 심술을 부렸다. 길에서 키스하는 이성애 커플을 보면 저들을 풍기문란으로 신고하겠다, 가서 훼방 놓겠다 억지를 부렸다. (그런 나를 애인이 말리면, 빙그르 웃으며 ‘그러니 우리도 키스해요’ 라고 말한 것은 ‘안’ 비밀이다.) 애인은 우리를 아는 사람이 볼 수 있으니 애정표현을 거부하는 거라고 말했다. 우리의 애정표현은 어쩔 수 없이 성적지향을 드러내니까 말이다. 아주 확실한 커밍아웃이자 아웃팅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두렵다고 했다.

    나 또한 애인이 왜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을 안 하는지(혹은 ‘못’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나라도 가까이에 있는 행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애인에게서 슬그머니 떨어진 적이 꽤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우리를 더럽게 보고 혐오하지 않을까 움츠러들었다. 금방이라도 욕을 하고 침을 뱉고 더 심하게는 주먹질이나 무언가를 던질 것 같았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짧은 순간, 그런 상상들이 스쳐지나가고 두려움에 몸이 얼어붙었다. 신경 쓰지 않는 척, 무섭지 않은 척 보란 듯이 더 애정표현을 했지만 내 스스로 두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인의 시선에 눌려 위축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 사이를, 내 사랑을 부정하는 것 같아 비참하고 속상했다. 애인에게 미안한 마음은 그보다 더 컸다. 애인은 오죽할까 싶었다. 밖에서 애정표현을 안 해줘서 내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미안하다며 오래전부터 재차 얘기 해왔다. 친구인 척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 익명의 대중들에게 있었다. 퀴어문화축제 때마다 마주하는 혐오세력의 거대한 증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여론들 등에서 누적된 것일까. 발원지는 알 수 없지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암묵적인 한국 사회분위기가 우리의 행동을 제재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는 사람에게 아웃팅 당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었다. 집과 회사가 같은 지역에 위치해서 가족들이나 회사 동료들을 마주칠 확률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집 앞 공원에서 포옹하려는 나를 피하면서 애인이 말했다.
 
    “부모님이 보시면 어떻게 하려고 해요? 부모님 아니어도 동네 주민들이 보고 ‘저 집 딸이 여자 끌어안고 있었다’ 라고 말하고 다닐 수도 있잖아요. 가족들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가족들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가족들 귀에 들어가면 당신은요?”
    “나야 그동안 수 없이 글로 썼으니까요.”
    “강제결혼? 병원? 그러니까 더욱 조심해야죠. 이웃들의 질타, 눈총 말이에요. 나는 부모님께 성적지향을 알릴 준비가 안 되어있어요.”

    부모님이 자신의 성적지향을 알게 되는 것이 왜 두려운지 애인과 더 깊이 있게 대화 나누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동시대 한국에서 태어나 비슷한 가정에서 ‘딸’로 성장해왔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제 짝(당연히 이성)을 만나 결혼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실 것이었다. 그래야 자식을 온전히 다 길렀다고, 독립을 시켰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부모의 책임이고 보람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특히 ‘딸’의 경우에는 험난한 사회로부터 든든하게 보호해 줄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딸이 여자를 사랑하는 건 그런 바람에 대한 배반이었다. (평범하면서도 보편적이지만 그만큼)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딸이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면 주변으로부터 질타를 받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다면 어느 부모든 마음이 무너질 것이었다. 아이의 사랑이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받지는 못할망정 거부당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인데 사회에서 ‘소수자’로 핍박받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알아주는 효녀로 소문난 내 애인은 이런 이유로 부모님이 마음 아프실 것을 걱정하는 듯했다. 추측이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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