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에서 ‘자기 자신인 사람’이 되기까지, <미스 아메리카나>_by 정연

    한 동안 테일러 스위프트의 <Only the young>만 들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질릴 때까지 듣는데 이번엔 이 노래였던 거다. 심장 박동처럼 쿵쿵 울리는 드럼 비트에 Only the young can run,하고 언뜻 알아들을 만큼만 어려운 후렴구가 마음에 들었다. 이전의 테일러 노래보다 낮게 읊조리는 느낌이네,하고 생각할 즈음 이분 남짓한 짧은 노래는 끝난다. 그들은 널 도울 수 없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시작이야. 오직 한 가지만 우릴 구할 수 있어. Only the young.

    노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다큐멘터리 <Miss Americana>를 보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대에 이미 그래미상을 거머쥘 만큼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팝가수지만, 그보다는 헐리우드의 수많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긴다는 종류의 가십거리로 더 익숙했다. ‘미국의 아이유’로 불린다는 여자 가수가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제 3세계 아시아 여성인 내게는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아주 가끔 먹잇거리로 등장했고, ‘노래는 좋은데 실제 연애 얘기를 공개하는 건 좀 별로다’, ‘무슨 거짓말을 했다가 카니예 웨스트랑 척을 졌다더라’ 정도의 이야기가 오갔다.

    다큐에선 테일러 본인도 자신이 소비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스물 아홉살이 된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젠 66사이즈가 자기 몸에 맞는 옷인 걸 안다고, 조금 뚱뚱해 보이는 사진이 찍히더라도 아파 보이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단다. 전엔 많이 운동하고 식사하며 관리한다고 말했지만 그때는 먹지 않았다고. 목소리와 함께 깡마른 팔다리를 한 20대 초반의 테일러 사진들이 교차된다.

    착한 아이(Good girl)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했던 그는 사회적, 정치적인 입장 표명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는 컨트리 가수들 사이에서의 암묵적인 규칙과도 같았고, 테일러 역시 문제될 만한 일은 모두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토크쇼에서 앳된 얼굴을 한 그는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건 20대 여자애의 사랑노래일 것’이라는 말도 한다. 성공한 백인 여성 연예인조차도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 지점은 놀라웠다. 테일러는 친절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미스 아메리카나’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고 여러 번 말한 것도 같은 의미였겠다.

    이야기는 카니예 웨스트와 테일러와의 악연을 보여주면서 감정적으로 고조된다. 2016년 카니예 웨스트의 디스곡 <Famous> 관련 통화 내용이 공개된 이후, 희대의 거짓말쟁이로 몰린 테일러는 일년 여간 두문불출하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최근엔 새로운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카니예를 비난하는 흐름이 거세졌다지만, 사건의 진실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테일러 스위프트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스타도 한 순간에 희롱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 남성 가수는 ‘테일러와 섹스할 수 있다, 내가 저 X을 유명하게 만들어줬으니까’ 같은 노래로 손쉽게 폭력을 행한다는 것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놀랍게도 21세기인 지금까지, 여성은 여전히 조롱의 대상이 되고 피해자가 된다.

https://youtu.be/lVk5_fVOdRU

    어두운 시간을 지나 온 테일러는 단단해졌다. 2억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을 통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기도 하고, 시상식 자리에서 LGBT 평등법 청원 서명을 독려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작 The Man에서는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것에 지쳤다, 내가 남자였어도 그런 일을 겪었겠냐’고 묻는다.

    그는 이제서야 입마개를 벗은 기분이라고, 입술에 붙은 테이프를 영원히 떼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누구나 좋아하는 여가수’에서 ‘자기 자신인 사람’으로 나아갔다. 행동과 발언을 끊임없이 검열하고 사과하고, 불편한 의견은 내비치지 않는 나부터도 자기 자신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해내자고. only the young can run이라고, 같이 달리자고. 


http://sagomungchi.creatorlink.net/MOVIE--THINKING


댓글(1)

  • 조이
    2020.04.22 15:30

    <Only the young>을 BGM으로 깔고 글을 읽었는데 정말 좋네요. 단단해진 테일러의 모습에서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추위가 물러가면 이 음악 들으면서 달리기 좀 해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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