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율마의 자리
- 인외식구-사람은 아니지만 함께 숨쉬는: 파이퍼
- 2021. 5. 4. 00:20
‘덕질의 끝은 부동산’이라는 말을 요즘 따라 심심찮게 발견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다 보면 그것과 관련된 재화가 쌓이고, 그 재화를 감당하려면 넉넉한 사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화분에 담긴 식구들이 늘어날수록 부동산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 충분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2단 선반은 비좁아졌다. 내가 원하는 식물을 모두 사들이면 베란다에 있는 인간의 물건들을 모조리 빼내야 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베란다가 있는 집을 구한 것만으로도 기적으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담한 일자형 베란다 공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땅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땅으로 재산을 늘리거나 권리 혹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기괴한 일이다. 누군가는 땅으로 돈을 벌지만, 누군가는 그 땅의 흙 한 줌 챙기지 못하고 쫓겨난다.
최근 땅을 둘러싼 세 여자의 갈등을 담은 장막극을 쓰고 있는데, ‘땅’으로 대표되는 자연물을 거머쥐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 욕망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도. 만약 길에서 흙을 한 컵 정도 퍼서 집으로 가져왔다면, 한 컵의 흙과 그 흙 속의 미생물과 돌멩이 등등은 나의 소유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 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땅, 공간, ‘자리 잡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끝도 없다. 법적, 사회적 이해관계가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여러 주장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 집 베란다로 돌아와, 각각 화분에 ‘자리 잡은’ 식물들을 생각해본다. 식물을 집으로 데려왔다면, 그들이 각자 최상의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이건 동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가드닝에는 노동이 많이 필요하지만, 한 개체의 세계를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절대 힘든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엔 식물에게 자리를 잘 틀어주는 게 서툴렀다. ‘인외식구’ 프롤로그에서 냉해로 가버린 게발선인장 폴을 언급했는데, 사실 그날 죽은 식물은 폴뿐만이 아니었다. 베란다 선반 위 폴 옆에는 당근마켓에서 거래한 율마가 있었다. 물을 좋아해서 물시중을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고 소문난 율마. 당시 나는 매일 매일 식물에 물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어서,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 곧 나와 잘 맞는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율마는 침엽수이고, 살짝 쓸어보면 손바닥에 상쾌한 시트러스 향기가 배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가짜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는 대신, 율마 화분을 거실에 두어 연말 분위기를 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햇빛이 부족하면 잎에 문제가 쉽게 생긴다는 말을 듣고 거실이 아닌 베란다에 두고 기르고 있었다.
거실만큼 가깝지 않은 거리여서 신경을 덜 쓰게 된 걸까. 율마의 잎은 시간이 지날수록 말라갔다. 물을 줘야 하는 때를 놓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물을 주면 금세 통통해졌다. 겨울이 지나 해가 많이 들어오는 봄이 되면 좋은 흙과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줄 거라고, 그러니 그 시기 전까지만 버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난 안일했다. 생각 없이 문을 열어 놓았던 밤, 추위를 잘 견디는 율마라도 사람의 살도 베어갈 칼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당일에는 폴의 상태에 충격을 받아서 율마는 신경 쓰지도 못했다. 한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그가 생각났다. 같은 자리에 있었으니 당연히 율마도 찬바람을 맞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깨닫고 나서 율마를 만져보니, 손이 따끔할 정도로 바싹 말라있었다. 조금만 샅샅이 뒤져 멀쩡한 줄기를 찾아 물꽂이를 하려고 했는데, 무성한 잎 중 아직도 살아있는 잎은 한 줄기도 보이지 않았다. 얘도 보내야겠구나. 그를 만졌던 손끝이 욱신거렸다.
율마를 정리하던 날, 그가 담겨있던 플라스틱 화분을 뒤집어엎었다. 흙이 얼어있었다. 블로그에서 ‘흙이 얼지 않도록 온도에 주의해주세요’ 라는 언급을 본 적 있었다. 흙이 어떻게 얼지? 하고 지나쳤던 기억도 난다. ‘흙이 언다’는 게 뭐였는지도 몰랐는데, 율마 뿌리가 내렸던 흙을 보자마자, 아, 이게 흙이 얼었다는 거구나,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물을 주고 몇 주가 지나도록 차갑고 축축하고 덩어리졌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종량제 봉투 한 장이 오롯이 율마를 정리하기 위해 쓰였다. 더이상 생명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손대면 투두둑 잎이 떨어질 정도로 시들었는데도 향긋한 냄새는 여전했다. 봉투를 묶는 내내 율마의 마른 잎에 찔려서 손등 곳곳에 생채기가 남았다. 벌을 받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율마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가게 내버려두고 뿌리 내렸던 땅에서 쫓아냈으니까.
율마에 대해 에세이를 써도 될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식물을 죽인 심정을 언어화하여 죄책감을 조금 줄여보려는 속셈처럼 보일까 걱정됐다. 그런 속셈이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에 대해 쓰기 시작한 건, 율마의 자리를 제대로 가꾸어주지 못한 경험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식물에게 좋은 반려인이었던 척, 식물을 별로 죽이지 않았던 척하고 싶지 않다.
돈을 주고 식물을 구매했다고 해서 그 식물의 세계, 그의 자리, 그의 작은 땅을 막 대해도 되는 게 아니다. 그의 자리마저 나의 소유가 되는 게 아니다. 그런 태도는 입주민의 권리마저 사고파는 부동산 업계와 다를 바가 없다.
프롤로그에서는 ‘게발선인장을 죽였다고 해서 새로운 게발선인장을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써놓았다. 그렇지만 만약 어떤 우연한 계기로 율마를 다시 들이게 된다면, 그러면 전보다 더 잘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화분 속 공간이더라도, 그곳이 그에게는 세계의 전부이고 뿌리내릴 자리라는 걸 명심할 것이다. 율마의 자리가 율마에게 편안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식물을 더 들이고 싶어서 부동산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곁으로 온 식물들에게 더욱 신경을 기울이고 싶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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