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빨간 팬티

 

 

    “삐-삐-삐삐삐삐-삐”

    현관 도어락 소리는 재미있고 특별하다. 문을 여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누르는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급하다거나, 바깥이 너무 덥거나 추운 경우에는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거의 두 배로 빨라진다. 그래서 나는 도어락에서 나는 “삐-” 소리를 들으면, 저 사람이 누군지, 어떤 마음으로 집에 들어오는지 예상할 수 있다.

    그날, 나는 자정 즈음이 되어서야 귀가하였다. 술을 살짝 걸친 상태라 취해 있었고, 그래서 비밀번호를 두어 번 틀렸다. 수자는 집에 들어선 나를 힐끔 바라보 버럭 소리쳤다. 서럽게도, 내가 취했거나 늦게 귀가해서가 이유는 아니었다.

    “윤희가 아직도 안 들어와! 이 기지배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수자는 근래 자주 늦게 귀가하는 윤희에게 화가 나 있던 상태였는데, 그것이 오늘 제대로 정점을 찍은 것 같았다. 수자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나더러 윤희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원래 같았으면 “뭐, 곧 오겠지. 엄마가 전화하든가!”라고 말했을 텐데, 수자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조급함이 묻어 있었으므로 나는 별말 없이 윤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윤희는 내 전화를 제때 받은 적이 없다. 윤희는 내가 전화를 걸면 끊을 때까지 받지 않았다가, 꼭 전화벨이 끊어진 1분 뒤에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를 받지 못하니 문자로 말하란 답장이었다. 윤희는 항상 그런 꼼수를 썼지만, 그것이 꼼수인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게 먹힐 리가 없었다. 그런 윤희에게 나는 매번 핀잔을 주고 전화를 받으라 누누이 말했지만, 윤희의 부재중 습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윤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세수를 했다. 머지않아 윤희에게 메시지가 올 테니까. 그럼 나는 “수자가 너를 걱정하고 있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남기면 되니까. 그럼 윤희는 금방 집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씻고 방으로 와 누웠음에도 불구하고 윤희에게서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질풍노도의 고등학생이라지만, 윤희는 항상 어떤 변명을 대서라도 늦는 이유를 설명하고 늦었다. 비록 전화를 받진 않았으나, 문자로라도 해명을 하던 애였다. 그런 윤희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윤희에게 몇 번 더 전화를 걸었다. 윤희는 받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윤희에게 카톡과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너 어디야. 우리 걱정하잖아.]

    [전화 받. 이거 보면 바로 전화하거나.]

    윤희에게서는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다.

    좀 화냈나. 미안한데.

    이번에는 화법을 바꾸어 윤희를 달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윤희야, 비도 오고 위험한데 얼른 와. 친구랑 더 놀고 싶은 건 이해하는데 연락 안 되면 걱정되잖아.]

    [엄마한테는 비밀로 할 테니까 연락이라도 해줘.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알겠지?]

    30분, 40분,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자…… 나는 매우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가 되었다. 페이스북 을 켜고 윤희의 계정으로 들어갔다. 페이스북 메시지는 상대가 몇 분 전까지 접속했는지 상단에 띄워주는 기능이 있었는데, 윤희는 페이스북 메시지가 유행이라며 친구들과도 그것으로만 연락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열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윤희는 약 두 시간 전, 10시부터 페이스북 메시지에 접속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트위터를 하루에 한 번도 접속하지 않는다면, 분명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트위터는 내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든 SNS이었기 때문인데, 윤희에게 페이스북은 그런 맥락에서 중요한 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는 윤희의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윤희 언니인데, 혹시 윤희랑 연락이 되니? 비도 오는데 윤희가 아직 집에 안 들어와서 말이야.]

    금방 답장이 왔다. [아까 윤희랑 10시 즈음에 헤어졌어요! 집 간다고 인사하고 갔는데… 윤희 안 갔어요?]라는 답변을 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10시 즈음 윤희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만나지 못했다고, 그 후로는 연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았다. 돌아오지 않은 윤희가 걱정되었고, 설마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란 나쁜 생각들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비가 내리면 내릴수록 윤희가 안전하게 있는지, 두렵고 무서운 감정이 들었으며 이대로 윤희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술도 깨고, 잠도 다 깼다.

    새벽 한 시쯤. 아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윤희 관련 연락은 아니었다. 아는 동생은 한강으로 드라이브나 하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고, 나는 미안하지만, 한강 대신 동생의 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가서 동생을 같이 찾아줄 수 있겠냐 물었다. 동생은 고맙게도 바로 알겠다고, 우리집 앞으로 온다고 했다. 고마워, 곧 나갈게. 응. 그래. 연락해.

    나는 울먹이며 옷을 입었다. 대충 머리를 묶고,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치며 나갈 채비를 했다. 방을 나왔다. 수자는 아까처럼 거실에 누워 있던 상태였는데, 곧 무너질 것 같은 나와는 달리 수자는 세상 평온한 얼굴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는 윤희가 없어졌는데도 걱정이 안 돼!?”

    수자는 별 대답 없었다. 거의 졸고 있는 사람 앞에서 혼자 소리치는 격이었다. 화가 났지만, 우선은 윤희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으므로, 나는 모자를 챙기기 위해 윤희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손을 덜덜 떨며 문고리를 돌렸는데. 그랬는데,

    빨간 팬티가 보였다.

    정확히는, 빨간 팬티를 입은 채로 엎드려 자는 윤희가 보였다.

나는 절벽 끝에 매달렸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끌어 올려지는 기분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다만, 절벽인 줄 알았던 곳은 2m밖에 안 되며 그 아래에는 트램펄린이 깔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허무해지는 기분도 동시에 들었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정말 서럽게 엉엉 울었던 것 같다.

    “씨발, 진짜 씨발, 윤희 여기 있잖……. 엉엉… 빨간, 존나, 빨간 팬티 입고 어? 왜 자는데 존나 윤희 씨발 진짜, 엉엉…….”

    윤희는 세상모르는 얼굴로 코까지 골며 잘 자고 있었다. 얄미운 동시에 어처구니가 없었고, 급기야 나는 억울해지기까지 했다. 아무 잘못도 안 하고 잘 자는 윤희가, 그리고 거실에 누워 윤희가 집에 안 들어온다고 나를 보챘던 수자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엄마! 윤희 집에 있잖아! 뭘 안 들어와?”

    내가 화를 내자 수자는 실실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어머, 그랬니? 호호.”

    호호…… 호호라니…….

    나는 윤희를 잠시 깨워, 지금까지 내가 벌여놓은 일을 설명했다. 왜냐면, 윤희의 친구들에게 내가 연락을 돌린 탓에 윤희의 친구들이 모두 윤희를 애타게 찾고 있었고, 페이스북에 윤희의 행방을 찾는다는 실종 게시물까지 올려두었기 때문이다.

    윤희의 친구들이 내게 “언니 윤희 아직도 못 찾았어요?”라고 연락이 오는데…… 대답할 말이 없었다. 차마 윤희가 자고 있었고, 그런 윤희를 발견하지 못했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윤희는 어이없어했다. 자신이 한순간에 가출청소년이 된 것에 대해 짜증을 냈고, 어이없다며 웃기도 했다. 더 어이가 없던 것은 바로 휴대폰에 찍힌 부재중 전화 수였다.

    나는 사실 수자가 윤희를 몇 번이고 찾고 연락해보다가, 안 되어 내게 말한 줄로 알았다. 그런데 윤희의 휴대폰에 찍힌 수자의 부재중은,

    단 한 통이었다.

    나는 총 25통의 전화를 했는데.

    그때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무심했으면 방에서 자는 것도 몰랐을까. 아니, 대체 수자는 윤희가 집에 들어온 것을 왜 못 봤지? 이해가 안 됐고, 어이가 없었고, 화가 나는 동시에 웃겼다. 우리는 조금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도 윤희의 빨간 팬티를 잊지 못하고 있다. 빨간 팬티만 보면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웃겨서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윤희와 나는 그 이후 조금 더 친해졌다. 적어도, 서로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윤희는 내 전화를 한 번에 받지 않고, 나는 여전히 그런 윤희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이것 또한 익숙해졌으므로 일상이 되었다. 일상이 된다는 것은 당연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날 한강으로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 비가 잠시 왔다 그친 한강은 쌀쌀했지만, 운치가 있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넓은 한강의 흐름과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대로와 건물 불빛을 응시했다.

    같이 살았을 적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때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괜찮다. 과거에 하지 못한 것들을 앞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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