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by 이소


   타인으로 지탱하는 삶


   마츠코는 언제나 타인의 구원이란 환상 속에서 살았다.

   마츠코는 어렸을 적 몸이 아픈 여동생에게 각별한 애정을 주는 아버지 밑에서 애정에 대한 결핍을 느끼며 자란다. 아버지의 미소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좌절하며 한편으론 여동생에 대한 증오심도 키워간다.

   중학교 교사가 되어서 학생의 도난 사건에 휘말리며 마츠코의 일생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학생의 잘못을 덮어주기 위해 자신이 돈을 훔쳤다며 가게 주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는 모든 사건이 가게 주인의 오해였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함께 거짓말을 계획했던 한 선생의 배신으로 마츠코에게 모든 잘못이 뒤집어 씌여지고 마츠코는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마츠코는 아버지의 애정을 받기 위해 애처롭게 노력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다, 여동생이 다가오는 것에 분노를 느끼며 여동생의 목을 조른다. 이때 어머니가 들어오고, 마츠코는 가방 하나만 들고 집을 나오게 된다.

   그 뒤 마츠코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 친구와의 동거를 거듭하며 돈을 벌기 위해 몸까지 팔게 된다. 혼자인 것을 지독히도 괴로워하던 마츠코는 혼자여도 지옥, 함께여도 지옥이라면 차라리 함께하며 지옥에서 사는 것을 택한다. 그러면서 그 지옥 같은 타인이 떠나갈까 상대에게 집착하며 자신의 삶을 절대적으로 바친다.

   마지막 이별 이후 마츠코는 자신을 포기해버린다. 집 안에 쓰레기를 가득 채우며, 꼼짝 않고 먹고 자기만 반복한다. 우연히 친구 메구미를 만나 명함을 건네받고, 마츠코는 불현듯 자신에게 희망을 발견하고는 그 메구미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명함을 들고 밤길을 걷다가, 불량스러운 어린아이들에게 맞아서 죽게 된다.

   아마 마츠코가 죽지 않고 메구미에게 연락을 했더라도, 그의 일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듯하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이란 자신의 삶을 놓아버리는 일이다.


   사랑이 아닌 자학


   마츠코는 눈에 파랗게 멍이 들도록 맞는 중에도, 상대가 조금이라도 안아줄 기세를 하면 그대로 방어를 풀고 품어주려고 한다. 마츠코가 폭력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상대가 자신을 떠나는 것이다. 마츠코는 버림받기 전까지 절대 상대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폭력을 견디는 마츠코의 사랑이란, 순수한 사랑이라기보다 자기혐오의 한 방식으로, 상대를 통한 자학에 가깝다. 다른 사람의 애정을 갈구하는 이유는 자신 안의 큰 구멍을 마주하면 참을 수 없이 괴롭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무가치감을 느낄수록 폭력적인 대접을 당연시하게 된다. 응당한 폭행을 당하며 마땅한 삶이라 여기게 된다.

   또 자학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도 견뎌내지 못하는 삶의 무게를 상대에게 지우는 일이다. 상대가 진정 행복하길 바란다면, 때로 상대를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마츠코는 상대의 행복이나 절망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삶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바라보며 웃고 울었다. 마츠코는 자신을 혐오하기에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자학적인 관계에 얽매여있었다.


   마츠코는 신이 아니다


   마츠코와 동거하던 제자 ‘류’는 조직의 돈을 빼돌려 도박하다 들킨 후 조직의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자진 신고를 하며 교도소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은 마츠코에게 상처만 줄 뿐 애정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 마츠코를 위해 마츠코를 잊기로 한다. 석방하는 날 빨간 장미꽃을 들고 기다리던 마츠코에게 또다시 주먹을 휘두른다. 길거리를 방황하던 류는 사람을 다치게 해 교도소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신은 사랑이다’라는 글귀를 보고 신의 사랑에 관해 관심이 생긴다. 목사는 마음 깊이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신의 사랑이라고 한다. 류는 마츠코의 눈부시고 거대한 애정이 자신에겐 신의 사랑이었다고 깨달으며 잘못을 뉘우친다.

   영화를 보며 마츠코의 사랑이 자칫 고귀하게 비칠 수 있는 부분이 우려스러웠다. 희생적이고 무조건적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극의 시작이니까 말이다. 마츠코는 신이 아니며,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또 영화에서 ‘류’에 대해 사랑에 서툴지만 알고 보면 순수한 사람인 것처럼 그려진 것도 불편했다. 선생이었던 마츠코를 좋아해 괴롭혔다는 말이나, 마츠코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등을 돌린 건 오직 마츠코를 위해서였다는 말이나, 모두 기만적이었다. 엄연히 데이트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이야기는 고난을 견뎌내는 숭고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키운다. 사랑은 폭력을 견뎌내는 일이 아니며, 폭력은 폭력이다.


   현실 세계의 마츠코들


   자학적인 사랑을 하는 건 마츠코만이 아니다. 2018년 서울에서 실시한 데이트 폭력 설문 결과를 보면, 여성 10명 중 9명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혼 조사 참여자 가운데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46.4%가 가해 상대방과 결혼했고, 결혼 후 17.4%의 가정에서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이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남성 지배적인 구조에서 기인한 여성혐오적 통념들과 연결이 되어있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모성애적이며 순종적이어야 더욱 가치 있다는 사회적 사고가 개인을 옥죄는 것이다. 결핍을 느낄 때 남성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외부에 분출하는 한편, 여성들은 그 폭력적인 공격성의 화살을 자신에게 쏘아 꽂는다. 순응하고 포용할 수 있는 폭력의 범위를 넓히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상대의 폭력에 대한 자신의 거부 반응을 의심하기도 한다.


   연대의 희망


   마츠코를 순수하고 건강하게 사랑한 건 친구 메구미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츠코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며 여유를 갖고 상대에게 도움을 건네는 일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이 아닐까. 아버지의 무뚝뚝한 사랑은 ‘본의 아니게’ 마츠코에게 닿지 못했고, 여동생의 사랑은 집착이었고, 남동생의 사랑은 무관심이었고, 애인들의 사랑은 폭력이었다.

   또한 메구미는 곁에서 목격한 폭력에 대해 방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덩치가 커다란 남자 친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으며 마츠코에게 빠져나오라 소리치고, 마지막엔 몰골이 엉망인 마츠코를 보자마자 도와주려 노력했다.

   메구미 같은 친구들이 많다면, 영화 속 마츠코도 현실 세계의 마츠코도 폭력에서 벗어날 용기를 얻지 않을까. 여성을 구하는 여성의 연대에 대해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illust by 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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