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산악 대장은 그만두지만

“소리야, 이제 정말 그만두려고.”

수자는 산악 대장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수자가 얼마 전 산악 카페 공지글에 대장을 그만두겠다고 썼기 때문이다. 수자의 암 투병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뜬금없는 하차 소식이었겠지만, 수자에게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또 망설이던 일이었다.

“그래,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조금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라는 말 때문인지, ‘다시’라는 말 때문인지를 한참 생각하다, 결국 말을 더 꺼내기를 그만두었다.

“그렇지?”

“…….”

“그래.”

*

두 딸을 낳고 평생 일만 하며 살아가던 수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떻게 쉬어야 쉬는 것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쉬는 날엔 바닥에 누워 티브이를 보았고, 밥시간엔 밥을 먹었으며, 잘 시간엔 잠을 잤다.

그 과정 중에 나와 윤희가 함께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패기 넘칠 나이, 그러니까 철없을 나이 때의 나는 집보다는 바깥을, 가족보다는 친구를 좇아 떠돌아다녔다. 나와 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 윤희는 당시 너무도 어렸으므로, 수자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던 나이였다. 윤희에게 수자는 ‘당연하게도’ 엄마일 뿐이었다.

수자는 살이 쪘고, 살이 쪄버린 자신을 혐오했고, 그러나 살을 뺄 결심이 들지 않았고, 사실 그것은 방법을 몰라서 댄 핑계와도 같았고, 아무도 수자에게 자신을 보는 법이라거나 자신을 이해해보라는 조언을 주지 않았고, 사실 줄 사람이 없었고, 수자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며 이렇게 사느니 죽어버리는 게 낫지, 중얼거리며 많은 날을 보내다가……

산을 올랐다.

어떤 날이었다. 수자는 많이 지쳐 보였으나, 누구보다 밝은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자는 신나 있었다. 이십 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수자가 그렇게 들뜬 모습은 처음 보았다.

들어보니 수자는 그날 지역에 있는 작은 산을 올랐다. 정상까지 가지는 못했으나, 다음에는 꼭 정상을 찍고 오겠다고 재잘거리는 수자의 이마는 땀으로 젖어 있었고 빛났다. 툭 튀어나온 그 이마가 참 넓고 예뻤다.

얼마 뒤 수자는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기에 성공했다. 자랑하듯 신발을 벗으며 말하던 수자는, 꼭 어린이집에서 칭찬받은 사실을 엄마에게 자랑스레 우쭐대는 아이 같았다. 그날 이후로 수자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돈을 쓰기 시작했다. 신발이었다.

제대로 산을 오르려면 제대로 된 신발이 있어야겠어, 라던 수자는 하루종일 쿠팡에 몰입하였다. 최저가 딜을 기다리거나, 저렴한 등산화가 메인에 등장하면 사이즈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잽싸게 구매 버튼을 눌렀다. 수자가 사는 신발들은 대부분 외국 제품이었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메이커는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파는 제품을 매우 싼 가격으로 들여와 한국에서 파는 브랜드였다.

만 삼천 원, 만 팔천 원, 그렇게 저렴한 등산화들이 신발장을 채울 때마다 수자는 수집가처럼 기뻐했다. 등산 의류와 용품도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이후 나는 수자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자는 늘 갖고 싶은 것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수자에게 사주면 되었다. 대부분이 비싸지 않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자신의 돈으로는 차마 사지 못했다는 그 물건들이 수자에게는 얼마나 소중했을까?

수자는 더 이전처럼 살지 않았다.

수자는 자신이 더 이전처럼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자는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

그렇게 산을 오른 지 3년 무렵. 수자는 한 카페의 산악 대장이 되었다. 살도 무척 많이 빠졌다. 대신 근육이 늘었고, 등산 실력도 꽤 수준급으로 올랐다. 그 카페에서 수자는 최연소 여성 산악 대장이었다.

그런데 그날부터 수자의 걱정이 늘었다. 카페 회원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수자보다 높았고, 그만큼 산을 더 오래 탄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물론 실제 그들이 수자를 왜 싫어했는지, 얼마나 싫어했는지는 내가 정확히 알 수 없고 끝까지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산을 다녀온 수자의 고민거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수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까닭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소리야. 엄마는 너무 소심하고 재미가 없나 봐. 너무 인기가 없어. 열심히 산 타고 싶은데, 사람들이 엄마 공지에만 댓글을 안 달아주네. 다른 대장들은 친한 사람들도 많고, 같이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그러는데.”

그러면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사교적인 사람들이 아무래도 더 인기 많긴 하겠지. 더 친해지려고 해봐. 말도 잘 걸어보고. 친밀하게 다가가 봐.”

수자는 매주 특정 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산악 공지를 올렸고, 아무도 오지 않았더라도 꿋꿋하게 혼자서 산을 올랐다. 그러나 누군가 오기라도 할까 항상 타인의 몫까지 과일을 챙겨서 갔고, 누군가 산행에 참여했을 때 수자는 정말로 기뻐했다. 대장으로서 그 사람을 어떻게든 보필하고 이끌어가려 했다.

그토록 열심히 하는 마음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그때까지 그러려니 하고 대충 넘어갔었다. 동호회나 모임의 경우에는 사교적인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시선을 끌고 사람들을 불러일으키기 쉬웠으므로. 수자가 다소 소심한 면이 있어서 친해지는 속도가 다소 느릴 수 있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이런 말을 했다.

“애교는 어떻게 하는 거니? 사람들이 엄마더러 애교가 너무 없대. 성격 좀 고치라는데. 엄마는 그런 거 잘 못하잖아. 그치?”

“같이 노래방을 갔는데, 엄마만 못 놀더라. 술도 못 먹고. 어울리는 게 너무 힘들어. 역시 엄마 성격이 이상한 거지?”

뭔가 이상했다. 수자는 산악 대장이었다. 말 그대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그들을 잘 챙기고 하산하면 되는 임무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애교가 필요하지? 술 먹고 노는 것이 어째서 사교적인 것이지? 사교적인 것과 애교가 많은 것은 다른 맥락에 놓여 있다. 그러나 수자는 대장 일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그건 ‘여자’로서의 자신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엄마. 그거 잘못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야. 왜 애교가 필요하대? 애교 없는 게 사교적이지 않은 거라고 누가 그래? 그런 말 듣지도, 신경 쓰지도 마.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걸 요구하면서 엄마더러 대장 하라고 하면 하지 마. 아니다, 해. 끝까지 해. 누가 오든, 안 오든, 뒤에서 욕을 하든 말든 해. 혼자면 혼자서라도 해. 누가 뭐라고 하든 엄마는 산악 대장이야. 엄마는 엄마의 일을 잘 해내고 있을 뿐이야.”

이후로도 내게 고민을 털어놓고 마음을 다잡으며 조언과 응원으로 고민을 종결 내리는 일을 수십 번 반복한 뒤에서야, 수자는 결심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맞아. 내가 대장인데. 난 나답게 할 거야. 수자 아자아자 파이팅!”

“산악 대장 나가신다! 소리야 엄마 다녀올게~”

그런 수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 때마다 나는 울었다. 오로지 벅차서 울었다. 내가 그토록 벅차올랐던 이유는, 수자가 그 말을 하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고

*

슬픈 이유는, 그 말을 하고 난 뒤 너무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 지나버렸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이젠 옛날처럼 산도 못 타겠어. 몸이 안 좋아져서.”

“소리야, 이제 정말 그만두려고.”

*

그래도,

수자는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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