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전 L입니다


방년 27세 한소리. 나는 레즈비언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도 있다. 여자라고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취향도 확고하다. 쌍꺼풀이 있고, 앞머리가 있고, 단발 이상의 머리 스타일에 통통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형일 뿐,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취향 바운더리 바깥에 있기도 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겉모습만 보고 시작되는 감정이 아니니까. 첫인상에서 호감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가벼운 기준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나는 머리가 짧다. 입는 옷 또한 무난하고 펑퍼짐한 검정이다. 치마나 원피스, 화려한 액세서리나 화장은 그만둔 지 오래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내가 처음부터 레즈비언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틀린 추측이다. 나는 스물두 살 때까지 남자와만 교제했다.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과 연애했다. 그때까지는 ‘퀴어’에 완벽히 무지했다. 성소수자 개념이라고는 게이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이외에 아는 것이 없었으며, 로맨틱과 섹슈얼의 차이점,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의 다른 점을 구분하지 못했다.

 

“나도 여자를 좋아할 수 있었어!”

 

이것을 알게 된 계기는 아주 평범했다. 왕십리에 위치한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일하시는 직원분께 자꾸 눈길이 갔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분 연락처 물어보고 싶어.”

 

의아했다. 나, 왜 여자에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설마 나 여자 좋아하나? 드라마나 영화 보면 이럴 때 충격에 휩싸이며 혼란스러워하고 아니야, 아닐 거야,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눈물까지 흘리던데 나는……

 

기뻤다. 새로운 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칸트는 변화를 두려워해서, 10년 동안 같은 옷을 입던 집사가 딱 하루 다른 옷을 입었다고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칸트가 아닌 칸트의 집사에 몰입하였다. 10년 동안 입은 이 지긋지긋한 옷은 그만 입고 싶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이제 알 바 없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겠어.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새 옷을 산 사람들이 #데일리룩 #신상 같은 해시태그를 붙이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듯이, 그 후로 나는 내가 발견한 나를 자랑하였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남들처럼 #럽스타그램 #데이트 같은 게시글을 올렸고, 내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아니 나 여자친구가…” 그럼,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혼란스러워했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어… 어떻게 반응하지? 분명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커밍아웃할 때 나 사실…이라는 식의 회개나 고백 조로 이야기하던데……

 

얘 뭐지…… 뭐야, 왜 이렇게 당당해?

 

물론 나도 처음부터 오픈 퀴어는 아니었다. 성소수자가 살아가기에 대한민국은 절대로 좋은 거주지가 아니었으니까.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는 쪽이 안전했고, 부연 설명을 하며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것보다는 아예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는 편이 덜 수고스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평생 살게 된다면……

 

“그럼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기는. 계속 그렇게 사는 거지.”
“죽기보다 더 싫네.”

 

그래서 택했다. 내가 남의 눈치를 볼 바에야 남이 내 눈치를 보게 만들겠다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발화는 전염성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SNS 프로필에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간판처럼 달아 놓으면, 적어도 나는 “너… 혹시 레즈비언이야?”라는 질문을 듣지 않을 수 있었고, “여자친구 개좋아”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성 커플의 이야기를 듣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나는 내 성적 지향을 오픈함으로써 받을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피해를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감당하고자 하면 더욱더 부조리의 늪에 빠져 들고 마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죽기보다 더 싫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어떻게 되긴. 계속 그렇게 사는 거지.”
거듭 숨겨야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
나는 특별하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고 특이하게 솔직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해 공부를 해야 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그것이 바로 무지라고 외치고 싶었다.

 

*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어디 있는데?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시야가 좁은 탓이다. 당신이 제대로 찾아본 적 없는 탓이다. 당신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없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들을 존재케 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여서 그럴 수도 있다. 이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기뻐하세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 불편함이 개선의 희망점이며 이것을 겪어내면 당신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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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평범하게 살면 안 돼? 다른 애들처럼 남자친구도 만나고, 시집도 가고, 아기도 낳고 평범하게, 잘 살면 안 되냐고.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소리야. 정신 좀 차려. 나 너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어.”


“저… 이런 말 하면 실례인가? 누가 남자 역할이야? 여자끼리 섹스는 어떻게 하냐? 영화 아가씨같이 해?”


“언니, 사실 애들이 막 언니 욕했어요. 윤희한테 너희 언니 레즈비언 아니냐고 막 하면서 더럽다느니 뭐라느니…….”


“너 왜 말 안 했어? 그런 소릴 듣고도 왜 가만있었어?”
“가만 안 있었어! 그런데 내가 언니한테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해…”


"소리야,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네 욕 하는 게 싫어… 그러니까 그냥 좀 숨기면 안 돼? 왜 그렇게 꼭 티를 내야 해?”


“언니, 어떤 익명 계정이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 보냈는데 나 협박해. 내가 바이인 거 다 알고 우리 엄마 번호도 안다고, 전화해서 다 말해버리겠대. 가족들 너 바이인 거 모르지? 이렇게 막 물어보면서. 언니, 나 무서워. 손이 막 떨려. 도와줘,”


“언니, 나 지금 서울 가는 중이야. 엄마랑 싸웠어. 내 계정 다 봤나 봐. 언니랑 무슨 사이냐기에, 사귄다고 했더니 사귀는 사이가 무슨 사이녜. 싸우다가 화나서 짐 싸 들고 나왔어.”

 

Q 위에 나타난 보기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르시오. (9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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