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무의식에 박혀 있는 겸손이라는 압박을 좀 멀리해보자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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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 증후군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본인의 성취를 능력보다 운 때문이라 여기며 불안해하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심리증상입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엄청난 업적을 자랑하는 유명 인사들도 실은 자신이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다들 실망할 것이라며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유명인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가면 증후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성취의 ㅅ도 없는 미천한 일반인은 대체 어찌 살라는 건지... 저만 해도 그래요. 누가 너그럽고 다정한 마음으로 칭찬이라도 건네면 마음속에서 ‘엇! 저 사람은 뭔가에 속고 있는 거야! 내 실력은 아직 저만큼의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니까 어서 부인해!’라는 마음의 소리에 좌뇌와 우뇌를 잠식당합니다. 그리고 이런 은연중의 압박은 이상하게도, 압도적인 확률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납니다.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 칭찬을 받았을 때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여성, 그리고 이를 당연히 여기거나 한발 더 나아가 누구도 묻지 않은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남성의 비율이 비슷하게 보입니다. 겸손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일종의 미덕으로 간주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왜 누구는 겸손에서 자유로운 것을 넘어서 등한시하며, 누구는 지독한 자기비하의 덫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걸까요?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는 이런 흥미로운 현상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남자는 그만한 실력도 없는데 왜 그렇게 뭐든 잘 한다고 우겨대는지, 여자는 그런 입으로만 전문가인 이들보다 차고 넘치는 능력을 갖고도 왜 끊임없이 의심을 하느라 좋은 기회를 남자들에게 양보만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의심할 필요도 없이 양육환경과 사회적 분위기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당사자들은 애써 외면하지만 이 사회에서 XY염색체는 모든 걸 지니고 태어나고, 또 길러집니다. 뭐든 할 수 있고, 무슨 짓을 해도 용인되고 칭찬받습니다. 그냥 그 존재만으로 말이에요! 반면 XX염색체는 XY라는 축복(아.. 정말 비위가 상하는군요... 맞지만 맞지 않고, 인정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이 감정을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지)에서 벗어났으니, 존재의 효용을 증명해야 합니다. 값어치를 보여줘야 하니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존재 자체로 축복받은 나와는 다른 성별만큼, 또는 그 성별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이렇게 유전자에 새겨지는 거겠죠. 저에게는 이것이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원죄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남성들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압박 속에서 성장해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동차 엔진이나 정지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자신 있는 척 행동했던 시간들 덕분에 남자들은 지식이 부족해도 일단 마음 편히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남자들은 새로운 일이나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기본적인 지식만 있어도(혹은 아무런 지식이 없어도)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 일을 하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다른 메시지 속에서 자랐다. 주로 그들의 지식이나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메시지였다.”

  “남자가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지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어도 그가 그 일을 회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는 여성인 당신에 대해서는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마음속에까지 뿌리내릴 수 있는 의심의 씨앗을 뿌린다. 성공은 남자에게 좋은 가장이 될 가능성을 높여주며 '가정적인 남자'라는 이름도 가져다준다. 반면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이와 비슷한 이름조차 없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희생'으로 자신의 경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가면 증후군이 단순히 자신감이나 양육의 문제라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기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여성이 무력감과 부족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곳은 힘과 권위가 있는 공적 영역이라고 합니다. 이쯤 되면 그간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여성이 나타나지 않게 광범위한 가스라이팅이 횡행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음모론 급의 공상도 하게 되네요. 흔히 이런 공상 아닌 공상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따라오곤 하는 반응이 있어요. ‘그거 피해의식 아냐?’ (잠시 심호흡) 피해의식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 품는 근거 없는 공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그간 당해왔던 부당한 대우에 대한 경험치의 산물입니다. 애초에 공평하지 못한 처우를 당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이거든요. 
 
 특정 증상을 공론화하는 것에는 명암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생리 전에 겪는 여러 증상을 PMS라는 하나의 정식 명칭으로 병증화 함으로써 그에 따른 완화 방안을 연구하게 되는 단계적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반면, PMS는 인체기관의 질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월경의 시작과 함께 또는 월경시작 수일 내에 사라지는 증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질병화 하는 것은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취급했던 구시대적 관점과 다를 바 없다는 의견도 상존합니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특히 여성에 대한 것이라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부각되고 마는 그간의 경험치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만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이야기하는 데서 나아가, 남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그들이 그리 좋아하는 기계적 평등에 부합하는 공정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제 머리를 강타합니다.

여성들이 가면 증후군에 고통받는 동안 남성들은 그저 멀쩡히 잘 지내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안타깝게도). 그들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고는 하는데, 가면 증후군과는 대치되는 성향으로서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권위적인 태도로 아랫사람을 훈계하듯이 설명하는 ‘맨스플레인’으로 명명되는 아주 흔한 지병(持病)이에요.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그 질환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동시에 극복할 의지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가면 증후군에 대한 연구는 수백 가지에 이르며 그중 90퍼센트는 여성 연구자에 의한 것이다. 이상한 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남성들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현상이 존재함에도 이에 대한 관심은 매우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소위 '모든 것에 답하려는 남성증후군'이다. 이 말은 1992년 <어트니 리더>에 실린 제인 캠벨의 기사에 제일 처음 등장한 것으로, 그녀는 '실제 지식과 무관하게 질문에 답하려는 고질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물론 모든 남성들이 이런 충동을 느끼는 건 아니다. 캠벨에 따르면 "몰라요."라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지는 않아서, "그건 여기서 중요하지 않아요."같은 말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가면 증후군은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활발히 논의되지만 맨스플레인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에요. 너무나 당연해서? 결점이라 생각하지 못해서? 그것도 아니면 가아아암히 ‘과장’과 ‘허풍’이라는, 남성성의 뼈대를 이루는 요소를 비난하는 것이 존재 자체의 부정으로 느껴져서일까요? 스스로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반 정도는 해결된 것이라고들 하는데, 일단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논의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자연적으로 해결방법도 활발히 논의되겠죠? 그날이 어서 오길 고대해봅니다. 어디까지나 아주 이타적이고 공정한 마음으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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