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민달팽이를 사랑할 순 없어도

 

 

    나는 벌레를 보면 습관처럼 가슴이 철렁한다. ‘생김새로 살아 있는 존재를 무서워하면 안 돼.’, ‘이 두려움은 전부 학습된 결과일 뿐이야.’ 하고 스스로를 세뇌해 보지만, 다음에 또 다른 벌레를 마주치면 흠칫 놀라고 소리를 지른다. 심지어, 벌레를 죽이려고 손을 휘두르기도 한다. 그런 행동은 말 그대로 자동인형처럼 튀어나왔다. 비건으로 생활한 이후에도 한참 그 버릇을 떨쳐내지 못했다.
    다행히, 새집으로 이사를 온 후로는 벌레를 덜 죽이게 되었다. 일단 새로 얻은 집은 이전에 살던 곳에 비하면 신축이고 깨끗해서 집 안에 벌레가 들어오는 일 자체가 없었다. 기껏해야 날파리 정도가 눈에 보였다. 이따금 집게벌레나 개미가 외부에서 들어오기도 했다. 내 시야를 방해하는 작은 날파리는 손부채질을 해서 다른 곳으로 보내고, 밖으로부터 들어온 큰 벌레들은 종이 따위에 올려서 다시 창밖으로 내보내 주면 그만이었다.
    이런 식으로 살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홈가드닝을 시작하게 된 이후로, 나는 심한 내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화분에 서식하는 벌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우리집에서 가장 큰 화분의 지름은 20cm이다. 화원에서 산 후마타 고사리 두 포트를 함께 심어놓았었다. 최근 한 달간 후마타 고사리의 잎 중 반 정도가 갈색으로 타들어가서 모두 정리했었다. 화분이 크고, 흙이 많은 만큼 물을 많이 머금고 있길래 물을 좀 아껴서 주었더니 수분이 금세 부족해진 모양이었다. 마른 잎을 잔뜩 정리한 후로 이제 물을 말리지 말아야겠다 결심한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화분에서, 엄청난 수의 먼지다듬이와 민달팽이가 기어 나왔다. 며칠 전 오랜만에 물을 흠뻑 주었는데, 습한 날씨와 더불어 흙이 물을 머금게 되자 흙이 품고 있던 벌레들이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다.

    처음 식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의 계절은 가을이었다. 가을과 겨울과 봄을 식물과 함께 지냈다. 그러는 내내 날씨는 건조했고, 환기를 5분만 시켜도 습도는 34도까지 내려갔다. 식물과 사람이 쾌적하게 지내려면 최소 50도의 습도는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세 번의 계절 내내 건조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습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여름이 훌쩍 가까워졌다. 이제 베란다 온도는 20도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고 가습기 없이도 습도 50도는 가뿐했다. 아침이면 쏟아지는 햇빛에 토분 속 흙은 전에 없이 빠르게 말라갔다. 바람만 잘 쐬어주면 이제 정말 매일 물을 줄 수도 있겠구나. 물 주는 걸 좋아하는 나는 계절의 변화가 반갑기만 했다. 그러나 촉촉하고 따뜻한 기온이 불어넣는 생명력은 식물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축축한 흙을 만나 신이 난 벌레들을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일단 당시의 우리 집에는, 뭣도 모르고 구매했던 ‘비오킬’이 있었다. 비오킬은 식물 덕후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살충제였다. 나는 벌레 ‘예방’의 차원에서 베란다 창틀에 뿌려두려고 저 약을 사는 거라고, 구매할 당시에는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약의 이름은 ‘살충제’가 아닌가. 벌레를 죽이는 약. 나는 비건을 지향하지만, 집에 벌레 죽이는 약이 있는 가드너였다.
    이처럼 가치관 충돌이 일어날 새도 없이, 먼지다듬이 무리를 발견한 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후마타 고사리 화분을 물 샤워시켰다. 내 눈에 벌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고 싶은 심정으로 물을 부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러면 얘네가 죽는 거 아닌가? 나 벌레를 죽인 거네? 물 2L를 다 부어버린 후에야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은 먼지다듬이들은 그렇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거실로 돌아와 앉았다. ‘친환경 살충제’, ‘벌레 예방’, ‘화분 벌레 예방’, ‘벌레 안 죽이고 가드닝’… 이런 식의 다양한 단어 조합으로 정보를 찾아보다가, 유칼립투스 추출물 100%로 이루어진 약제를 발견했다. 유칼립투스 향을 벌레들이 싫어한다고 하니, 우리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 피해가겠지? 식물에서 나온 추출물이니까 나쁜 성분도 없겠지? 길게 고민해보지도 않고,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제품을 구매한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된 기분이 들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베란다로 향했다. 아까 물 샤워한 토분을 들여다보았다. 흙 위로 기다랗고 불투명한 것이 꿈틀거렸다. 민달팽이였다.
    민달팽이를 실제로 본 건 그게 처음이었다. 내가 지금껏 달팽이는 전부 등에 껍데기가 있었다. 그마저도 어릴 적에야 자주 보았지 커서는 달팽이를 직접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후마타 고사리 화분에서 기어 다니는 그 민달팽이는, ‘징그럽다’, ‘무섭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고, 그냥 단순하게 신체적인 반응이 왔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고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곧장 자고 있는 남편, 인정에게 달려갔다.

    “인정! 민달팽이 나왔어! 화분에서 민달팽이가!”
    “으응. 그렇구나.”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잡아서 보내야겠지?”
    “으응. 맞아. 그러면 돼.”
    “어떻게 잡아?”
    “휴지로… 손으로….”
    “나는 손으로 못 잡아! 인정이 해줘!”

    자는 사람 앞에서, 나는 거의 울부짖었다. 결국 인정이 포크 위에 민달팽이를 올려서 창밖으로 내보내주었다.
    민달팽이와 조우한 후에, 나는 다시 인터넷을 열어 검색했다. 일단 내가 샀던 유칼립투스 추출물의 상세페이지와 후기를 살폈다. 그런데 후기 중에 ‘웬만해선 죽지 않는 민달팽이도 바로 죽는다’는 말을 봐버렸다. 죽는구나. 식물에서 나온 추출물로도 죽는구나. 그러고 보니 제품의 이름이 ‘00킬’이다.
    생김새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나니, ‘00킬’이라는 이름이 사악하게 느껴졌다. 원래 흙에 있었다가 나타난 건지 바깥에서 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만약 밖에서 온 아이였다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환경보다 우리집 화분 속이 더 살기 좋다고 판단하여 들어왔을 텐데. 민달팽이에게 애정을 가질 수는 없어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식단이나 옷은 그렇게 비건을 지향하려고 애쓰면서 나 편해지자고, 나 보기 싫다고 동물을 죽이는 건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식물과 벌레를 같이 집에서 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학습되었든 어쨌든 간에 나는 벌레를 보면 심장이 떨리는 사람이었고 아끼는 식물이 벌레로 인해 병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슬펐다.

    같이, 그러나 또 따로 살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이미 흙에 생긴 개체들은 바깥으로 보내주기로 하고, 외부에서 벌레가 들어오는 원인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지금은 벌레들이 기피한다는 유칼립투스 추출물을 열심히 뿌린 상태이다. 그리고 흙이 많을수록 물을 오래 머금어서 벌레가 곧잘 자리를 트는 모양이니, 집 안에는 지름 16cm 이하의 화분만 들이기로.

    생각해보면 원래 식물도 집 안이 아닌 바깥에서 사는 존재인데. 자연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식물을 집 안으로 끌고 왔으니 벌레가 따라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민달팽이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아무래도 ‘실내’는 ‘인간’의 공간으로 인식을 해서 그런지, 인간의 공간에 들어온 인간 외의 종족은 ‘침입자’나 ‘불청객’으로 분류하게 된다. 만약 내게 마당이 있고, 식물을 마당에서 기른다면 인식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마당, 그러니까 실외에서는 민달팽이를 보아도 유감이 생기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언젠가는 민달팽이에게도 친화적인 홈가드너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일단,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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