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렸다. 의사는 열성적으로 엄마의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엄마는 암세포가 자란 가슴을 거의 절반을 도려내고 결국 이겼다. 엄마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과학 기술이 당신을 구할 것이라고, 발전한 현대 의학에 힘입어 자신은 암을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재발 위험이 높으니, 로 시작되는 고까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내 몫이었다. 퇴원 일자를 받았다. 약 열흘 후였다. 피 검사나 소화 기능의 경과를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엄마는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그 파리한 얼굴에 갑자기 무지개가 드리운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당당하게 나에게 요구했다. 당신이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내가 해놓아야 할 집안일 목록들이었다. 손에 힘이 없어 구불구불거리는 글씨체로 엄마는 메모지를 꽉 채웠다.
V 거실에 겨울 카펫 깔아놓기 V 가구 모서리마다 스티로폼 붙여 놓기 V 암환자 식단으로 일주일치 장 봐놓기 (달걀 사지 말 것) V 공기 청정기 렌탈해놓기 V 전기장판 온수 담요로 바꿔놓기 ⁝
어찌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면 뒷면까지 빼곡했다. 나는 지갑 사이에 종이를 접어 꽂았다. 나는 엄마가 종종 이렇게, 무언가를 줄 때면 그것이 꼭 유서 같다고 생각했다. 생각? 기대일 수도 있다. “퇴원하면 다시 약국에 나가야겠다.” “응.” 나는 얌전히 엄마의 발에 두툼한 수면 양말을 신겨 주고 지갑을 챙겨 들었다. “어디 가?” “병원비 수납하러. 퇴원 준비하려면 중간 수납하래.” 엄마는 날카롭게 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자인 엄마의 콧대는 드높았다. 엄마는 정체불명의 반원체가 습격했을 때도, 자신의 몸에서 암세포를 발견했을 때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들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굴었다. 피난용 짐가방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챙겼다. 암을 진단 받았을 때는 백점짜리 시험지처럼 오랫동안 부어 온 암 보험을 내밀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엄마는 쉽게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 꼿꼿하게 서서, 그 변두리에 서 있는 나를 냉정하게 내려다보았다. 내 절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 엄마는 자신의 불행을 즐겼다. 물론 자신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불행을 말이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엄마에게 닥친 불행은 당신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을 넘지 않았다. 그런 불행한 서사에서는 엄마는 주인공이 되었다. 엄마가 예측하지 못한 불행은 나, 당신의 딸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의 보험으로 엄마의 병원비를 수납하며 생각했다. 보험처럼 엄마라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제도는 없다고. 엄마는 나와는 다르게 보험과 사회보장제도를 지나칠 정도로 신뢰했다. 내가 엄마를 따라 암 보험을 가입할 때였다. 나는 당시 ‘지구를 구하는 일’ 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었다. 반원 형태의 구멍이나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몸이 벌벌 떨렸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머리를 빡빡 밀어 버렸다. 외출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까만 마스크를 쓰고 볼캡을 얼굴 절반까지 눌러썼다. 몸의 선이 보이지 않도록 벙벙한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sns를 가입할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끝없는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누가 나와 같은 길을 걷고만 있어도 나를 알아봤을까봐 근처 화장실로 숨었다. 화장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나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구토를 했다. 머리를 밀고 나서는 쥐어뜯을 머리카락이 없어서 손톱을 씹었다. 피가 나서 살이 덜렁거릴 때까지 손톱을 씹으면 그제야 안심이 됐다. 피가 나고 쓰라린 고통에 몸서리가 쳐지면 겨우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 있는 증거가 고통뿐이라는 게 나를 갉아먹었다. 결국 엄마는 나를 보다 못해 정신병원에 데리고 갔다. 싫다고 버티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현대 의학의 맹신자인 엄마는 요즘 정신병은 감기 같은 거라고 말했다. 치료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는 엄마의 그 태평한 말이 싫었다. ― 감기 같은 거? 그럼 누구나 걸리는 그런 거? ‘누구나’ 지구를 구하고 그 트라우마에 시달려? 바득바득 쏘아붙이는 나에게 엄마는 냉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 그걸 내가 하라고 했니? ― ……. 맞는 말이었다. 지구의 운명이 네 손에 달려 있다는 이상한 꿈을 꾼 것도 나였고, 그 꿈을 꾸고 떨어지는 전광판 아래의 할머니에게 달려간 것도 나였다. 차마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는 나를 질질 끌고 엄마는 정신과로 갔다. 어떤 증세가 있냐고 묻는 의사 앞에서 나는 웃지도 못했다. 대체 내 증상에 대해서 뭐라고 해?
지구를 구하느라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지구를 구하고 나서 텔레비전에 자꾸 마법소녀 복장을 하고 나오라는 어른들 때문에 구역질이 납니다. 누가 날 알아볼까봐 죽어버리고 싶습니다. 아뇨, 죽어버리면요. 그러면 또 기사에 쓸 거잖아요. 전직 마법소녀, 자살로 생을 마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사실 괜찮은 것 같아요. 사십오 분을 기다린 것이 무색하게 나는 그냥 뛰쳐나왔다. 엄마는 병원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해대는 나에게 달려올 생각도 않고, 접수처에서 웃으며 말했다. ― 이건 진료를 받았다고 볼 수는 없겠죠? 엄마의 상냥한 미소. 엄마는 그 미소를 가지고 내가 정신과에 갔다는 사실 자체를 지웠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내 앞으로 온갖 보험을 가입했다. 앞으로 정신과 진료 기록이 생기면 보험 가입이 힘들다는 그런 사무적이고 잔인한 이유를 가지고.
“수납 되셨어요.” 명랑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아, 네…….” 천문학적인 금액 아래에, 보험이니 뭐니 해서 깎인 숫자들. 나는 그 숫자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엄마의 목숨값이구나. 되게 싸네. 나는 접수원이 건네준 영수증을 꼭 쥐고 병실로 돌아왔다. 엄마에게 영수증을 건넸고 엄마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거 봐라, 내가 뭐랬니? 나는 살아남을 거라고 했지? 기적이 아니라 과학으로. 엄마의 표정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고개를 돌렸다. 수술이 끝나고 경과가 좋아지면서 엄마는 육인실 병실로 옮겼다. 육인실 병실은 멸균실이나 일인실보다는 훨씬 분위기가 편했다. 엄마랑 단 둘이 있지 않아도 돼서, 나는 육인실이 편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타고난 신랄함에 드디어 청중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엄마는 벌써 육인실 병실, 612호의 사람들을 모두 관찰한 후였다. 그 중에서도 엄마가 가장 공들여서 관찰한 대상은 엄마의 맞은편 침상의 환자였다. 엄마가 이 병실로 처음 옮겨왔을 때 유일하게 인사를 했던 사람. 내 또래의 여자애였다. 그 여자애는 으레 환자들이 그렇듯 환자에게만 인사를 하고, 보호자인 나에게는 멋쩍은 얼굴로 인사를 망설였다. 그 애의 서랍장과 침대 옆은 깨끗했다. 보호자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몰랐다. 함부로 동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른 척 하기도 어려웠다.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갯짓으로 인사를 했다. “쟤는 시한부라더라. 너랑 동갑인데.” 엄마는 그 아이가 나가자마자 말했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럴 때 보면 엄마는 참 잔인하고 못됐다. 육인실 병실에서 아무리 작게 말해도 들릴 것이 뻔한데 말이다. 사생활이라고는 반투명한 커튼으로만 만드는 좁은 공간이 전부인 육인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병이나 죽음은 오로지 그 사람만의 사적인 것이어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말에 다른 네 명의 환자와 세 명의 간병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마도 그들은 그 아이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죽음의 흔적이라도 찾아내려는 것 같았다. 엄마는 늘 이런 식이었다. 특히나 엄마는 자신이 암을 이겨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자신이 어느 명문대를 나온 약사 출신인데, 이런 것들 저런 것들을 먹었고 늘 마음가짐을 바르게 했으며, 매일 아침과 저녁 기도를 빼놓지 않았다는 것들. 그리고 그 자랑의 대상은 ‘시한부’ 꼬리표가 붙은 환자들에게로 향했다. 저들은 졌고, 자신은 이겼다는 것처럼.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인데, 지금 당장 암을 이겨낸 엄마의 고개는 언제나 뻣뻣했다. 엄마는 암 병동 612호의 성녀였다. “뭘 그런 얘기를 해.” 그러면서도 나는 어쩐지 훨씬 더 좁아 보이는 침대를 쳐다봤다. 한이다. 이름이 정갈하다. 그는 아이보리색 비니를 쓰고 있었는데 뒤에는 연갈색 가발이 붙어 있었다. 요즘에는 반가발이 붙어 있는 저런 비니가 유행한다고 했다. 엄마가 퇴원하기 전까지 내가 해야 할 일들 목록에는 저런 비니를 사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지원서 좀 마저 보내고 올게. 여기 와이파이가 안 돼서.” 어차피 엄마가 할 ‘암을 이겨내는 성녀님의 강연’에는 내가 청중으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노트북을 챙겨 일어섰고 엄마는 저녁 검사 때까지 돌아오라는 당부만 했다. 엄마는 침대 손잡이를 스스로 돌려 일어나 앉았고, 대각선 맞은편 아저씨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1장, 암을 이겨내는 마음 자세. 나는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병원 1층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혹시 검사 시간이 당겨질 수도 있으니까 어디 멀리 가서도 안 된다. 엄마는 환자였고 나는 죄수였다. 답답했다.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다가 결국 병원 정원으로 산책이라도 하러 가려고 나설 때였다. 벤치에 그가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이다, 이름과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갈색 눈이다. 원체 몸에 색소가 적은 모양인지 얼굴도 희다. 이상하게 낯설다. 저런 희고 맑은 얼굴은 병원에서 보기 힘든데. “안녕.” “어…… 응, 안녕.” 이다는 원체 인사를 잘 하는 모양이다. 자신을 관찰하려 드는 엄마에게도 안녕하세요 했고 나에게도 안녕. 나는 그 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안녕, 하고 대꾸했다. 날씨가 제법 추운데 밖에 있는 이유가 우리 엄마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그의 머리꼭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비니 끝 부분의 보풀이 유난히 심했다. “너네 엄마, 완치되셨다며?” “어? 응. 뭐…….” “대단하시네.” 그 목소리에 조금의 비난도, 빈정거림도 없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투병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사람이 비관적으로 변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격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다의 목소리에는 그런 흔적이 아예 없었다. 이다는 눈을 내리깔고 차가운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병원복 바지의 끝자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한참 따라갔다. 아무것도 없는데. ‘시한부는…… 좀 다른가.’ 나는 망설이다가 이다의 옆에 앉았다. 이다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이다는 손을 뒤로 짚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자세였다. “아까 들었어?” “뭘?” “우리 엄마가…….” 너 시한부라고 한 거. 굳이 나랑 동갑이라고 한 거. 나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다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그거 뭐 비밀도 아니고.” 자신의 죽음이 비밀이 아니라는 애. 나는 놀라고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정말 알 수가 없어서 입술 안쪽을 씹었다. “나 어렸을 때부터 이랬어. 그래서 괜찮아.” 아팠어, 암이었어, 이런 말도 아니고 ‘이랬어’라니. 나는 어쩐지 그 아이가 애달파 보였다. 차가운 바람이 허공에서 불었다가 멈췄다. 나를 바라보면서 괜찮아, 하고 말하는 이다는 전선이 곧 뚝 하고 끊어질 것처럼 흔들리는 전광판, 그 아래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떨어지는 전광판을 피해 이다를 구할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이다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땅.” 손가락으로 갈라진 아스팔트 틈의 흙이나 새싹 같은 것들을 가리킬 줄 알았다. 하지만 이다는 단단하게 포장된 땅을 가리켰다. 희망의 상징은 없었고 그 모든 것들은 포장된 아래에 있었지만 이다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땅을 가리켰다. 그리고 나는 그 땅을 가리키는 이다의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