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뷰티스타의 춤

 

 

    틀어놓은 노래의 박자가 몸을 맡기기에 적절할 때. 집안일을 막 마무리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을 때. 남편은 가끔 춤을 추지 않겠냐고 묻는다. 우리는 빙글빙글 돌며 왈츠도 아니고 블루스도 아닌 정체 모를 춤을 춘다. 아래층에 울리지 않을 정도로만 발을 굴리며, 동작이 서로 꼬여서 몸이 부딪히면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면서. 집 안을 휘저으며 춤출 때도 있지만, 주된 무대는 거실과 부엌이다.
    지금은 식물 선반으로 옮겨놓았으나, 입주 후 한동안 거실과 부엌 사이 선반에 자리 잡고 있었던 화분이 있었다. 당근 마켓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칼라데아 뷰티스타. 짙은 녹색 위에 하얀색과 분홍색이 오묘하게 섞인 줄무늬가 매력적이어서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남편이 춤을 추면 뷰티스타의 앞을 몇 번이고 스쳐가게 된다. 평소에도 위치상 가장 많이 지나다니게 되는 곳에, 뷰티스타는 얌전하게 서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낸 바람으로 인해 줄기와 잎이 살짝살짝 살랑거리곤 했다.
    이제껏 춤이란 당연히 동물의 행위라고 생각해왔다. 정확히는, 동물들만이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은연중에 확신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사람의 경우엔 더욱 그런 본능에 적극적인 종족이지 않은가. 그러나 본능에 의한 움직임은 동물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뷰티스타를 데려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뷰티스타는 아침의 모습과 저녁의 모습이 다르다. 아침에는 잎이 눕는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일어난다. 꽃이 만개했다가 다시 봉오리가 되는 것 같은 움직임을 하루 동안 볼 수 있다. 찾아보니 낮에는 빛을 받는 면적을 넓히기 위해 잎을 펼쳐 눕히고, 밤엔 수분 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잎을 위로 오므린다고 한다. 이걸 취면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식물도 운동을 한다! 새삼스럽고, 놀라웠다.
    우리집의 다른 식물들에 비해 뷰티스타는 워낙 활발한 취면운동을 한다. 매번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게 익숙하여 오히려 관찰을 소홀히 하던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유독 축 늘어진 것처럼 보였는데, 이게 평소처럼 빛을 받으려고 잎을 펼친 건지 이상 신호인지 아리송했다. 흙을 만져보고 일단 물을 듬뿍 주었다. 그랬더니 몇 시간 만에 처져 있던 줄기를 꼿꼿이 세우고 일어섰다. 통풍이 적어 흙의 수분이 잘 마르지 않는 도자기 화분에 식재되어 있어서 물주기를 일부러 게을리 했는데, 지나치게 게을렀던 모양이다. 한 번 물을 주었을 뿐인데 다시 줄기도 튼튼해지고 자세도 바로잡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예뻐하기만 하고 물은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안하기도 했다.

    뷰티스타를 만나고 나서야 식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화분을 한곳에 가만히 두면 빛을 받는 방향으로 잎들이 자라난다. 화분을 돌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또 그 방향에 맞추어 잎이 움직인다. 돌돌돌 자라나는 새순은 그냥 아무 곳을 향하여 몸을 키우는 게 아니다. 안착하기에 적절한 공간을 찾아 잎을 움직여가며 자리를 정한다.
    식물 움직이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움직임의 정의가 인간에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인간처럼 걷고, 뛰고, 이동하지 않으니까. 그들에게는 팔도 없고 다리도 없고 뼈도 없으니까. 그러나 식물들도 잘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빛을 찾아, 더 쾌적한 곳을 찾아 하루에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유튜브에 ‘plant time lapse’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 몇 개만 보아도 식물들이 그냥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구부렸다가 다시 펴기도 하는 모습은 꼭, 인간의 춤과 닮았다. 춤은 단순히 흥겨움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의 춤은 생존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식물의 움직임은 인간의 춤과 닮았고, 인간의 춤 또한 식물의 움직임과 맥락을 함께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비건으로 살아가면 의례처럼 듣는 식물은 안 불쌍하냐는 질문을 나 또한 몇 차례 받아본 적 있었다. 그 납작한 질문에는 꼬집고 싶은 어폐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그러면 정작 당신은 어떤 심정으로 식물을 대하고 있는지를, 특히나 되묻고 싶었다. 식물이 움직이는 걸 본 적 있냐고. 식물도 살아가기 위해 숨을 쉬고 숨을 잘 쉬기 위해 몸체를 기울였다가 일어서고는 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냐고.

    뷰티스타의 춤을 본 적 있냐고. 묻고 싶었다.

    나는 종종 남편과 춤을 추지만, 우리 집에서 춤을 추는 존재는 나와 남편 둘뿐만이 아니다. 뷰티스타를 포함한 집안의 모든 식물은,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잎과 줄기와 뿌리를 쉼 없이 움직인다. 내게 식물은 불쌍하지 않냐고 비꼬는 이들은 평생 목격하지 못할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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