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복지매장*

 


 

    내가 아기일 때부터 초등학생 시절 무렵까지 서울에 사는 친척 언니의 옷을 물려받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걸 좋아했다. 남쪽지방에 살던 우리에게는 서울이라는 단어 자체가 세련됨과 고급스러움을 뜻했기에,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도 서울 사는 사촌 언니가 멋있어 보였다. 사실 서울은 아니고 인천에 살았지만.

    엄마는 그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조카들 입으라고 보냈다며 비싼 옷이라 색내던 할머니가 미웠을 것이다. 내온 옷들 중에는 형편없이 낡아서 입기 민망한 것들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엄마의 주관적인 기억이 덧씌워져서 과장됐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 엄마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같다. 눈치 없이 나는 낡은 보따리를 타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처럼 좋아했던 기억만 난다. 세련된 서울 언니가 입던 거니까.

    ‘낡은 것 매력 제대로 인식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쯤이었던 같다. 갔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동사무소 2층에 있던 꽤 넓은 평수의 복지매장에 갔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옷과 신발, 가방들이 가득 있었는데 그중 내 눈을 반짝거리게 한 가방이 있었다. 7, 80년대쯤이 전성기였을 같은 가방은 짐 가방이라고 하기에는 작아 보였고 화장품을 문판매할 샘플들을 채워 넣어서 다녔을 같은 분위기의 잡힌 낡은 체크 가방이었는데, 날아가버 채도와 손때 묻은 흔적의 아름다움이 나를 설레게 했다. 외관도 멋스러웠지만 나중에 가방 안주머니에서 낡은 영수증과 메모지를 발견했을 때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알아볼 있는 내용이 아니었지만 어느 시간의 조각을 손에 넣은 것 같았다. 가방이 더욱 특별한 물건처럼 느껴졌 그걸 가진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되는 같았다. 그때의 기분이 아직 희미하게 기억난. 내가 낡고 오래된 것에 빠지게 것은 분명 가방 때문이다. 가방은 내가 성인이 되어 서울로 올라오면서도 챙겨서 가져왔고 그만큼의 낡음이 더해졌다.

 

 

    스무 무렵의 어느 겨울엔 노튼이라는 브랜드의 박시한 검정색 더플코트를 500원에 구입했다. 적당히 통통하지만 비만인으로 분류되던 나는 맞는 사이즈의 옷을 여성복에서 찾기 힘들었는데(당시에는 특히나 더 사이즈가 한정되어 있었) 복지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코트를 찾은 것이다. 어깨가 크고 보풀이 조금 보슬보슬했지만 느낌이 좋았고, 사이즈와 분위기를 보건대 남학생이 동복 위에 걸쳐 입고 겨울을 보낸 코트 같았다. 아마 졸업하면서 교복과 함께 기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 복지매장에는 교복이 제일 많았던 같다. 나도 중고등학교 교복을 기증했는데 교복은 고가이다 보니 기증된 교복이 필요한 사람이 많았다. 입학할 때 비싼 교복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겐 당연히 필요할 테고, 나중에 사이즈가 바뀌거나 교복이 훼손되면 다시 구입하기에 부담스러우니 복지매장을 이용하는 것이.
   한창 성장할 시기이다 보니 나중에 클지도 모른다며 교복 사이즈를 넉넉하게 구입하곤 하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내가 더 자랄 거라는 기대만큼 몇 치수 크게 교복을 구매했지만 결국 그 기대에 못 미치고 나는 중학교 1학년 이후 더는 자라지 않았다. 비싼 맞춤 교복을 입었는데도 항상 볼품없었다.
    그때는 교복 가격의 심각한 거품 때문에 논란도 많았고 교복 브랜드와 광고도 많았는데 요즘은 보이지 않는 같다. 교복이 무료인 학교도 있다고는 하는데 지역에 따라 다르고 대부분 구입해야 하며 여전히 고가인 같다.

    얼마 전에 버렸다고 생각했던 검정 더플코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버릴까 말까 꽤 고민했던 기억이 있는데 결국 20년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을 더듬어보 작년 겨울에 정리하려다가 또 아쉬워서 배우자에게 입으라고 줬던 기억났다. 검정 코트는 내가 가장 돈이 없던 시절의 유일한 코트이기도 했다. 보풀은 조금 생기고 고양이털이 많이 붙어있지만 상태는 괜찮아 보인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코트를 내가 정리할 수 있을까? 코트를 의류 수거함에 넣거나 기부를 하면 다른 사람이 입게 될까?

 

 

    복지매장의 물건은 모두 500원이었다. 저렴한 가격 또한 내가 낡은 것을 좋아하게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낡은 것 중에는 아주 고가의 티크 가구나 빈티지들도 많지만) 낡은 것에는 시간과 가난이 묻어 있고, 외롭고 비밀스럽다. 보물이 되기도 하고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매력에 나는 필연적으로 빠진 것이다. 누군가 버린 것을 내가 소중하게 사용할 있다는 특별한 매력이지만, 내가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랑 시작이기도 하다.

    앞으로 그런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좋아했지만, 또 어쩔 수 없이 좋아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던 나의 낡은 것들. 나의 낡고 조용한 혼잣말들.

 

    복지매장은 점점 축소되다가 언젠가 사라졌다.

 

*복지매장_주민센터에서 동네의 중고품을 부 받아서 500 정도에 되팔던 곳. 수입은 어려운 이웃 지원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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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한소리
    2021.02.18 21:28

    너무 좋아요 복지매장에 대한 기억도 공감되고, 또 나 자신이 버려지는 것에 대한 생각이 드는 것도 좋네요 ㅠㅠ

    • 2021.02.21 00:48

      앗! 복지매장을 아시는군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ㅠ 저도 소리님 글 너무 따뜻하게 잘 읽고있어요><

  • 조이
    2021.02.22 21:46

    20년 된 코트가 어떤 모습일 지 궁금하고, 또 저도 이 집 저 집 이사다니며 가장 오래 가지고 다닌 물건이 무엇인지 살펴보게 되었어요. 작가님의 진솔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연재도 응원해요^^

    • 2021.02.25 21:52

      조이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마음이 든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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