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무지 이 질문을 참을 수가 없다. 한숨을 쉬며 노트북 화면 탭을 번갈아 클릭했다. 쓰다 만 자소서 화면이 벌써 일곱 개였고, 나는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다른 자소서 탭으로 옮겨갔다. 그게 벌써 일곱 번째라는 뜻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처음 썼던 화면으로 돌아갔다. 시집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였다.
대체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왜 그 사람의 고난과 실패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 그게 그렇게도 궁금할까? 다른 사람을 처음으로 만날 때 그 사람의 고난과 실패부터 알고 싶어 하는 건 정말 고약한 일이다.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고난과 극복 경험이 궁금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경험을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걸 말하는 걸 좋아하면 꼰대가 되는 거였고, 듣기 좋아하면 비열한 사람이 되는 거였다. 나는 비열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용감한 사람도 아니었다. 고난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것을 극복한 적은 없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나는 마법소녀였다.
나를 ‘주선우’라는 이름으로 먼저 만난 사람들은 내가 마법소녀였단 것을 잘 믿지 못한다.
왼쪽 눈썹의 스크래치,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훤히 드러나는 목덜미와 귓바퀴, 복싱을 하느라 바짝 깎은 손톱, 이런 것들은 귀엽고 깜찍하게 핑크색 요술봉을 흔드는 마법소녀의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거니까. 아마도 내가 나 마법소녀 걔야, 하고 말하면 모두가 웃을 것이다. 선우, 아직도 술 안 깼어? 하고.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할 때는 한 번도 술에 취한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나는 이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분홍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요술봉을 휘두르는 것만이 마법소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깜빡거리는 커서를 한 번 누르고 썼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면 언제나 고민하게 된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그건 고등학교 3학년 초여름의 일이었다. 내가 6월 모의고사를 죽을 쑨 탓에 집안 분위기는 엉망진창이었다. 집안사람들이라고 해봤자 나와 엄마밖에 없었지만. 엄마는 일부러 접시를 던지는 것처럼 소리를 내고 물을 철퍽철퍽 튀기면서 설거지를 했다. 나는 그 소리가 끔찍하게도 싫어서 얇은 여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시끄러운 설거지는 나에 대한 엄마의 시위 방법이었다. 엄마는 당신의 뒤를 이어 내가 약사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되고 싶은 것이 없었고 수학이 끔찍하게 싫었다. 좋아하는 게 뭐니? 저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은데요.
내 대답에 선생님은 국문과를 권했다. 책임감 있는 권유라기보다는, 반에 한 명씩은 꼭 있는 그런 아이들을 적당히 돌려보내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아이들은 그 ‘적당한’ 방법을 적당하게 받아들일 줄을 모른다.
상담을 마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을 책날개에서 확인했다. 그들은 모두 국문과 출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국문과에 가기로 했다. 그날도 엄마는 시끄럽게 설거지를 했다.
나는 엄마가 설거지를 끝내면 나를 혼낼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알아달라는 것처럼 그저 시끄럽게 설거지를 했다. 차라리 몇 대 맞을래? 하고 위협적으로 매를 휘두르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 주선우! 너 나와서 밥 안 먹어?
엄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를 찢었다. 나는 엄마가 주선우! 하고 내 이름을 하나로 부르는 것이 싫었다. 선우야.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면 좀 안 돼?
— 주선우!
— 아, 알았어. 나간다니까…….
이불을 걷고 어기적어기적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여전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식탁에는 예쁘게 반찬을 담은 그릇 몇 개가 올라와 있었다.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나는 락앤락 통의 뚜껑만 열어서 대충 밥을 먹었다. 하지만 엄마는 손님도 오지 않는 식탁에 언제나 동그란 그릇들을 꺼내놓고 반찬들을 옮겨 담았다. 양념이 가장자리에 튀면 키친타월로 세심하게 닦았다. 뭐 하러 그런 짓을 해, 나만 먹는데. 하고 몇 번 타박을 놓았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 나는 점차 나이가 들고, 둥그런 식탁에 엄마를 등지고 앉으면서 엄마가 예쁜 그릇에 반찬을 옮겨 담고 가장자리를 닦는 것이 꼭 나를 위해서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건 엄마가 이 집에서 유리되지 않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 ……엄마는 안 먹어?
나는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것은 불편했다. 꼭 주인이 엎드려 걸레질을 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노예 같았다.
— 속이 어디가 편하다고 밥을 먹어, 밥을 먹기는.
나는 더 말하지 않고 콩나물국을 후루룩 마셨다. 빨리 마셔버리고 방에 들어가서 오답노트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리 나게 국을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 살살 안 내려놔? 얼마나 세게 내려놨으면 싱크대가 다 떨린….
엄마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고 동시에 쾅! 하고 소름끼치는 파열음이 났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틀어놓은 텔레비전 연속극 한 가운데에 푸르스름한 줄이 갔다. 지지직거리던 텔레비전 화면은 ‘긴급 방송 송출’ 이라는 문구가 떴다.
— 정체불명의 반원체가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민 여러분들은 구역에 맞는 대피소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정체불명의 반원체가…….
엄마는 고무장갑을 재빨리 벗었다. 꼭 이런 일을 대비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엄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짐을 쌌다. 방에서 필요한 걸 챙겨오라는 엄마의 다그침에 나는 멍하니 책상을 바라봤다. 붉은색 색연필이 죽죽 그어진 모의고사 시험지, 가득 쌓인 문제집, 더러운 필통. 어디에도 내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어 보였다. 나는 챙길 것이 없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내가 가방을 들고 나왔을 때 기막히게도, 엄마는 싱크대에 반찬 그릇들을 모두 옮겨놓고 있었다. 엄마는 단호한 얼굴로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갔고 자신의 약국에서 응급약을 챙겼다. 그리고 엄마는 그 혼잡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약국의 문을 잠그고 셔터를 내렸다. 나는 약국 문을 꼭 걸어 잠그는 엄마가 이상했다. 정말 전쟁이나 공습이 시작된 거라면 약국을 열어 놓는 편이 사람들에게 훨씬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문을 잠갔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 지역은 아직 공습이 시작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땅이 흔들리면서 가스관이 파열되었고, 그래서 여러 가게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길거리는 엉망진창이었지만 직접적인 공습을 받지는 않았다고 했다. 나와 엄마는 신길역이 대피소였다. 매번 학원을 갈 때마다 역사가 참 깊다, 하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이곳이 대피소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가장 튼튼한 기둥 옆에 담요를 깔고 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엄마가 챙겨온 담요를 덮고 무릎을 모았다. 북한의 공격, 미군의 피습, 일본의 제 3차 세계대전 시작 등등. 온갖 음모론이 쏟아졌고 나는 귀를 막았다. 그리고 어설프게 든 잠에서, 나는 꿈을 꿨다.
온몸에서 하얗게 빛이 나는 사람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왜요? 하고 내가 날카롭게 묻자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 네 손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어.
— 그게 왜요? 제가 그걸 구해야 돼요? 이 좆같은 세상 그냥 망해버리면 되잖아요? 제가 꼭 구해야 되나요? 그러면 저한테 뭐가 좋다고…
마지막 말을 끝맺기도 전에 누군가 내 뒷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거센 힘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벽에는 금이 가고 있었고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모두가 한꺼번에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귀가 멍멍했다. 엄마, 엄마 어딨지. 허덕이며 땅바닥을 쓸었다. 동강난 플라스틱 조각이 손에 잡혔다. 아마도 내 뒷목을 친 것은 이 조각인 모양이었다. 뒤에서 쩌적이는 소리가 났다. 전광판이 덜렁거리며 떨어지려고 했다. 무너지고 금이 가는 모든 순간이 이상하게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 네 손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어.
진짜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전광판이 흔들렸다. 전광판 아래에는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옹송그리고 덜덜 떨고 있었다.
— 네 손에 지구의 운명이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전광판을 연결하고 있던 전선 한 가닥이 툭 하고 떨어졌다.
— 네 손에 지구의
땅이 쿵 하고 아래로 크게 꺼지더니 전광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고 세상은 여전히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 네 손에 알았으니까 좀!
지구의 운명이니 어쩌니, 그런 거창한 것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피하지 못했고, 나는 여전히 전광판이 떨어지는 것이 슬로모션으로 보였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할머니와 전광판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달려 나갔다. 내가 그것 말고 뭘 할 수 있었을까.
“선우야, 엄마 물 좀.”
퍼뜩 전광판의 선이 뚝 하고 끊어지는 영상과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파리한 입술을 달싹여 나를 불렀다.
“아, 응.”
노트북 화면 아래의 시계를 봤다. 새벽 세 시. 엄마는 이때쯤 언제나 잠에서 깬다. 간병인 침대에서 자고 있을 때면 시체처럼 차가운 손으로 나를 툭툭 쳐서 깨운다. 나는 그 감각이 소름끼치게 싫어서 이 시간 때쯤이면, 그냥 깨 있는다. 다 그냥, 그냥이다. 나는 이것도 엄마가 나에게 벌이는 시위 같았다.
“왜 그러고 있어, 귀신같이.”
엄마는 푸르스름한 노트북 불빛을 뒤집어쓴 나를 보고 몸서리를 쳤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미지근한 물을 따라서 엄마한테 건넸다. 수술을 막 마친 엄마는 물을 잘 마시지 못했다. 몸이 제대로 부팅되지 않은 오래된 노트북처럼 버벅거려서 자꾸만 물을 흘렸다. 입술을 제대로 다물지 못해서 옷이 온통 젖고는 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가엾기도 했고, 동시에 징그럽기도 했다. 코에 호스를 낀 엄마는 죽어야 할 때를 놓친 짐승 같았다. 물론 수술 경과가 기적적으로 좋다고 했었다. 암세포를 빨리 발견한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저 성질머리에 암세포도 견디지 못해서 먼저 떠난 거라고도 생각했다.
“아직도 원서 넣고 있어? 왜, 이건 특례도 안 된다니?”
엄마의 빈정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방금 전까지 했던 가엾다는 생각을 벅벅 지웠다. 엄마의 유일한 특기인 빈정거림은 투병 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심해졌다. 곁에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 그 탁월한 빈정거림의 청중은 애석하게도 나뿐이었다. 엄마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과 부끄러워하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뭐…… 나만 힘든 건 아니잖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엄마는 돌아누우며 잘 하는 짓이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건 엄마가 틀렸다. 나는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었고……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