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한 진지한 고찰까지는 좋았는데…… <개소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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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살면서 들어본 가장 인상적인 개소리는 무엇인가요? 제게 물으신다면 당장 떠오르는 것으로, 한때 밈으로까지 자리잡았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페미니스트 대통령등이 있습니다(할많하않). 워낙 시대가 흉흉하고 각박해져서 ()바른 소리보다 개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날도 더러 있는 요즈음인데, 얼마 전에는 넘쳐나는 개소리의 망망대해를 자맥질하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의 의견에 대한 폄하의 의미가 다분한 이 개소리라는 정의는 보통 의견의 불일치로 인한 결과물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열이면 열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개소리도 있죠. 보통 어떤 경우일 때가 그것은 영락없는 개소리인 것으로 판명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될 수 있을까요?(참고로 개소리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두서없는, 입 밖으로 꺼내면 바로 세상 쓸데없는 소리가 될 법한 생각을 누군가가 먼저 책으로 내기까지 했더라고요?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구나 하고 내적 동질감에 기뻐하며 손에 넣었습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얇은 점도 뭔가 역설적인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명망 높은 인문 철학자로 알려진 저자 해리 G. 프랭크퍼트에 의하면, 개소리의 본질은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짓을 꾸미기 위해서라면 최소한은 진실에 대해 알아보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래야 그와 대립되는 내용의 을 조작할 수 있으니까요. 출처도, 진위 여부 확인에 대한 그 어떤 시도도 없는 뇌피셜이나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뱉어낸 말에는 사람들을 속이고자 하는 수고로움조차 들지 않았으니, 이는 거짓말보다 질이 더 나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호도하려는 의도는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그에 반하는, 누구에게도 득이 없는 뻘소리는 개소리보다는 덜 유해할까? 그중 뭐가 더 나쁜 걸까? 아니, 그보다 꼭 우리 모두가 진실에 기초하고 공익에 기여하기 위한 의견을 개진해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 라는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 무렵 저자는 저를 진정시켰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뭔가를 정확히 알려고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떠드는 게 문제라고! 그건 자원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어떤 말을 더운 공기라고 묘사할 때, 우리는 발화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단지 그게 전부라는 걸 뜻한다. 그가 하는 말은 그저 입김일 뿐이다. 그의 말은 실체도 내용도 없고 그저 공허하다. 따라서 그가 쓰는 언어는 그것이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되지 못한다. 발화자가 그저 숨을 내쉬는 것이라면, 어떠한 정보도 소통되지 않는다. 우연히도 더운 공기와 대변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그것은 더운 공기를 특히 소똥에 어울리는 동의어처럼 보이게 만든다. 더운 공기가 모든 정보성 알맹이가 빠진 말인 것처럼, 대변은 영양가 있는 모든 게 제거된 물질이다. 대변은 영양분의 시체, 즉 음식에서 필수 요소가 다 빠져나가고 남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대변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내는 죽음의 재현이다.”


 엄청난 사족이지만, 누군가의 영양가 없는 말은 곧 똥과 다를 바 없다는 철학적 냉소에 저는 그만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언젠가 이렇게 무언가를 세련되게 욕할 수 있는 필력을 갖고 싶어요. 어찌됐건, 저자는 교수라는 직책에 으레 기대되는 사회적 책임감을 바탕으로 개소리의 해악을 진지하게 분석합니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배제된 채로 생각 없이 발화하는 것, 자신의 발언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태도는 정말 위험하다고. 옮긴이에 따르면 이러한 저자의 기준은 정치적 함의로도 확장됩니다.


정치에서 말하는 프레임론과 마케팅에서 말하는 포지셔닝론 모두가 개소리의 기술에 대한 내용이고, 모두가 말의 진릿값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숨은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언어조작에 전념한다.”

정치가의 공약이 지켜지지 않아도, 언론의 보도가 허위로 판명 나도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어떤 거짓말이 거짓말임이 판명되었음에도 거짓말쟁이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라 개소리다. 지금 우리는 거의 모든 말이 개소리화 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개소리가 위험한 이유는 상호 신뢰에 해가 되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되는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막대한 수고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명박근혜정권을 떠올리면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죠. 알고 보니, 이 책은 미국의 대선 기간 중에 트럼프의 막말을 둘러싼 현상을 해석하는 데 널리 인용되기도 했다는군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옮긴이의 글이 본문이 가진 지적이며 중도를 지키는 차분함과는 결이 다르게 다소 선동적으로 느껴졌던 것도 여기부터였습니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듯 진리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니라 개소리라는 데에는 충분히 동의하며 책을 덮으려 했건만, 옮긴이의 글 말미 무렵에서 저는 그만 앞서 느꼈던 묘한 위화감의 실체를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개소리는 정치의 영역을 넘어 확산된다. 재벌들의 사회공헌 기업광고를 보라. ‘사람이 미래다라고 캠페인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입사원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좌우파를 막론한 시민사회도 숨은 의도가 있는 조어들을 생산해낸다. 자유민주주의자를 빨갱이’, ‘종북으로 낙인찍기는 낡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시선강간이라는 용어를 보라. 촌철살인과 개소리의 경계선상에 놓인 말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누가누가 더 개소리를 잘 만들어내는지, 누가 더 뛰어난 개소리 예술가인지 장기자랑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소리에 대한 분석철학을 번역하면서 정작 본인이 이런 주관적인 개소리를 배설해 놓다니요. 아마 역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큰 깨달음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비트겐슈타인과 파스칼의 저서를 번역하기도 한 지적 역량을 지녔더라도 편성(偏性)적 억울함에 함몰된 좁은 시야를 고수한다면 그 스스로가 단지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것 이상으로는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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